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현대사회의 약속

    기사입력 2025.07.02 14:05
    무연고 사망 시대, 종합적인 유언장 교육과 공영장례 제도의 확산이 필요하다
    • 사진=왼쪽부터 이주언 공익법단체 두루 상근변호사,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한국NGO학회 지속가능발전위원장
      ▲ 사진=왼쪽부터 이주언 공익법단체 두루 상근변호사,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한국NGO학회 지속가능발전위원장

      우리는 생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무연고 사망자가 5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지금,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책임과 준비는 더 이상 노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립청년부터 홀로 살아가는 1인 가구까지, ‘나는 무연고자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유언장 작성 교육과 공영장례의 질적 개선은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배려이자, 존엄의 기준이다.

      무연고 사망,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자발적 비혼의 증가, 가족관계의 단절,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는 우리 모두를 잠재적 무연고자로 만들고 있다. 특히 사회적 관계망이 약한 고령층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고독사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사망 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행정 처리의 문제를 넘어, 한 인간의 존엄이 죽음 이후에도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자기결정권의 마지막 실천, 유언장

      유언장은 단지 재산 분배를 위한 법적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마지막 의지이자, 사회와 맺는 마지막 약속이다. 특히 무연고자에게 유언장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유언장 작성 교육에 참여하는 이들이 노인층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육시설에서 자란 자립청년이 함께 자란 친구에게 장례를 부탁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유산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쓰이기를 바라는 20~30대 청년들이 유언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영장례의 질적 개선, 시민이 이끈다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장례는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 186곳에서 공영장례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공영장례는 여전히 형식적이고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제한된 빈소 운영 시간, 간소한 절차, 보여주기식 빈소 운영 등은 고인의 존엄과 이별의 진정성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산 시민들의 공영장례 조문단 활동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영장례의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제안함으로써 빈소 시간 연장과 운영 가이드 개선 등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시민의 움직임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의 몽석, 즉 작지만 단단한 시작이 되고 있다. 이는 장례를 단지 행정 절차로 보지 않고, 고인의 존엄과 시민의 애도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연고자의 죽음 이후 조문단으로 모인 시민들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생전 돌봄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이웃을 보살피며 공영장례를 돌봄의 선순환 과정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춰야

      한편, 유언장 작성과 같은 법률적 준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법률 서비스 접근성 격차는 심각하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회적 약자와 고립된 개인은 필요한 법률 자문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로보노 활동의 확산과 지역 기반 법률 서비스 시스템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법률과 복지, 돌봄을 하나의 ‘사회적 금속’처럼 단단하게 결속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무연고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법적 형평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 평등한 사회를 향하여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죽음 이후의 처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고립과 단절을 상징하는 지표다. 그러나 유언장 작성 교육과 공영장례 개선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는 이러한 현실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언장 작성 교육은 단순한 법률 지식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성찰하고, 자기결정권을 되찾는 과정이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준비다. 이 교육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무연고 사망자라는 차가운 통계 뒤에 가려진 사람의 이름과 이야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무연고자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는 누구나 죽음 앞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유언장 작성 교육과 공영장례의 질적 개선은 그 첫걸음이다. 시민의 참여와 공동체의 관심이 모일 때, 우리는 죽음 앞에 더 평등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한국NGO학회 지속가능발전위원장
      이주언 공익법단체 두루 상근변호사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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