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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의 의료 현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전문의 3분 진료를 위해 13시간 대기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고령화 시대의 의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27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국회의원 최보윤이 공동 주최한 ‘국민이 원하는 진짜 의료혁신’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 생산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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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 발표에 나선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에이아이트릭스 대표)는 고령화 사회의 의료체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로 생산성과 접근성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노인 의료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현재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의료진이 단순·반복 진료에 매달리는 한, 환자와 의료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진료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3~5분 진료를 위해 13시간 대기하는 것이 합당한가”라고 반문하며 의료 시스템의 비효율을 지적했다. 다만 이는 실제 수치를 뜻한다기보다는 한국 의료 현장의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단순·반복 진료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보조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진은 중증·필수 환자에 집중할 수 있다”며 재택·비대면 진료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본은 이미 재택의료가 제도권에 편입돼 있고, 한국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또 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로 행위별 수가제를 언급했다. 이는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항목별로 수가가 책정되는 건강보험 구조로, 많이 진료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노년층의 만성질환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수익성이 낮은 진료는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양면성이 있다.
이어 그는 의료비·접근성·서비스 질이 동시에 충족되기 어려운 ‘보건의료 철의 삼각(iron triangle)’ 개념을 설명했다. 이는 세 요소가 서로 충돌하는 구조로, 비용을 줄이면 질이 떨어지고, 접근성을 높이면 비용이 늘어나는 식의 딜레마다. 김 교수는 “고령화 시대에는 이 구조적 한계를 깨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의료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는 AI와 재택의료가 결합해 병원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경계 없는 의료(borderless healthcare)’가 구현돼야 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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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발언은 의료 혁신을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생산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로 정의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표준화, 법·제도 정비, 사회적 합의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디지털 기술 외에도 수가 개편이나 의료 인력 재배치 같은 병행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 교수 외에도 다양한 의료 혁신 방안이 제시됐다. 강은경 카카오헬스케어 상무는 의료마이데이터가 만성질환 관리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실제로 ‘케어챗’ 서비스 사례를 소개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가 진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용식 퍼즐AI 대표는 의료진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의무기록 작성에 쓰고 있다며, AI 기반 자동화를 통해 번아웃 문제를 줄이고 환자 대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재원 나만의닥터 대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산한 비대면 진료가 이미 492만 명이 이용하는 일상적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며, 국민 체감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의료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법·제도적 공백을 지적하며,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고령화 사회 한국 의료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와, 이를 풀기 위한 다양한 해법 모색의 필요성을 환기한 자리였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또 다른 핵심 의제인 ‘의료마이데이터’를 중심으로 혁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볼 예정이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