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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한강성심병원(허준 병원장)이 고압산소치료 대상을 입원 중증 환자에서 외래 만성질환자로 확대하며 치료 문턱을 낮추고 있다.
병원은 2023년 7월 1·2호기 도입 이후 2년 3개월 만인 지난 9월 1만례를 돌파했고, 7월 21일 외래 전용 3호기를 추가 가동하며 국내 최대 규모인 36명 동시 치료 가능한 다인실 고압산소챔버 시스템을 완성했다.
허준 병원장은 “고압산소치료를 도입한 이유는 수익성이 아니라 화상센터의 치료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속도보다 안정성, 효율보다 지속성을 우선하는 것이 운영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 안전을 위해 1.8기압 이상, 2시간 이상 치료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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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이 높아지면 상처가 빨리 낫는 이유
고압산소치료는 인체가 견딜 수 있는 고압 환경에서 100% 산소를 흡입해 혈중 산소 농도를 높이는 치료법이다.
허 병원장은 “고압 환경에서 산소 용해도가 증가하면 손상된 세포로 산소가 확산해 조직 재생이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압력을 높이면 혈액에 산소가 더 많이 녹아들고, 이 산소가 손상된 조직 깊숙이 전달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염증 억제, 부종 완화, 세균 성장 억제, 혈관 신생 등 생리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상처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은 ▲일산화탄소 중독(연탄가스 중독 포함) ▲감압병(잠수병) ▲공기 색전증 ▲가스괴저 ▲당뇨발 ▲방사선 조직 손상 ▲화상 등이다. 암 회복기, 항암 후 피로, 피부 재생 목적의 치료는 임상 근거 축적 단계로, 비급여로 진행된다.
치료 전 30분 교육, 왜 필수인가
병원은 모든 치료 전 약 30분간의 사전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귀의 압력 평형을 맞추는 ‘이퀄라이징(equalizing)’ 훈련부터 산소마스크 착용, 가압·감압 시 주의 사항까지 실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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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나 간호사는 “1.5기압으로 30분간 진행되는 테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며 “이때부터도 회복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절차는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치료 효과도 지속된다’는 허 병원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는 “고압산소치료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생리 반응을 다루는 만큼, 무리한 속도나 강도보다 안정적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6명 동시 치료 가능한 이유
한강성심병원의 고압산소챔버는 모두 다인용으로, 구조가 각각 다르다. 1호기는 13인 단실형, 2호기는 12인 격실형(8인+4인 분리 운영), 3호기는 외래 환자를 위한 11인 전용 챔버다. 1·2호기는 주로 화상·응급환자 치료에, 3호기는 외래 중심으로 운영된다.
허 병원장은 “다인용 챔버는 인력 부담이 크지만, 여러 환자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어 공공의료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며 “안정성 확보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챔버 내부를 공기로 가압하고, 환자가 산소마스크로 100% 산소를 흡입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챔버 전체를 산소로 채우는 방식은 화재·폭발 위험과 산소 중독 부작용이 커서 사용하지 않는다.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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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날 고압산소치료를 직접 체험했다. 가압이 시작되자 비행기를 탈 때처럼 귀가 먹먹해졌지만, 미리 배운 이퀄라이징을 반복하자 증상이 금세 사라졌다.
다만 모든 환자가 고압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날 함께 체험한 기자 중 한 명은 귀통증으로 중도에 치료를 중단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가압 단계에서는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계속 관찰하며, 통증이나 불편을 호소하면 즉시 감압 또는 중단한다. ‘무리한 압력보다 환자 안전이 우선’이라는 병원의 원칙이 더 와닿는 경험이었다.
2기압에 도달하자 산소마스크를 착용했다. 처음에는 예상보다 답답해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호흡은 안정적으로 돌아섰다.
오다나 간호사는 “산소마스크 착용이 불편하더라도 안전성 때문에 국제 표준인 마스크 방식을 고수한다”며 “챔버 전체를 산소로 채우면 화재·폭발 위험과 산소 중독 부작용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고압산소치료 중 챔버 내부는 TV 음성과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외부에서는 간호사들이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했다. 산소마스크 착용의 불편을 제외하면 내부는 조용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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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부담은 1만~12만 원 수준
입원환자는 주치의 협진을 통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외래환자는 2층 고압산소클리닉에서 예약 후 진료를 받는다. 치료는 가압→산소흡입→감압의 단계로 약 2시간 진행되며, 외래는 1시간 30분 내외로 조정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 일반 입원환자는 본인 부담률 20%(약 4~5만 원), 외래환자는 50%(약 10~12만 원) 수준이다. 화상·당뇨발 등 산정 특례 대상자는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져 1만~2만 원대 치료가 가능하다. 비급여 치료(암 회복기·웰니스 목적)는 약 20만 원 선이며, 일부 실손보험 적용도 가능하다.
응급에서 외래·재활로 확산
최근 몇 년 새 고압산소치료기를 추가 도입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강남성심병원은 2인용 챔버를 설치했고, 일부 병원들도 외래 중심으로 고압산소치료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응급의료 중심에서 외래·재활 중심으로 고압산소치료 인프라가 확산하는 추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다인실 챔버를 상시 운영하는 민간 병원은 여전히 드물고, 전문 인력 확보와 운영비 부담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사립도 필수의료 모델 될 수 있다
허 병원장은 “고압산소치료는 인력 투입이 많고 경제성이 낮아 대형 병원에서도 쉽게 확장하지 못하지만, 한림대의료원은 화상센터와 연계해 공공성과 효율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며 “사립병원이라도 필수의료 역할을 실천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분야일수록 선택과 집중, 별도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며 “향후 임상 효과 입증 연구를 확대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 고압산소치료 가이드라인 수립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