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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부총리급 부처로 승격한 1일, 국가 주도 의료 인공지능(AI) 프로젝트 ‘닥터앤서 3.0’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출범했다. 병원 진단을 넘어 환자 일상 속 예후와 생활 관리까지 AI를 확장하는 ‘포스트케어 모델’의 첫걸음이다.
출범식에서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어제 ‘정부조직법’이 통과돼 오늘 0시부터 과기정통부가 부총리 부처가 됐다”며 “AI 예산을 기존 대비 3배인 10조 1천억 원 규모로 늘리고, AI를 전 의료 주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닥터앤서 3.0도 이런 정책 기조에 따라 예산이 확대됐다. 닥터앤서 3.0은 당초 23억 원 예산으로 4종 질환을 선정했으나, 하반기 추경 40억 원이 증액돼 올해 총 63억 원 규모로 10종 질환으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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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앤서 3.0은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중심으로 10개 의료기관과 16개 기업 등 총 26개 기관이 참여해 3년 3개월 동안 암·심장·피부·산모 등 질환의 AI 기반 포스트케어 서비스를 개발한다. 포스트케어는 치료 이후 환자의 일상에서 생기는 관리 공백을 AI로 메우는 개념으로, 단순 진단 지원을 넘어 예후·생활 관리까지 확장하는 모델이다.
이번 과제는 1만 2,800명 규모의 임상시험을 거쳐 8건 이상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예측 정확도(AUROC) 90% 이상을 목표로 한다. 병원·AI·웨어러블 기기를 연계해 '병원에서 일상으로 이어지는 환자 맞춤형 관리 모델'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으로, 닥터앤서 2.0 대비 임상 범위와 성능 목표를 대폭 확대했다.
국정과제와 맞닿은 ‘삶의 질 향상’ AI
프로젝트는 두 개의 연구 컨소시엄으로 운영된다. 서울성모병원이 주관하는 1세부 과제는 암·심장·피부 질환을, 세브란스병원이 주관하는 2세부 과제는 산모·소아·관절·소화기암 분야를 맡는다.
1세부 과제 총괄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정부 국정과제에 제시된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 해결)’과 ‘잘사니즘(삶의 질 향상)’을 언급하며 “닥터앤서 3.0은 단순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제는 정부 5대 국정 목표 가운데 ‘혁신 경제’·‘균형성장’·‘든든한 사회’와 직접 연결되며, 의료 AI로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고 고령화 시대 만성질환 관리 부담을 완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닥터앤서 3.0은 이를 통해 치료 이후 환자의 일상까지 이어지는 ‘포스트케어’ 관리 모델을 제도권 안에서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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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부 과제 총괄 권자영 세브란스병원 교수(산부인과)는 “수술이 끝나면 환자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사이 모니터링이 부족하고, 생활 습관 관리나 병원 방문 시점을 스스로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심장질환 환자의 조기 재입원이나 신장암 환자의 생활 관리 실패로 인한 투석 전환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김대진 교수는 “신장암 환자가 짠 음식과 음주로 악화해 ‘신부전→투석→우울증→자살’로 이어지는 경로를 AI로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에이젠틱 AI’, 병원 데이터와 일상 잇는 다리
닥터앤서 3.0은 병원 데이터와 실생활 데이터를 잇는 ‘에이젠틱 AI(Agentic AI)’를 핵심 축으로 삼는다.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환자 상황을 분석해 자율적으로 대응하는 AI라는 점에서, 개인 의료 정보 없이 일반적 답변을 내놓는 범용형 챗봇과는 성격이 다르다.
권자영 교수는 병원 EMR(전자의무기록)과 웨어러블 기기, 환자 자가보고 정보를 실시간 연동해 개인 맞춤형 관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산모가 “머리가 아프고 아기가 안 논다”고 입력하면, AI는 나이·임신 주수·최근 혈압 기록을 종합해 혈압 측정과 태아 도플러 검사를 안내하고 결과에 따라 병원 방문을 권고하거나 환자의 상태와 관련된 핵심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한다. 이는 시뮬레이션 예시지만, 실제 적용 시 환자 맞춤형 대응이 가능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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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교수는 실제로 어머니의 심전도 이상을 조기 발견해 생존 기간이 3년 연장된 경험을 소개하며, “한라산 등반 중 가슴 통증이 와도 ‘괜찮겠지’ 하고 오르다 심장마비로 헬기 이송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모부터 암 환자까지…질환별 맞춤 솔루션 가동
질환 특화 솔루션도 구체화했다. 1세부 과제는 ‘리메디아(REMEDIA)’ 플랫폼을 기반으로 암 환자 관리용 ‘캠메디아(CaMedia)’, 심장질환 관리용 ‘하트메디아(HeartMedia)’, 피부질환 관리용 ‘스킨메디아(SkinMedia)’를 개발한다. 캠메디아는 신장암 환자의 신부전 위험을 예측하고 유방암 환자의 림프부종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하트메디아는 급성 악화를 조기 감지해 재입원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다. 스킨메디아는 아토피 환자의 피부 이미지를 분석해 증상 변화를 추적하고 보험 적용 정보까지 안내한다.
2세부 과제는 ‘트리에이전트(Tri-Agent)’ 시스템으로 산모의 태아 심박·자궁수축 모니터링, 소아 만성 호흡기질환의 가정 내 악화 예측, 관절 수술 환자의 재활 운동 분석, 위암·대장암 환자의 수술 후 합병증 및 항암 부작용 관리를 묶어낸다.
닥터앤서 3.0은 예후 관리에 집중한다. 다만 데이터와 운영 모델이 안정되면 예방적 건강 관리로 확장할 여지도 남겨뒀다.
1·2세대 닥터앤서가 남긴 성과와 숙제
닥터앤서 1.0(2018~2020)은 488억 원으로 21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12개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받았고, 닥터앤서 2.0(2021~2024)은 280억 원으로 24개를 개발해 이 가운데 12개가 인허가를 획득했다. 약 50%의 인허가율은 AI 의료기기 인허가의 높은 문턱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장 확산은 제한적이었다. 닥터앤서 1.0에서 개발된 소프트웨어 21개 중 실제 건강보험 수가를 받은 것은 11개, 2.0에서 건강보험 수가를 받은 사례는 뷰노 정도로 확인된다. 인허가를 받더라도 건강보험 급여가 뒤따르지 않으면 실제 의료 현장 도입은 어렵다.
국책사업은 개발과 인허가 단계까지는 지원하지만, 이후 급여 인정과 확산은 민간의 지속 투자와 시장 개척 역량에 달려 있다. 이는 닥터앤서를 비롯한 의료 AI 국책사업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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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중동까지…해외 진출 로드맵 본격화
해외 진출은 출범 단계부터 구체화했다. 김대진 교수는 “11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나 닥터앤서 3.0을 소개할 예정”이라며 “전 세계 가톨릭 병원 3천 곳에 우리 솔루션을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비전 2030’과 연계한 병원정보시스템(HIS) 수출을 모색하고, 동남아시아는 각국 상황에 맞춘 디지털 의료 솔루션 확산을, 일본은 의료정보시스템 ‘나디아(NADIA)’의 도입·운영을 추진하는 안이 소개됐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은 “닥터앤서 3.0을 계기로 의료 분야에 AI를 전면적으로 확산하고, 세계 최초 ‘AI 병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강영 세브란스병원장은 “닥터앤서 3.0이 환자 중심 의료 실현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AI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3년 뒤, 국민이 실제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느냐다. 닥터앤서는 지난 7년간 기술 개발 역량을 입증했다. 이제는 제도적 장벽을 넘어, 병원에서 일상으로 이어지는 관리의 새 표준을 현장에서 구현해야 한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