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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종식됐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다. 팬데믹의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바이러스 감염 자체가 인체에 남긴 직접적 손상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활동 감소·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환경 변화가 간접적으로 건강을 흔든 경우다. 최근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는 이 두 요인이 결합해 세대별로 다른 건강 리스크를 만들었음을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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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발달기 면역 체계의 흔들림
2025년 8월 국제 학술지 Microorganisms에 실린 인하대병원 김동현·곽병옥 교수 연구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영유아의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진 모습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생후 2세 미만 영유아의 장내 세균을 16S rRNA 시퀀싱으로 조사했다. 장내 세균 종류를 정밀 파악하는 유전자 분석 기법이다.
코로나19 확진 환아와 건강한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 ‘대표적 유익균’으로 알려진 페칼리박테리움·클로스트리디움·루미노코커스는 줄고, 대장균·비피도박테리움·스트렙토코커스 같은 균은 늘어나면서 장내 환경이 불균형한 양상을 보였다. 면역 방어에 중요한 인터루킨-17(IL-17), 톨유사수용체(TLR) 등 신호 경로가 억제된 점도 확인됐다.
곽병옥 교수는 “영유아 시기의 장내 환경 변화는 장기적인 건강과 면역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만 소규모 분석인 만큼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결과는 영유아기의 장 건강 관리가 장기적 면역 발달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기 건강검진과 생활 위생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아동: 당뇨병 유병률 증가와 장염 재유행
2024년 12월 JAMA Pediatrics에 게재된 중앙대학교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고려대안산병원 공동 연구는 팬데믹 기간 소아·청소년 당뇨병 진단이 늘어났음을 보여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세 미만에서 1형 당뇨병은 1.19배, 2형 당뇨병은 1.41배 증가했다. 특히 팬데믹 첫해에는 당뇨병성 케톤산증 동반율이 1형 환아에서 42.8%로 이전(31.3%)보다 크게 올랐고, 중환자실 입원율도 14% 이상으로 높아져 초기 진단의 중증도가 심화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감염 자체보다는 활동량 감소와 비만 증가 같은 환경 요인이 주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해외 사례도 보고됐다. 미국 CDC는 코로나19에 걸린 청소년에서 감염 경험이 없는 청소년보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컸다고 밝혔다. 국내외 연구 결과는 팬데믹 환경 변화가 아동기의 대사 건강을 크게 흔들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소아 비만 관리와 정기 혈당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아동 감염병 양상도 달라졌다. 2025년 7월 Annals of Laboratory Medicine에 발표된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김현수 교수팀 연구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아동 장염 바이러스인 사포바이러스 감염률이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2022년 여름 감염률은 9.9%까지 치솟았고, 2~5세 아동에서 가장 집중됐다. 유전자형 분석에서는 GI.1과 GII.3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김 교수는 “팬데믹 시기 노출이 줄어 사회적 면역 형성이 지연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일상적인 위생 관리와 예방접종이 아동기 감염병 대응에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시사한다.
청년층: 수면제 사용, 예측치를 크게 웃돌아
서울대병원 이유진·서울의대 신애선 교수팀의 연구는 2010~2022년 불면증 환자 814만 명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전체 수면제 처방 건수는 2010년 1,050만 건에서 2022년 4,240만 건으로 4배 이상 늘었고, 팬데믹 기간 모든 연령대에서 처방량이 예측치를 초과했다. 특히 18~29세 청년층의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해당 연구는 2025년 8월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JKMS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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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교수는 “젊은 층의 수면제 사용은 단기간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 패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안전한 사용과 부작용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성과 고령층에서는 절대 처방량이 많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러한 결과는 팬데믹이 젊은 층의 생활 리듬과 정신건강에 구조적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며, 전문가들은 일정한 취침 습관과 전자기기 사용 자제 등 기본적인 수면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 세대: 코로나 이후 심혈관질환 위험 지속
2025년 6월 미국심장협회 공식 학술지 Circulation에는 코로나19 감염자의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비감염자보다 62% 높다는 경희대 연동건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 단위 데이터를 분석해 진행한 이번 연구에서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 증가는 알파·델타·오미크론 변이 시기 모두에서 일관되게 나타났으며, 최대 18개월까지 지속됐다. 중증 감염자의 위험은 10배까지 뛰었지만, 백신 접종자는 위험이 약 30% 줄었다. 다만 실제 절대 발생률은 뇌졸중 0.24%, 심근경색 0.05%, 주요 사건 0.15%로 낮은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팬데믹 이후에도 기저질환 환자의 관리와 예방 전략 수립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에게 정기 심혈관 검사와 백신 접종 점검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 직·간접적으로 남긴 건강의 적신호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코로나19는 감염 자체가 영유아의 면역 발달과 성인의 심혈관계에 직접적 부담을 남겼고, 팬데믹 환경 변화는 아동의 대사질환·감염병, 청년층의 수면 건강을 흔들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생애주기별 맞춤 관리 전략과 함께 국가 차원의 장기적 모니터링 체계와 보건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향후 감염병 대응에서 나이에 따른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건강 관리 체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