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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가 파킨슨병 신호?” 서울대병원, 수면장애 통한 기전 차이 규명

기사입력 2025.08.04 18:07
렘수면장애 유무 따라 ‘몸-뇌’ 다른 발병 경로 확인…맞춤 진단·치료 기반 기대
  • 수면 중 몸을 과도하게 움직이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이른바 ‘잠꼬대’가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의 조기 신호일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연구팀은 수면장애인 렘수면행동장애(RBD)의 유무에 따라 파킨슨병의 발병 경로와 기전이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차이를 혈액 속 대사체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을 ‘몸에서 시작되는(body-first)’ 유형과 ‘뇌에서 시작되는(brain-first)’ 유형으로 나누는 최근의 학계 가설을 뒷받침하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면장애 있는 환자, 장내 미생물 대사체 증가

    연구팀은 총 101명의 혈장 샘플을 수집해 ▲건강한 대조군 ▲수면장애(RBD)만 있는 그룹 ▲수면장애가 동반된 파킨슨병 환자군 ▲수면장애가 없는 파킨슨병 환자군 등 4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후 주요 장내 미생물 유래 대사체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RBD가 동반된 파킨슨병 환자와 RBD 단독 그룹에서 2차 담즙산, p-크레솔 황산염, 페닐아세틸글루타민 등이 공통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몸에서 시작되는 파킨슨병’ 유형의 존재를 시사하며, 장내 환경 변화가 파킨슨병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장과 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반면, 수면장애가 없는 파킨슨병 환자군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혈당 수치가 상승하고, 카페인, 이노신, 요산 등 일부 대사체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뇌에서 시작되는 파킨슨병’과 유사한 특징으로, 파킨슨병이 단일한 병태가 아닌 여러 하위 유형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 렘수면행동장애(RBD) 유무에 따른 파킨슨병 하위 유형 대사체 프로파일. RBD 그룹(iRBD, PD-RBD+)에서 장내 미생물 유래 대사체인 2차 담즙산, p-크레솔 황산염, 페닐아세틸글루타민이 증가한 반면, RBD 비동반 파킨슨병에서는 이러한 대사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결과는 RBD 동반 파킨슨병이 ‘몸에서 시작되는(body-first)’ 유형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지 제공=서울대병원
    ▲ 렘수면행동장애(RBD) 유무에 따른 파킨슨병 하위 유형 대사체 프로파일. RBD 그룹(iRBD, PD-RBD+)에서 장내 미생물 유래 대사체인 2차 담즙산, p-크레솔 황산염, 페닐아세틸글루타민이 증가한 반면, RBD 비동반 파킨슨병에서는 이러한 대사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결과는 RBD 동반 파킨슨병이 ‘몸에서 시작되는(body-first)’ 유형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지 제공=서울대병원

    머신러닝 모델로 하위 유형 예측 가능성 확인

    연구팀은 각 그룹의 대사체 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기반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수면장애 유무에 따라 구분된 파킨슨병 하위 유형을 일정 수준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측 정확도는 수면장애가 없는 파킨슨병 환자군에서 80%, 수면장애가 있는 환자군에서 69%, 전체 RBD 그룹에서는 74%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모델이 향후 파킨슨병의 하위 유형 구분이나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병원 김한준·정기영 교수, 포스텍 고아라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이선재 교수, 성균관의대 이연종 교수의 공동 연구로 수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NPJ 파킨슨병(NPJ Parkinson’s Disease)’ 최근호에 게재됐다.

    수면 중 이상행동, 단순한 피로로 넘기지 말아야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떨림·근육 경직·동작 느림 같은 운동 증상 외에도 후각 저하, 변비, 수면장애 등 다양한 비운동 증상이 동반된다. 특히 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의 전조 증상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이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수년 내 파킨슨병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연구팀은 수면 중 이상행동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스트레스나 수면 질 저하로 넘기지 말고, 필요시 신경과 전문의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서울대병원 김한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에서 렘수면행동장애의 유무가 발병 기전과 진행 양상에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며 “장내 미생물에서 유래한 특정 대사체가 파킨슨병의 생물학적 표지자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조기 진단과 맞춤형 치료 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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