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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약 100억 원 적자 감수…필수의료, 누가 책임지나

기사입력 2025.10.16 09:30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사례로 본 공공의료의 현실과 과제
  •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이 고압산소치료 1만례를 달성했다. 2023년 7월부터 2년 3개월 만의 성과다. 하지만, 이 성과의 이면에는 연간 약 1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감수하며 치료를 이어가는 현실이 있다. 

    허준 병원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속도보다 안정성, 효율보다 지속성을 우선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지정 화상전문병원 가운데 대학의료원 체계에서 운영되는 병원의 사례로, 사립병원의 공공의료 실천 가능성과 제도적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속도보다 안정성, 효율보다 지속성”이라는 병원 운영 철학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속도보다 안정성, 효율보다 지속성”이라는 병원 운영 철학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다

    허 병원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다”로 요약했다. 그는 “6개월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로는 1년이 걸렸다”며 “직원들이 우려했지만 ‘제대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 지연이 아니라 계획을 재조정한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이 철학은 센터 구축 과정에서도 구체화됐다. 병원은 1.8기압 이상·2시간 이상 치료 원칙을 고수하고, 모든 환자에게 30분간의 사전 교육과 1.5기압 무료 테스트를 시행했다. 허 병원장은 “환자 안전을 위해 단계를 밟았고, 그 결과 안정적이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인 36명 동시 치료 체계를 구축했으며, 응급 중심에서 외래까지 확대해 환자 접근성을 높였다.

    사립병원이 만든 공공의료의 형태

    허 병원장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이 지향하는 가치를 공공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고압산소치료를 도입한 이유는 수익이 아니라 화상센터 치료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한림대학교의료원은 설립 초기부터 공공성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의료를 “정상적이고 타당한 합리적 진료”로 정의했다. 수익보다 환자의 필요를 우선하고,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허 병원장은 “고압산소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로 환자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산정특례 환자는 본인 부담이 5%로 낮아져 1만~2만 원대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화상 진료의 특수성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그는 “화상 진료는 사라질 수 없는 필수 영역이며, 의료진은 병원을 지키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사명감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 지속의 현실적 어려움

    허 병원장은 “고압산소치료는 인력 투입이 많고 경제성이 낮아 대형병원에서도 쉽게 확장하지 못한다”며 “우리도 연간 약 100억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수의료 정책은 계속 나오지만 정작 필수의료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 기준 혼란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지원 방식의 개선도 요구했다. “지원이 인건비 중심에 치우쳐 있으며, 공간 비용과 소모품 비용이 누락돼 있다. 한 번 책정된 지원금이 수년간 고정되면 물가 상승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예산 배분 방식의 구조적 문제도 언급했다. “한정된 예산을 여러 진료과가 나누는 구조는 규모가 작은 분야에 불리하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분야는 별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책은 10년, 100년 단위로 설계해야

    허 병원장은 의료 정책의 시간 단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책은 10년, 20년, 나아가 100년 단위로 설계해야 하나 현실에서는 연내 성과 압박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살리는 것뿐 아니라 이후의 삶을 돌보는 것까지가 의료의 완성이며, 이러한 관점은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압산소치료에 대해서도 “단순히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조직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로, 응급 이후 환자의 일상 복귀까지 돕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립병원의 공공의료,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허 병원장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의 사례를 “사립병원의 공공의료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화상센터와 연계해 공공성과 효율성을 병행하고 있으며, 사립병원도 필수 의료 역할을 실천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규모가 작다고 사회적 필요가 작은 것은 아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별도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병원은 임상 효과 입증 연구를 확대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 고압산소치료 가이드라인 수립에 기여할 계획이다.

    허 병원장은 “속도보다 안정성, 효율보다 지속성이라는 원칙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천천히 가되 제대로 가는 것, 그것이 공공의료를 지키는 방법이며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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