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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ADM바이오(이하 현대ADM)가 21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연구결과 발표회를 열고, 항암 신약 후보 물질 ‘페니트리움(Penetrium)’의 비임상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삼중음성유방암 동물모델에서 페니트리움과 파클리탁셀 병용 투여 시 전이율 85% 감소, 종양 크기 36% 감소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되며, 종양 미세환경(TME)을 공략한 병용 항암 전략의 가능성이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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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미세환경의 장벽을 허물다
현대ADM은 모회사인 현대바이오사이언스와 공동으로 페니트리움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항암제의 작용을 방해하는 종양 주변 환경, 특히 CAF(Cancer-Associated Fibroblast, 암 연관 섬유아세포)를 제거함으로써 항암제가 종양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고 약물 반응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CAF는 암세포 주위에서 일종의 방패막처럼 작용해 약물 접근을 막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조원동 현대ADM 대표이사 내정자는 “CAF와 ECM(세포외기질) 등 미세환경 요소는 항암제 효과를 떨어뜨리는 물리적 장벽을 형성하며, 이를 제거해야 항암 치료의 본질적인 저항 문제, 이른바 ‘가짜 내성(pseudo-resistance)’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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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서 박종환 노드큐어 대표(전남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삼중음성 유방암 모델에서의 병용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파클리탁셀 단독 투여군은 종양 크기 4.5% 감소, 전이는 115% 증가했으나, 페니트리움 병용 투여군은 종양 크기 36% 감소, 전이 85% 감소라는 뚜렷한 효과 차이를 나타냈다. 일반적으로 비임상 단계에서 전이 50% 이상 억제는 병용 치료 전략이 임상 진입을 모색할 수 있는 신약 후보로 평가받는 기준 중 하나이며,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이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2상 진입 전 요구되는 최소 유효성 신호(preliminary efficacy signal)로 간주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암종 및 모델별로 기준이 상이하며, 업계 내 일부 관행에 해당한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수정 현대ADM 연구소장은 췌장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공배양 실험에서 CAF가 항암제 저항성을 유발하는 기전을 설명하며 “페니트리움이 항암제 효능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오는 10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AACR-NCI-EORTC 국제 암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CAF와 ECM 억제를 통해 면역세포의 종양 침투가 가능해지면 기존 면역항암제의 효과도 증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전략도 언급됐다. 현대ADM은 특허 만료가 임박한 면역항암제, 특히 MSD의 키트루다(Keytruda, pembrolizumab) 등과의 병용 전략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병용 임상 설계는 구체화되지 않았으며, 전략적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다.
재창출 전략과 CAF 정밀 공략의 과제
페니트리움은 원래 기생충 치료제로 개발된 니클로사마이드를 항암제로 재창출(drug repositioning)한 약물이다. 기존에 기생충 치료제로 승인받은 약물을 활용함으로써, 개발 기간과 비용을 기존 신약 대비 최대 30~50% 단축할 수 있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미국 NIH에 따르면 약물 재창출 전략은 임상 진입까지 평균 6~7년이 소요된다. 이는 일반적인 신약 개발(평균 10~15년)에 비해 약 절반 수준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약물의 독성·안전성 데이터 활용을 통해 초기 검증 단계를 줄일 수 있어, 투자 효율성이 높은 전략으로 꼽힌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들도 치료제 재창출을 통해 임상 개발 리스크와 비용을 줄이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다만, 해당 약물이 새로운 적응증에서 유효성과 상업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재창출 전략 자체도 한계를 가질 수 있다.
현대ADM은 올해 전이성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국내 임상 1/2a 진입과 조건부 사용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국제 임상 일정 및 협력 기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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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미세환경(TME, Tumor Microenvironment)을 표적으로 한 병용 전략은 최근 항암제 개발에서 가장 활발히 탐색 되는 분야 중 하나다.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Roche), BMS(Bristol Myers Squibb), 사노피(Sanofi) 등도 CAF나 ECM을 조절해 면역관문억제제의 효능을 높이려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일부는 임상 1/2상에 진입했다. 다만 대부분 초기 단계로, 아직 명확한 임상 성공 사례는 드문 상황이다.
CAF 및 ECM을 억제해 항암제 전달 효율을 높이고 면역반응을 개선하는 방식은 여러 연구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CAF는 암종이나 병기에 따라 종양 억제 혹은 촉진 작용을 모두 보일 수 있는 이중적 특성을 가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CAF가 항암 면역반응을 촉진하는 신호를 분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다른 상황에서는 종양 성장과 전이를 돕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무작정 CAF를 제거하면 오히려 종양이 악화할 수 있어, 표적 하위군 분류 등 정밀한 치료 전략이 요구된다.
핵심은 항암제의 효능 자체보다, 그 효과가 발휘되기 어려운 종양 주변의 억제 환경을 먼저 제거하거나 조절해야 한다는 접근에 있다.
페니트리움은 과거 현대바이오가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폴리탁셀’ 이후 항암 영역에서 새롭게 내세운 프로젝트다. 폴리탁셀은 약물 전달 플랫폼을 활용한 전략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임상 진입 지연과 기술이전 무산 등으로 시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도 외부에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보다는, 기업 발표에 따라 주목이 집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번 페니트리움 프로젝트는 종양 미세환경 조절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내세우고 있으며, 오가노이드 기반 실험과 병용 전략의 구체화, 국제 학회 발표 등 과학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개발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폴리탁셀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전임상 단계의 과도한 기대’라는 리스크를 반복하지 않고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향후 임상 진입과 실행력이 필수다. 특히 CAF 억제 전략은 암종별 반응 차가 크고, 미세환경 조절이 실제 임상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향후 6개월 내 개시될 임상 1상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만, 이번 비임상 발표가 실질적인 항암 전략으로 전환될 수 있다.
현대ADM은 이번 발표를 통해 항암 치료의 고질적 난제였던 ‘약물 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병용 전략을 제시했다. 미세환경 조절이라는 접근은 이론적으로는 설득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산업적·임상적 성공을 위해서는 후속 연구의 정밀도와 실행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