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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알프드오트프로방스(Alpes-de-Haute-Provence)에 위치한 작은 마을 쇼르주(Chorges)로 향했다. 해발 825m에 자리한 이곳은 갭(Gap)과 앙브랑(Embrun) 사이에 위치해 세르 퐁송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한다. 쇼르주는 주변에 아름다운 호수와 산이 많아 자연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이 작은 마을을 방문한 이유는 단 하나,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공 호수 중 하나인 세르 퐁송 호수(Lac de Serre-Ponçon)에서 보트 투어를 하기 위해서다.
터키석 빛 물을 품은 ‘세르 퐁송 호수’
세르 퐁송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물빛이었다. 알프스의 푸른 능선 아래, 호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빛나는 터키석빛 물결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
가이드는 이 환상적인 물빛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호수로 흘러드는 뒤랑스 강(Durance)과 위바이 강(Ubaye)은 알프스의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을 품고 있다. 그 물속에는 '락 플라워(rock flour)'라 불리는 아주 미세한 암석 가루가 섞여 있는데, 이 입자들이 햇빛을 산란시켜 물을 청록색 보석처럼 빛나게 만든다.
햇살이 강한 한낮에는 밝고 투명한 에메랄드빛으로, 해 질 무렵에는 짙은 파랑으로 변하는 물색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모습을 바꾼다. 여기에 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질과 맑은 공기가 더해져, 세르 퐁송은 자연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수정처럼 반짝인다. 특히 여름철 호수 수위가 최고조에 달하면 수온은 23°C까지 올라가며, 물빛은 더욱 선명한 터키석 색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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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 퐁송 호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호수를 에워싼 웅장한 산들이다. 세르 퐁송 호수를 둘러싼 풍경은 마치 거대한 알프스가 호수를 품에 안은 듯한 모습이다. 푸른 수면 위로는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사방으로 펼쳐진 산맥들이 그 푸른 물결을 감싸 안는다.
프랑스 알프스의 바다에서 즐기는 보트 투어
세르 퐁송 호수를 방문하면 꼭 해봐야 한다는 보트 투어를 시작했다. 보트가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자, 금세 호수는 거대한 거울로 변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알프스의 능선이 수면 위에 뒤집혀 비친다. 가까이서 보니 호수의 색은 다채로웠다. 햇빛이 물결에 부딪힐 때마다 에메랄드빛, 청록빛, 때로는 은빛으로 변하며 그 색이 살아 있는 듯 출렁였다. -
가이드는 이곳을 '알프스의 바다(La mer des Alpes)'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르 퐁송은 유럽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 중 하나이자, 자연 못지않게 생명력 넘치는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뒤랑스(Durance) 강을 막아 만든 댐 위에 이렇게 푸른 바다가 펼쳐질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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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는 세르 퐁송 호수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로 향했다. 바로 생 미셸 예배당(Chapelle Saint-Michel)이다. 댐이 만들어질 때 물에 잠기지 않고 남은 이 예배당은, 지금은 호수 위를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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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성당 같다. 1955년부터 1961년 사이 댐 건설 당시, 이 예배당은 파괴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예배당이 서 있던 언덕의 고도가 호수의 최고 수위보다 약간 높았던 것이다. 몇 미터 차이로 예배당은 살아남았고, 물이 차오르며 언덕은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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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의 다음 목적지는 샹틀루브 다리(Pont de Chanteloube)였다. 샹틀루브 다리는 지역 간 연결을 목적으로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1935년 공사가 중단되면서 단 한 대의 기차도 지나가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후 1961년 세르 퐁송 댐이 가동되면서 호수 수위가 상승하여 다리의 주요 구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234m 길이의 이 석조 고가교는 14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S자 형태로, 수위가 773m 이하로 낮아지는 겨울철에만 도보로 건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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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서 내려다 본 물 밑 샹틀루브 다리는 신비로웠다. 여름철 호수 수위가 높을 때는 반짝이는 수면 아래 완전히 잠겨 몇 개의 돌만 물 위로 살짝 드러난다. 가을과 겨울, 호수 수위가 773m 아래로 떨어지면 웅장한 아치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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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투어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터키석 빛 호수 위에 떠 있는 예배당,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다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알프스의 산들. 여름에는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겨울이면 주변이 스키장으로 변하는 이 지역은 사계절 내내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남프랑스 알프스의 숨겨진 보석, 세르 퐁송은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프로방스 알프 코트다쥐르 관광청
- 알프드오트프로방스(프랑스) = 서미영 기자 pepero9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