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방산의 위상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묵묵히 우리 무기체계의 완벽한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 중소 방산업체들이 있습니다. ‘방산UP’은 더 높이 올라갈 K-방산업체들의 성장과 혁신 스토리를 전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3년, 러시아는 정찰 중 활주로에 주기돼 있던 우크라이나 Su-25 전투기 한 대를 발견한다. 러시아군은 곧바로 자폭드론을 보냈고 이내 전투기는 큰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기습공격에 성공한 러시아군은 “자국의 자폭드론이 값비싼 우크라이나 전투기를 파괴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파괴된 우크라이나 전투기는 ‘가짜’였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속이기 위해 만든 진짜 같은 가짜 ‘디코이(Decoy)’ 전투기였다.
-
디코이란 적을 속이고 교란하는 가짜 무기로, 쉽게 말해 적의 공격력을 낭비하게 만드는 미끼다. 디코이는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술이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에도 나무로 만든 M142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으로 러시아를 낚아 재미를 봤다. 이후 전차, 곡사포, 방공 레이더 등 각종 디코이를 만들어 전장에 배치했다. 물론 러시아도 디코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적에게 디코이는 굉장히 귀찮은 존재다. 디코이에 속아 고가의 미사일과 자폭드론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심리전 도구로 활용돼 조롱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적은 디코이에 속지 않기 위해 정찰자산으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느라 진땀을 뺀다.
아군은 저렴한 디코이로 물자와 병력을 보호할 수 있으며, 적의 공격을 늦출 수도 있다. 디코이가 정교하지 않아도 도움이 되는 이유다.
-
◇ 국내 유일의 형상기만 디코이 전문 제작업체
최근 SNS에서 큰 화제가 된 F-35 전투기 디코이가 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F-35 전투기로 변신하는 영상이었다.
그동안 전쟁에 쓰인 디코이들은 외형 모사 수준의 더미(Dummy)였다. 멀리서 볼 땐 속을 수 있지만 근거리에선 쉽게 가짜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화제가 된 F-35 디코이는 단순한 풍선 형태가 아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으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거기에 한국 업체가 만들었다고 소개돼 더 주목받았는데, 바로 국내 유일의 형상기만 디코이 전문 제작업체 ‘시울프’가 그 주인공이다.
-
◇ 낚시인들을 위한 회사에서 적을 낚는 회사로
사실 시울프는 구명조끼로 유명한 회사다. 바다낚시용 팽창식 간편 구명복과 낚시용품을 만드는 해양구명장비 전문 생산업체로 낚시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다.
시울프는 2013년 해군의 해상부유형 팽창식 대함유도탄 기만체 개발 참여를 계기로 디코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이 운용하는 K1A2 전차를 시작으로 본격 형상기만 디코이 제작에 나섰다. 시울프는 20년 넘게 쌓아온 팽창 기술 노하우를 디코이 개발에 녹여냈다.
-
디코이 개발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울프는 3년 동안 연구개발한 팽창형 K1A2 전차를 들고 2017 ADEX 방산 전시회에 참가했다. 국내 업체로는 처음 선보인 실재와 똑같은 신기한 디코이 모습에 관람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야외에 전시된 디코이 전차 포신이 바람에 계속 흔들리고 죽어, 안내판으로 받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밖에도 시울프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다 정교한 디코이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2018년 디코이 R&D 센터를 설립해 형상기만 뿐만 아니라 미래 전장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만 시스템도 함께 연구했다.
-
그 결과, 개선을 거듭한 K1A2 디코이 전차는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실시된 군 운용시험평가에서 군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며 결실을 맺었다. 3계절 환경 적합성, 레이더 테스트, 24시간 이상 형상 유지, 악천후 운용 가능 여부 등 다양한 테스트를 수행하며 그동안 연구개발한 기술들을 검증받았다.
현재는 K2 전차, K9 자주포, F-35 전투기 등 여러 제품군을 보유한 디코이 전문 업체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
- ▲ 시울프의 하이마스 디코이 시연 영상 / 영상 제공=유용원TV
◇ 기동도 하고 레이더에도 잡히고 “이거 진짜예요?”
시울프의 디코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으로 적을 유혹한다. 안준영 시울프 디코이 연구기획실 과장은 “형상기만은 물론이고, 기동도 하고 레이더에도 실재와 유사한 형태로 잡힌다”며 “실제 장비가 내는 전파와 주요 부위 열도 모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가 개발한 하이마스 디코이의 경우, 원격으로 조종해 이동할 수 있으며 로켓 포드도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심지어 연막탄 살포 기능으로 로켓 발사 장면도 연출할 수 있다.
-
시울프가 개발한 디코이는 고정형과 이동형으로 나뉜다. 고정형은 방어에 초점을 둔 단계로, 신속한 설치와 해체가 장점이다. 고정형은 궤도형 지상장비, 항공기, 미사일 포대가 있다. 안 과장은 “고정형 전체 무게는 80~100kg으로 나눠서 도수 운반이 가능하며 3~4명의 인원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서 “설치와 해체 모두 15~2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특히 궤도형은 모듈화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군의 K1A2, K2 전차, K9 자주포에서부터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 팔라딘 자주포, 영국의 챌린저 전차 그리고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와 PzH 자주포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아울러 외형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적외선, 레이더 탐지와 포신 무선 조종도 지원한다.
-
이동형은 컨테이너 박스로 제작해 수송에 중점을 둔 형태다. 박스 형태로 효율적인 보관과 적재 및 이동이 용이하다.
안 과장은 “무게는 고정형보다 많이 나가지만 더 정교한 기만력을 자랑한다”며 “F-35 디코이는 실제 전투기와 98% 수준으로 구현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동형은 고정형보다 설치와 해체가 간편하다. 1~2명의 인원으로 작업할 수 있으며, 시간은 10~15분 정도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동형 디코이는 무선 조종을 통해 실제 장비가 움직이는 것처럼 모사하고 주행할 수 있다. 설치 후에는 한 명의 운용요원이 여러 대의 디코이를 무선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 세계가 주목하는 국산 디코이
김재홍 시울프 대표는 지난 6월 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무기와 똑같은 크기로 디코이를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디코이 사업을 시작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빛이 보이고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어 “현재 미국, 대만, 중동 등 다양한 국가에서 자국이 보유한 무기 제작이 가능한지 문의가 많다”며 “곧 수출 예정인 국가가 있다”고 전했다.
-
또 김 대표는 “일부 방산업체와는 공동개발 또는 패키지 수출 협력 제안도 있어 함께 추진하고 있다”면서 “시울프가 앞으로 어떤 디코이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지 지켜봐 달라”고 했다.
한편, 영국 더타임스는 “영국군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5대를 지원할 때마다 디코이 30대를 함께 보낸다”고 영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디코이가 단순한 기만 체계를 넘어, 미래전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변석모 기자 sakm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