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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허가만으론 부족” 디지털 의료기기, 실사용자 중심 설계가 경쟁력

기사입력 2025.07.16 10:18
  • “인허가를 받아도 매출까지는 3~5년이 걸립니다. 규제를 통과했다고 해서 바로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건 아니니까요.”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부대표는 15일 서울 강남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열린 브라운백 미팅에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의 현실을 이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루닛, 뷰노, 제이엘케이, 코어라인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 역시 인허가 이후 수년간 매출 공백기를 겪었다. 이는 의료기기 시장의 성패가 단순한 ‘인증’이 아니라, 실사용자의 ‘채택 여부’에서 갈린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모코그와 알피는 바로 그 ‘다음 단계’를 정면으로 준비해 온 기업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이라는 실사용자의 경험을 중심에 둔 사용자 경험(UX) 전략을 바탕으로 ‘어떻게 쓰이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고령자 맞춤 UX부터 진료 흐름 설계까지, 이모코그의 전략

    이모코그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을 주는 디지털 치료기기 ‘코그테라(Cogthera)’를 개발했다.

    코그테라는 환자가 주 2회, 8주간 모바일 기기로 인지 훈련 콘텐츠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고령자가 혼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전 과정을 버튼이나 스와이프 없이 음성 기반 대화 인터페이스로 설계됐다.

  •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가 고령자 맞춤형 음성 인터페이스 설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가 고령자 맞춤형 음성 인터페이스 설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노유헌 이모코그 대표는 “고령자는 작은 버튼도 두렵고, 디지털 문해력이 낮다”며 “진짜 혁신은 쓰게 만드는 인터페이스에 있다”고 말했다.

    이모코그가 완료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에서는 ADAS-Cog14(알츠하이머 인지평가척도) 지표 개선, 기억력·언어 등 주요 인지 영역 향상 등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순응도 85%, 탈락률 4%라는 수치도 함께 도출돼, 고령층 대상 기기로서의 사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회사는 의료진 처방 기기인 점을 고려해, 진단부터 재처방까지 진료 흐름 전반을 지원하는 대시보드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병원 EMR과 연동돼 환자의 훈련 반응에 따라 재처방·재조정이 가능하며, 실제 진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코그테라는 현재 복지부 혁신의료기술 고시를 대기 중이며, 고시 완료 시 9월부터 병의원 비급여 처방이 가능할 전망이다.

    심전도 판독 15분을 1초로, 알피의 현장 최적화 UX

    알피는 병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시행되는 심전도 검사 데이터를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12리드 심전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장질환 및 응급상황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ECG Buddy’다.

    기존 심전도 분석은 출력, 전송, 전문의 판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평균 15분 이상 소요됐다. 반면 ECG Buddy는 응급실과 병동 등에서 비심장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진료 인력이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심전도 판독 시간을 1초 이내로 단축했다.

  • 알피 김중희 대표가 ECG Buddy를 통한 심전도 분석 예시를 설명하고 있다.
    ▲ 알피 김중희 대표가 ECG Buddy를 통한 심전도 분석 예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중희 알피 대표는 “심전도는 측정보다는 판독이 어려워, 실제로 많은 응급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복잡한 의료 행위를 가장 단순한 UX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PC·EMR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동되는 ECG Buddy는 현재 국내 60여 개 병원에 도입돼 심근경색, 심부전, 고칼륨혈증, 부정맥 등 중증 질환 선별에 활용되고 있다. 창업 후 3년 만에 식약처 인허가와 다수 병원 적용 성과를 낸 것은 업계 평균 대비 매우 빠른 성장이다. 회사는 CE 인증을 기반으로 중동 지역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실사용자 중심 설계가 곧 경쟁력

    이모코그와 알피는 모두 ‘기기를 사용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실사용자 맞춤 UX 전략을 구체화했다. 환자의 직관적인 사용성과 함께, 의료진의 진료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구조를 구현한 점이 이들의 차별점이다.

    정주연 카카오벤처스 선임 심사역은 “제약은 인허가 후 자동적으로 판매로 이어지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는 다르다”며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복수의 실제 사용자와 결정권자를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치원 부대표 역시 “이제 의료기기는 기술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규제 대응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사용자를 중심에 둔 설계를 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기업의 사례는 의료기기의 경쟁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실사용자 중심 설계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허가 이후의 성패는 ‘누가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사용자 중심 설계야말로, 디지털 의료기기가 ‘현장에 남을 기술’이 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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