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울트라사이트의 인공지능(AI) 초음파 가이던스 솔루션이 식약처 인증을 획득하면서, 영상 판독 중심이었던 국내 의료 AI 활용 영역이 영상 촬영 단계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영상 판독 지원에 집중되어 온 기존 의료 AI 기술 흐름에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하는 변화로 평가된다.
-
영상 판독에서 영상 획득으로 확장되는 의료 AI
국내 의료 AI 시장은 현재까지 의료진이 획득한 영상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판독을 보조하는 기술 위주로 발전해 왔다. 루닛, 뷰노 등 국내 주요 의료 AI 기업의 솔루션도 대부분 영상 판독 보조 기능에 특화돼 있다.
이에 비해 울트라사이트의 ‘AI 초음파 가이던스’는 심장 초음파 영상을 촬영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의료진의 손과 초음파 탐촉자(프로브, 초음파 센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시각적 피드백을 통해 영상 촬영 자세를 안내함으로써 더 정확한 영상을 확보하도록 지원한다. 검사자가 ‘어떻게 잘 촬영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는 이 방식은 기존 진단 보조 AI와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숙련도 편차를 줄이는 실시간 보조 기술
심장 초음파는 해부학적 구조와 움직임을 동시에 파악해야 하는 검사로, 검사자의 숙련도에 따라 영상 품질의 차이가 크다. 이로 인해 1차 진료 기관이나 응급 현장에서는 심장 초음파의 활용률이 낮은 편이다.
울트라사이트의 AI 솔루션은 이러한 숙련도 편차를 줄이기 위해 실시간으로 촬영 보조 피드백을 제공하며, “조금 더 위로”, “왼쪽으로 기울이세요”와 같은 안내를 통해 검사자가 적절한 영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울트라사이트에 따르면 이 기술은 미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800건 이상의 환자 케이스에 적용되어 임상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가 미국심장학회(ACC)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비숙련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는 영상 판독 가능률이 95% 이상, 진단 수준 영상 확보율이 98% 이상으로 나타났으며, 전문가 대비 좌심실박출률(LVEF) 측정 오차는 평균 3% 미만이었다. 49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LVEF 50% 이하 환자를 감별하는 데 있어 음성 예측도가 95%에 달했다.
국내 도입 준비와 글로벌 확장 움직임
이번 식약처 인증은 2022년 미국 FDA 510(k) 승인 당시 제출된 임상 및 기술 검증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울트라사이트는 셀바스헬스케어와 합작한 셀바스인비전을 통해 국내 인증 절차를 완료했다.
현재는 상급종합병원과 1·2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파일럿 도입을 협의 중이며, 본격적인 실사용은 2025년 4분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의 확장 가능성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이어진다. 울트라사이트는 Butterfly Network의 AI 마켓플레이스 ‘Butterfly Garden’에 참여하여 Butterfly iQ 시리즈 등 휴대형 장비와의 통합을 지원하고 있으며, 필립스(Philips), 에코노우스(EchoNous) 등 다양한 초음파 장비와의 호환성도 확보하고 있다.
의료 AI 적용 확대의 가능성과 과제
영상 촬영을 실시간으로 보조하는 AI 솔루션이 국내에서 의료기기로 정식 인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진단 보조’에 집중되어 있던 기존 의료 AI의 활용 범위를 영상 획득 단계로 넓히는 첫 사례로, 향후 의료 AI 기술의 적용 영역이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지역 간 의료 인력 격차와 고령화가 진행 중인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1차 진료 기관이나 응급 현장, 검진센터 등에서 심장 초음파 검사의 접근성과 표준화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물론 이 같은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간 숙련도 격차에 따른 신뢰성 문제, 기술 오남용에 따른 책임소재 쟁점, 국내 보험 체계 내 수가 적용 가능성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현장 도입 이후에는 기존 진료 흐름과의 통합, 비용 대비 효과, 실제 임상 활용도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환자 신뢰 확보와 법적·윤리적 쟁점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울트라사이트의 사례는 의료 AI가 기존의 ‘판독’ 중심 역할에서 나아가, 영상 획득을 포함한 더 다양한 임상 과정에서 실질적 보조 수단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신호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실제로 본격화할지는 의료 현장에서의 성과와 제도적 정착 여부에 달려 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