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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오늘의 폐기물이 내일의 원자재로"… 獨 BMW RDC

기사입력 2025.10.17 10:41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순환 경제의 심장부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이제 재활용 공정이 완료됐습니다"

    짧은 안내가 끝나자 취재진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가 퍼졌다. 눈앞의 차량은 거대한 압축기에 삼켜진 지 불과 3분 만에 1톤짜리 네모난 금속 블록으로 변했다. 수억 원을 호가하던 명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독일 뮌헨 외곽에 자리한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ecycling and Dismantling Centre, 이하 RDC). 지난달 6일(현지 시간) 이곳에서 BMW의 순환 경제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직접 확인했다.

    RDC는 단순한 폐차장이 아니다. 1994년 문을 연 이후 매일 최대 50대, 연간 6500대의 차량을 해체하고 재활용한다. 연간 최대 처리 능력은 1만대 수준에 이른다. BMW가 추구하는 '디자인 포 리사이클링(Design for Recycling)' 철학이 실제로 구현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현장을 소개한 랄프 하틀러 BMW 시니어 부사장은 "RDC는 BMW 순환 경제 전략의 핵심 허브"라며, "BMW는 차량 설계 단계부터 분해와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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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공장 입구에는 각양각색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MINI부터 고성능 M8 컴페티션, 심지어 방탄유리를 장착한 테스트카까지 모두 이곳에서 두 번째 생명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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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첫 단계는 배터리 분리다. 리프트에 매달린 BMW i5 eDrive40의 하부에서 작업자가 전동 드라이버로 볼트를 풀자, 82㎾h 고전압 배터리가 분리됐다.

    스테펜 아우만 BMW 재활용 혁신 센터 총괄은 "고전압 배터리는 폭발 위험이 있어 가장 먼저 제거한다"며, "최근에는 배터리 탈착이 훨씬 간편해졌는데, 이는 RDC가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BMW가 신차 설계에 개선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리된 배터리는 협력사 SK에코플랜트 자회사인 SK TES로 옮겨져 블랙 매스로 파쇄된 후 리튬·니켈·코발트 등을 추출한다. 이 금속들은 다시 신형 배터리에 투입된다. BMW는 이를 '폐루프(closed-loop) 배터리 재활용'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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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이후 에어백 중화 과정이 이어졌다. 아우만 총괄이 기자들에게 귀마개를 나눠주며 "이제 곧 굉음이 날 것이니 착용하라"고 안내했다. 이어진 공간에서는 에어백을 중화시키는 콘솔에 연결된 BMW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콘솔의 버튼이 눌리는 순간,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차량 내부 곳곳에서 에어백이 터졌다. 최대 35개에 달하는 에어백이 폭발하며 뿌연 연기와 화약 냄새로 가득 메웠다. 에어백은 법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폭발 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 BMW는 자체 개발한 특허 공정을 이용해 파이로테크닉스(Pyrotechnics)를 안전하게 중화한다.

    이렇게 잘 분해된 BMW 차들에서 뽑아낸 부품과 금속들을 포함하면 차 한 대당 약 95%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BMW그룹의 설명이다. 아우만 총괄은 "재사용률 95% 중 85%는 재활용이 기본이고, 추가로 10%는 열처리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회수한다"며, "BMW 7세대 차량의 경우 일반 가정이 1~2주 쓰는 쓰레기양과 비슷한 수준이 재활용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세 번째 공정은 차량 내부의 모든 유체를 제거하는 단계다. 엔진 오일, 브레이크액, 냉매, 연료까지 한 대에서 평균 100리터가 나온다. BMW는 탱크 설계 단계에서부터 유체가 완전히 배출되도록 구멍 위치를 설계한다. 회수된 유체는 정제 과정을 거쳐 새 부품 생산에 재활용된다. 이 과정을 통해 RDC는 지금까지 약 100만 리터, 대형 탱크 트럭 19대 분량의 유체를 회수했다.

    유체가 모두 빠져나간 차체는 이제 본격적인 재활용 공정에 들어갔다. 리프트 위로 들어 올려진 차량 아래에서 작업자가 굵직한 볼트를 차례로 풀자,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엔진-트랜스미션 세트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이어 도어와 헤드라이트 등 주요 부품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작업자는 도어를 통째로 들어내고, 헤드라이트와 테일램프를 신중히 떼어냈다. 이렇게 추출된 부품들은 상태 점검을 거쳐 정품 중고 부품으로 재포장돼 다시 고객에게 공급된다.

    RDC 현장 관계자는 "엔진은 별도의 유통망을 통해 재판매되거나 리빌트 파워트레인으로 쓰인다"며, "뮌헨 본사에서 직접 보관하지는 않고, 도매업체 네트워크를 통해 시장 수요에 맞춰 판매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어 "에어백이나 안전 장치는 법적으로 재사용이 금지됐지만, 도어·램프류는 상태에 따라 충분히 리셀링이 가능한 만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 BMW 그룹 재활용 및 분해 센터(RDC) / BMW 그룹 제공

    이번엔 해체 작업이다. 굴착기의 거대한 집게발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차량을 움켜쥐었다. 집게 끝에 부착된 '스파게티 툴'이라 불리는 특수 장치가 차량 속 와이어링 하네스(구리 전선)를 돌돌 말아 올리자, 수십 가닥의 전선이 마치 삶은 스파게티처럼 쏟아져 나왔다.

    RDC 관계자는 "차 한 대에서 30~35㎏의 구리가 추출된다"며, "와이어링 하네스를 구성하는 구리는 톤당 8000유로에 달하는 만큼 가장 가치 있는 자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재활용된 와이어링 하네스는 총 20만㎞, 지구를 5바퀴 감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후 촉매 변환기가 분리됐다. 백금과 팔라듐이 함유된 귀금속은 재활용 수익성이 가장 높은 자원 중 하나다. BMW는 이처럼 가치가 높은 소재를 고품질로 분리하기 위한 'Car2Car'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독일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이 연구는 폐차에서 얻은 금속·플라스틱·유리를 신차 생산 재료로 재활용하는 효율적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BMW는 이 프로젝트에서 컨소시엄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압축이다. 차량 잔해가 거대한 유압식 프레스로 들어가자 불과 3분 만에 금속 큐브로 압축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크랩 블록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내일의 원자재다.

    RDC는 단순히 자원을 회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얻은 모든 데이터는 BMW 엔지니어링 부서로 전달돼 차량 설계 개선에 직접 반영된다. 배터리 모듈이 쉽게 분리되는 구조,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조립 방식, 재활용이 용이한 단일 소재 설계 등은 모두 RDC에서 비롯된 혁신이다. BMW는 이를 '다시 생각하고,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한다' 원칙으로 정리하고, 신차 개발 전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30년 동안 RDC는 약 12만대 이상의 차량을 해체하며 쌓은 노하우를 전 세계에 공유해 왔다. BMW는 재활용 정보 플랫폼 IDIS(국제 분해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RDC가 IDIS에 공개하는 정보와 연구 결과는 전 세계 재활용 회사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41개국, 3000여 개 조직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RDC의 기술과 경험은 중국,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순환 경제 표준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틀러 부사장은 "RDC는 오늘의 폐기물을 내일의 자원으로 바꾸는 곳"이라며, "우리가 구축한 재활용 전문성이 BMW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어를 마치고 RDC 밖으로 나서자, 방금 전 압축 블록으로 변한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그 금속 덩어리들이 언젠가 다시 새로운 차체의 일부로, 혹은 배터리 셀의 원료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이 묘한 인상을 남겼다.

    BMW는 30년 넘게 '끝'을 '시작'으로 바꾸는 기술을 실험해 왔다. RDC는 그 실험의 현장이자, 이제는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모델이 됐다. 차량 한 대의 해체 과정 속에 숨어 있는 정교한 기술과 철학은 단순히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넘어,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BMW의 답이다.

    자동차가 금속 큐브로 압축되는 순간, 생을 마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미 다음 세대를 위한 자원이 숨 쉬고 있다.

    그것이 바로 BMW가 말하는 미래의 모빌리티, '오늘의 폐기물로 내일의 원자재를 만든다'는 순환 경제의 진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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