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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 한국의 산업기술 전략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기술과 산업이 단절되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산업기술 정책의 통합적 체계"를 강조하며, R&D 투자부터 국제협력, 인재 양성, 규제혁신까지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적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산업기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통합하고, 기술이 금속처럼 단단하게 산업에 뿌리내리도록 설계하고 있다.
산업의 정의, 제조업 중심의 전략 전환
“산업 발전법에서 말하는 산업은 단순한 산업 활동의 집합이 아닙니다. 제조업과 제조업 기반 서비스업 중심으로 국가 경쟁력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개념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민 원장은 산업을 “생산 단위의 집합”이 아닌 “전략적 선택과 집중의 대상”으로 해석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90% 이상을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제조업 강국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국제 비교 지표(유엔산업개발기구의 제조업경쟁력지수CIP)를 통해 확인했다. 이는 산업이라는 기반 위에 현대적인 가치사슬을 덧입히는 과정이며, 기술정책 역시 이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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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 정책의 중심축: 전략기술과 규제혁신
KIAT는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과 전략기술을 도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기술개발(R&D), 기반구축, 인재양성, 국제협력, 표준화, 규제혁신 등 각 지원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만 개발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수용성과 제도, 표준이 동반되지 않으면 기술은 시장에 나올 수 없습니다.”
민 원장은 산업기술의 전주기적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규제혁신과 기술사업화, 창업이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KIAT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실증 기반 규제 해소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글로벌 기술 협력: GITCC와 국제 연계
KIAT는 국가 간 공동 R&D와 정책 협력을 위해 현재 14개국과 양자협력을, 유럽연합과는 ‘유레카’를 통한 다자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미국 · 영국 · 독일 · 캐나다 등 세계 주요국에 ‘글로벌 산업기술협력센터(GITCC)’를 설치해 기술 협력과 공동과제 발굴을 추진 중이다.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 중에 기술협력이나 인력 교류 등 우리 요구에 맞는 협력 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기술사업화, IP, 기업 협력 등 모든 과정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인재 양성과 산업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
산업기술 인력 문제는 지방과 수도권을 막론하고 가장 절실한 과제로 꼽힌다. KIAT는 산업부와 함께 첨단산업 특성화대학원 운영, 글로벌 장학생 프로그램, 미국 · 네덜란드 대학과의 교환연수 등을 통해 실무형 인재를 공급하고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에 맞춰야 합니다. 단순한 ‘양성’이 아니라, 수요 중심의 ‘직무 정의’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특히 반도체, 이차전지 등 현대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요구되는 실무형 인재 배출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현장 직무 체험 프로그램(K-Girls’ day)은 현장 밀착형 인재 전략의 사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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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재임의 변화: 전략, 조직, 국제를 잇다
민 원장은 취임 이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전략기획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먼저, 9개 부서 50개 팀 체제를 ‘기반 · 글로벌 · 혁신’ 3본부 33개 팀으로 개편하고, 매트릭스형 조직 구조를 도입해 부서 간 협업과 연계사업화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기술 R&D와 사업화 간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10대 유망기술’ 선정 체계를 도입하고 산업부 정책과 연계했으며, 규제 샌드박스를 기획형으로 전환해 원격 선박 운항, 자율주행차 시범 도입 등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협력도 단순 교류를 넘어 IP, 인력교류, 공동실증, 장비활용까지 연계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GITCC 설치(8개소)는 단순한 거점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기술 외교의 전진기지로 기능하며, 세계 주요 대학과 공동 기획 기반을 마련했다.
기술 창업화를 위한 제도 기반도 정비되었다. 산업부, 과기부, 복지부, 중기부 간 정책 연계를 위한 창업 로드맵 설계를 주도했고, 산업 ODA 기반 기술지원 예산을 보조금에서 출연금 체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법제화를 이끌었다. 이러한 개혁은 산업기술 정책의 종합성을 회복하고, 각 요소들이 분절되지 않도록 ‘한 몸’처럼 움직이는 체계를 구축한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 송정현 기자 hyun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