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상상 속 남프랑스의 풍경이 현실로 펼쳐졌다…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 여행기

기사입력 2025.08.18 11:19
알프스와 프로방스가 만나는 곳, 라 본 에타프에서의 특별한 하루
  • 6월 말 남프랑스에서는 보랏빛으로 물든 라벤더 밭을 볼 수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6월 말 남프랑스에서는 보랏빛으로 물든 라벤더 밭을 볼 수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늦은 오후,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남프랑스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의 화려한 해안가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내륙 지역, 바로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ALPES-DE-HAUTE-PROVENCE)'로 향하는 길이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차량으로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에 속해있는 샤토 아르누 생 오방(Château-Arnoux Saint-Auban)을 향해 출발했다. 약 1시간 30분간의 드라이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인상파 화가들의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듯 신비로웠다.

    도로 양편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이 보랏빛 물결을 이루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6월 말의 라벤더는 한창 절정기를 맞아 진한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빨간색 양귀비 밭이 루비를 뿌려놓은 듯 화려함을 더했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 풍경 속에서 칼날처럼 쭉 뻗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은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소설과 영화에서 봐왔던 그 낭만적인 분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약 1시간 반의 드라이브 끝에 도착한 샤토 아르누 생 오방. 호텔 앞에 내리는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진한 허브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로즈마리, 라벤더, 타임... 여러 허브들이 어우러진 향이 천연 아로마테라피를 받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18세기 마차 여관을 개조해 만든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 호텔 이름에서 '에타프(Etape)'는 '무대, 단계'라는 뜻으로, 알프스로 향하는 여행자들이 들렀다 가면 좋은 휴식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만큼이나 이곳은 완벽한 '에타프'였다.

  •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의 레스토랑(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의 레스토랑(사진촬영=서미영 기자)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은 미슐랭 1스타를 받은 곳이다. 총괄셰프인 제니 글레즈(Jany Gleize)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요청으로 세계 정상 만찬을 담당하기도 했다. 제니 셰프는 미슐랭 1스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소탈하고 친근했다.

    미슐랭 1스타 셰프와 함께하는 허브 가든 투어


    다음 날 아침에는 미슐랭 1스타 셰프 제니와 함께하는 쿠킹 클래스에 참석했다. 쿠킹 클래스는 이곳의 주인인 셰프와 함께 농장을 거닐며 직접 허브를 수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 제니 글레즈(Jany Gleize) 셰프와 함께하는 허브 가든 투어(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제니 글레즈(Jany Gleize) 셰프와 함께하는 허브 가든 투어(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요리의 시작은 좋은 재료에서 나옵니다. 여기 우리 가든에서 오늘 사용할 재료들을 직접 보고, 맛보고, 향을 맡아보세요."

    셰프는 정성껏 가꾼 각종 채소와 허브를 쿠킹 클래스 참석자들에게 하나씩 소개하며 향을 맡고 맛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카모마일 꽃을 따서 향을 맡게 해주며 "이 카모마일도 저희가 직접 키운 거예요. 어제 저녁 식사에서 드신 카모마일 차도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제니 글레즈(Jany Gleize) 셰프와 함께하는 허브 가든 투어(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제니 글레즈(Jany Gleize) 셰프와 함께하는 허브 가든 투어(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가든을 돌아다니다 보니 비슷하게 생긴 두 식물(라벤더와 라방당)을 발견했다. 셰프가 두 식물의 향을 각각 맡게 해주었다. 라방당이 훨씬 진하고 깊은 향을 가지고 있었다. "라방당은 산업성과 효율성이 좋아 가장 많이 사용되고, 라벤더는 명품 브랜드 향수나 고급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죠.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 지역에서는 두 품종 모두 자라지만, 특히 라벤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죠."

    가든 한편에는 거대한 올리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셰프는 이 나무들이 150년 이상 된 나무로 셰프의 증조할아버지 시대부터 이 땅에서 자라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셰프가 어렸을 때도 이 나무 아래에서 뛰어놀았을 것이고, 이제는 그의 딸 제인(Jane)이 이 전통을 이어받아 함께 요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프로방스 전통 요리 '파르시' 만들기


    셰프는 농장 견학을 하며 직접 손으로 딴 허브와 채소를 가지고 주방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참석자들과 함께 만들 음식 이름은 프로방스 지역의 여름철 대표 요리인 '파르시(Farci)'. 파르시는 프랑스어로 '속을 채워 넣었다'는 뜻이다. 셰프가 보여준 야채들은 아기자기하게 작고 귀여웠다. "파르시는 이렇게 작은 야채들을 쓰는 게 특징이에요. 아기 야채들 같죠?"

  • 프로방스 전통 요리 '파르시'를 조리하는데 사용하는 식재료(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프로방스 전통 요리 '파르시'를 조리하는데 사용하는 식재료(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제니 셰프가 파르시 속 재료를 채워넣고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제니 셰프가 파르시 속 재료를 채워넣고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음식 속 재료로 들어가는 곡물은 '쁘띠 에포트르(Petit Épeautre)'라는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적인 밀 종류였다. 쁘띠 에포트르는 글루텐 함량이 낮아서 소화가 잘 되고, 현미 대체용으로도 많이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 제니 셰프가 파르시를 만들고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제니 셰프가 파르시를 만들고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조리의 마지막 과정은 파르시 위에 올리브 오일을 아낌없이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셰프는 올리브 오일이 프로방스의 맛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라고 강조했다.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올리브오일은 반드시 지역산 오일만을 사용했고, 테이블에 놓인 카모마일 차도 가든에서 직접 키운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5대째 이어져 내려온 가족의 철학과 전통이었다.

    라 본 에타프에서 보낸 쿠킹 클래스는 특별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넘어, 이 땅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호텔 라 본 에타프(La Bonne Etape)(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제니 셰프가 ‘에타프(Etape)’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준 대로, 이곳은 여행자들에게 완벽한 휴식처였다. 알프스로 향하는 길목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프로방스의 진정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 호텔 라 본 에타프 수영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 호텔 라 본 에타프 수영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호텔 수영장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50년 된 올리브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석양, 허브 가든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 그리고 저 멀리 알프스 산자락이 만드는 실루엣...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미슐랭 1스타 셰프와 함께 가든을 돌아다니며 직접 허브를 따고, 그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경험. 5대째 이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150년 된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보낸 시간. 이런 경험들은 어떤 럭셔리 호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허브 향이 가득한 이곳에서 느낀 것은 진정한 여행의 의미였다. 새로운 곳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감동이야말로 여행의 진수였다.

    라 본 에타프에서의 하루는 끝났지만,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에서의 모험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 특별한 땅이 앞으로 어떤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프로방스 알프 코트다쥐르 관광청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