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혈압은 정상인데 왜 위험하죠?”… 수면 중 고혈압이 심장을 노린다

  •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기사입력 2025.07.17 07:00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심뇌혈관질환 위험 신호를 말하다
  • 신진호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사진=본인 제공
    ▲ 신진호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사진=본인 제공

    병원에 갈 때마다 “혈압은 정상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은 늘 불안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뇌졸중과 뇌출혈의 병력까지 있는 터라, 언젠가는 나도 같은 문제를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결국 작년에 더욱 정밀한 검사를 받았고, 예상대로 나 역시 고혈압 진단을 받아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진단 당시 병원에서는 하루 동안 팔에 커프를 착용해 혈압을 측정하는 ‘24시간 활동혈압 측정기(ABPM)’를 권유했다. 혈압의 변화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에 따라 검사를 받았지만, 밤마다 팔을 주기적으로 조여오는 압박감 때문에 자꾸 잠에서 깨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불편함이 컸다. 피로가 계속 쌓였고, 오히려 검사 이후에는 컨디션이 더 나빠졌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재검사를 권유받았을 때는, 그 불편했던 경험이 떠올라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다시는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의료진이 제안한 방식은 달랐다. 팔에 착용하는 대신, 손가락에 반지처럼 간단히 끼우기만 하면 되는 장치였다. 무엇보다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혈압을 자연스럽게 측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 마음을 움직였다. 불편함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엔 망설임 없이 검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년 전 동일하게 24시간 혈압을 측정했을 당시에는 야간혈압도 정상 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검사에서는 밤만 되면 혈압이 150mmHg 이상까지 치솟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생긴 변화였고, 이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그제야 나는 ‘수면 중 고혈압’이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심혈관 건강을 조용히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의료진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녁 시간대로 약 복용 시점을 조정하자고 조언했고, 나 역시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 전반을 함께 점검하고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실제로 심혈관 위험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되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만약 반지형 혈압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수면 중 혈압이 급상승하는 사실조차 모른 채, 병원에서는 ‘정상’이라는 말을 믿으며 안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표면적인 수치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내 몸속의 위험을 정확히 마주하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작은 반지형 기기였다.

    이처럼 여러 환자가 병원에서는 ‘정상 혈압’이라는 안도감 속에, 수면 중 조용히 진행되는 고혈압의 위험을 놓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밤에도, 편안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혈압을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바로 반지형 혈압계 같은 커프리스 기기다.

    수면 중에도 쉬지 못하는 심장

    우리 몸속 혈관의 길이는 약 10만km에 달한다. 지구 두 바퀴 반을 감을 수 있는 이 정교한 혈관망은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휴식 모드에 들어간다.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과 혈관은 긴장을 푼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 밤은 결코 편안한 시간이 아니다. 수면 중 혈압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하는 ‘야간 고혈압’ 또는 ‘비딥(non-dipping)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결국 좌심실 비대, 심부전, 뇌혈관 손상, 신장 기능 저하 등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과 유럽의 연구에 따르면, 수면 중 수축기 혈압이 120mmHg 이상일 경우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발생 위험이 1.5~2배로 증가한다. 특히 고령자, 수면무호흡증 환자, 당뇨병을 동반한 환자에게서 그 빈도가 높다.

    ‘가면 고혈압’을 놓치고 있다

    야간 고혈압이 문제인 이유는 병원 진료 환경에서 포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혈압 측정은 아침이나 낮에 이뤄지는데, 이때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면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낮에는 정상이지만 밤에만 혈압이 상승하는 ‘가면 고혈압(masked hypertension)’은 이렇게 쉽게 지나치기 쉽다.

    이로 인해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거나, 복용 중인 약물의 용량과 복용 시점이 실제 혈압 변화 패턴과 맞지 않아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측정의 방식이 중요하다

    야간 혈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수면 중에도 혈압을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기존 24시간 활동혈압 측정기(ABPM)는 야간 혈압을 파악하는 데 활용되지만, 측정 중 커프의 압박으로 수면이 방해되거나 측정 실패가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측정 방식의 정확도뿐 아니라 일상생활과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의 중요성도 함께 고려한 반지형 혈압계 같은 커프리스 제품이 필요하다.

    정확하고 일관된 야간 혈압 측정은 단지 수치를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방향 설정과 예후 평가에도 결정적 근거가 된다.

    야간 혈압, 제도 속으로 포함되어야

    우리나라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은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하며, 진단과 관리의 표준화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야간 혈압’은 이 관리 체계 안에서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내외 진료 지침에서는 가정 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 측정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수면 중 혈압은 심혈관 사건의 선행 지표로 간주한다.

    낮과 밤을 모두 아우르는 혈압 관리

    고혈압은 단지 ‘수치가 높은 병’이 아니다. 시간대에 따른 혈압의 변화 패턴까지 고려해야 실제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수면 중 혈압은 그 사람의 심혈관 상태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생체 지표 중 하나다.

    혈압 관리의 기본 단위가 한 번의 측정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변화와 맥락을 함께 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야간 혈압’의 측정이다.

    야간 고혈압은 환자가 느끼기 어려운 만큼, 의료 체계가 먼저 인지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진단을 위한 장비와 기술은 진화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임상 현장과 제도 속에 적절히 반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 심장은 쉬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고혈압 관리가 비로소 시작된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