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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자는 항암치료 과정에서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이는 항암제 치료 중 나타나는 일시적 인지기능 저하 현상인 ‘케모 브레인(Chemo Brain)’으로, 환자들 사이에서는 치매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불러왔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신동욱 교수,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한경도 교수,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수민 교수 공동 연구팀은 유방암 환자의 치매 위험을 분석한 결과가 국제 학술지 JAMA Network Open(IF=10.5) 최근호에 게재됐다고 18일 밝혔다.
연구팀은 2010~2016년 사이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 7만701명을 기준으로, 나이와 성별 등 조건을 맞춘 일반 인구 대조군 18만 360명과 비교했다. 중앙값 7.9년에 이르는 추적 관찰 기간 치매 진단은 환자군에서 1000인년당 2.45건, 대조군에서 2.63건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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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나이, 소득수준, 기저질환, 생활 습관 등 치매 관련 위험 인자를 보정했을 때, 유방암 환자의 치매 위험은 일반 인구 대비 약 8% 낮았다. 특히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는 위험이 23%까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의 잠재적 작용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일 것으로 분석했다. 항암제 중 안트라사이클린 계열 약물은 치매 유발 물질로 알려진 타우 단백질의 축적을 억제하거나, 이미 쌓인 단백질을 제거하는 보호 효과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사선 치료 역시 뇌 염증 반응을 줄여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해외 보고가 있어, 비슷한 영향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다만 같은 유방암 환자라도 위험 요인에 따라 치매 발병률은 달랐다. 흡연자는 위험이 2.04배, 당뇨 환자는 1.58배, 만성 신질환 환자는 3.11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욱 교수는 “유방암 환자들이 항암치료 중 인지기능 저하를 경험할 수 있지만 일시적일 뿐 치료 과정에서 회복되기 마련”이라며 “항암치료 탓 치매 걱정은 내려놓고, 합병증 관리를 잘하면서 치료에 전념해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수민 교수도 “유방암 치료 과정에서 일시적인 인지기능 저하를 겪는 분들이 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인지기능 저하가 장기적인 치매 위험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치료에 대한 불안보다 회복과 건강 유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