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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환경이 바꾼 노화의 시간표…재생의학이 찾은 새로운 단서

기사입력 2025.10.16 06:00
우주에서 찾은 건강 수명의 열쇠② 가속화된 생체 변화 연구로 여는 예방의학의 새 장
  •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6개월을 보낸 우주비행사는 지상으로 돌아온 뒤 평균 1~2%의 골밀도 손실을 경험한다. 지상에서 고령자가 1년 동안 겪는 변화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세중력과 방사선이라는 극한 환경은 인체의 노화를 단기간에 압축한다. 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실험실’에서 연구자들은 노화의 속도와 재생의 단서를 찾기 위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 이미지=AI 생성
    ▲ 이미지=AI 생성

    압축된 시간 속에서 관찰하는 노화

    우주환경에서 인체가 겪는 변화는 다양하다. 골밀도 감소, 근육량 손실, 심혈관 기능 변화, 면역체계 교란, 시력 저하, 인지 기능 변화 등이 짧은 기간에 관찰된다. 이는 지상에서 노화로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들과 유사하다.

    최정석 인하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우주라고 하면 보통 인류의 미래, 탐험, 우주비행사만 떠올리기 쉽지만, 우주환경은 지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노화 문제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단서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주는 인간 생리의 시간표를 압축시킨다. 과학자들은 이 환경을 이용해 노화를 ‘고속으로 관찰하는 실험실’로 삼고 있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을 복원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기능이 약해진다. 우주환경에서 줄기세포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면 지상보다 빠르게 노화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늦추거나 되돌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우주에서 손상된 조직 모델을 만들고 여기에 세포나 조직 재생 치료제를 적용하면, 실제 인체 노화와 비슷한 상황에서 그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 우주 기반 장기 모델을 제작해 새로운 치료 전략을 시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강건조증에서 찾은 실마리

    이런 접근은 학문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임상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 최 교수가 제시한 대표적 사례는 구강건조증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겪는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가 구강건조증이다. 두경부암 환자의 경우 방사선 치료 후 60~90%가 타액 분비 감소를 경험한다. 노화로 인한 타액선 기능 저하도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 침을 만드는 타액선이 손상되면 음식 섭취, 발음, 치아 건강, 감염 방어 등 일상생활 전반에 불편이 따른다.

    현재 치료는 인공타액 사용이나 필로카르핀 같은 약물 투여에 의존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인공타액은 일시적 증상 완화에 그치며, 약물은 부작용과 효과 지속 시간의 한계가 있다.

    최 교수는 “타액선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그 기능을 회복시키는 성장인자나 유전자 조절 기술을 적용하면, 방사선 치료 환자나 고령층에서 타액선 기능을 되살릴 가능성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우주환경 연구는 이런 접근에 독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방사선에 노출된 우주비행사의 타액선 변화를 관찰하면, 지상의 방사선 치료 환자와 유사한 손상 메커니즘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미세중력 환경에서 줄기세포의 분화와 재생 능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하면, 더 효과적인 세포 치료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엑소좀, 작은 입자의 큰 가능성

    줄기세포 연구에서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엑소좀이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지름 30~150nm 크기의 작은 막 소포체로, 단백질, RNA, 지질 등 다양한 생체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줄기세포에서 분비되는 엑소좀에는 항염증, 조직 재생, 항노화와 관련된 인자들이 들어 있다. 중요한 점은 엑소좀이 줄기세포를 직접 이식하는 것보다 안전하면서도 유사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포 이식은 면역 거부 반응이나 종양 형성 위험이 있지만, 엑소좀은 이런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결국 엑소좀은 세포치료의 ‘간접형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으며, 줄기세포가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유사한 재생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최 교수는 “줄기세포에서 분비되는 작은 입자인 엑소좀을 활용하면 항염, 재생, 항노화 인자를 새로운 치료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환경에서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좀의 특성 변화를 연구하면, 노화나 손상에 대응하는 생체 메커니즘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지상에서 엑소좀 기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엑소좀 치료제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다. 대량 생산, 품질 관리, 표적 전달 기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으며, 현재 여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3D 바이오프린팅, 우주에서 더 정교하게

    우주환경을 활용한 조직 재생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는 3D 바이오프린팅이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세포들이 부유하며 자연스럽게 3차원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지상보다 더 정교한 장기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지상에서 3D 바이오프린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중력이다. 살아 있는 세포를 ‘잉크’처럼 사용해 3차원 조직 구조를 층층이 쌓아 만들 때, 세포를 포함한 바이오잉크는 중력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거나 변형된다. 특히 혈관처럼 속이 빈 관 구조나 복잡한 형태를 만들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지 구조물이나 겔을 사용하지만, 이것이 세포 배양과 조직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이런 문제가 완화된다. 세포들이 자연스럽게 부유하면서 3차원 구조를 형성할 수 있어, 더 정교하고 실제 인체 조직과 유사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2019년 ISS에서는 러시아 연구팀이 미세중력 환경에서 쥐의 갑상선 조직을 3D 프린팅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조직은 지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구조를 유지했다.

    최 교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 우주 기반 장기 모델을 제작해 새로운 치료 전략을 시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든 조직 모델은 신약 개발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고, 세포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줄기세포, 엑소좀, 3D 바이오프린팅은 결국 ‘노화를 이해하고, 손상을 복원하며, 기능을 재생하는 3단계 축’으로 연결된다. 우주환경은 이 세 단계를 하나의 실험실 안에서 검증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다.

    생애 전반의 건강관리 도구로

    우주환경 연구에서 얻은 지식은 특정 연령층을 넘어 전 생애 건강관리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청년층에는 예방의학, 중년층에는 기능 유지, 노년층에는 회복과 재생이라는 각기 다른 접근법이 가능하다.

    최 교수는 “20~30대에서는 줄기세포 기능 유지와 조직 재생 능력 보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우주환경 연구에서 밝혀진 줄기세포 노화 메커니즘은 조기 개입 전략 수립에 참고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40~50대는 현재 건강을 유지하면서 노화를 대비하는 시기다. 1편에서 다룬 인하대 연구팀의 고중력 실험 결과, 특히 타액선이나 청각 모발세포(auditory hair cells) 같은 특정 조직의 손상 메커니즘은 이 연령층에서 조기 감지와 대응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60대 이상에서는 이미 나타난 기능 저하에 대한 치료가 중심이 된다. 최 교수는 “방사선 치료 후 구강건조증, 노화로 인한 청력 손실, 근감소증 등 구체적인 증상에 대해 줄기세포 기반 재생치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다”며 “장기간 우주에 머무는 비행사들의 건강을 지키는 기술이 지상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직접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방향 혜택의 실현

    우주의학은 이제 ‘하늘에서 땅으로’ 흐르는 단방향 학문이 아니다. 우주비행사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지상 환자에게 적용되는 동시에, 지상에서 축적된 의학 지식이 우주탐사에 기여하는 양방향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NASA의 골밀도 손실 연구는 골다공증 치료제 개발에 기여했다. 비스포스포네이트 계열 약물의 효과를 우주비행사 대상 연구에서 검증했고, 이는 지상의 골다공증 환자 치료로 이어졌다. 또한 우주비행사의 시력 변화 연구는 녹내장이나 뇌압 상승 질환의 메커니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반대로 지상에서 개발된 재생의료 기술은 장기 우주탐사에서 우주비행사의 건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화성 탐사처럼 수년간 지속되는 임무에서는 부상이나 질병에 대한 즉각적 치료가 필요한데, 줄기세포나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이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우주환경이 만들어내는 가속화된 노화 모델은 신약과 세포치료제의 효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검증하는 시험대가 되고, 이는 곧 더 나은 항노화 치료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실화를 위한 과제들

    이러한 전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기초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안전성 검증이 최우선이다. 줄기세포 치료나 엑소좀 치료는 아직 장기적 안전성 데이터가 부족하다. 특히 면역 반응, 종양 형성 가능성,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우주환경에서 개발된 기술을 지상에 적용할 때도 환경 차이를 고려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기술 표준화와 품질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줄기세포나 엑소좀의 경우 배양 조건, 분리 방법, 보관 방식에 따라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일관된 품질의 치료제를 생산하기 위한 표준화된 프로토콜 개발이 필요하다.

    비용 절감과 접근성 확보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주환경을 활용한 연구는 현재로서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지상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재현하는 기술 개발, 대량 생산 공정 확립 등을 통해 비용을 낮춰야 더 많은 환자가 혜택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국제 협력과 융합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얻은 통찰이 지상 의료 혁신으로 확장될 때, 인류가 고령화 사회를 대응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이러한 기술들이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안전성 검증, 규제 승인, 비용 절감 등 해결해야 할 단계들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노화의 단서, 우주에서 지상으로

    줄기세포와 재생의료 연구를 중심으로, 우주환경에서 얻은 지식이 지상의 건강관리 기술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인류가 노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조절할 길. 그 단서는 어쩌면 우주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단서들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다. 그 해답은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