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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은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어렵고 불친절한 금융’으로 여겨졌다. 복잡한 약관, 과잉 설계, 불투명한 보장 구조 속에서 많은 가입자들이 자신이 어떤 보장을 받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는 금융 전반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금융은 데이터‑알고리즘‑UX가 결합된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생성형 AI 기반 ‘금융비서’가 등장했고, 간편결제는 지갑을 대체했다. 이어진 ‘초개인화’ 시대는 인슈어테크의 토양이 됐다. 이제 보험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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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슈어테크, 보험 산업의 ‘정보 권력’을 바꾸다
최근 보험 산업을 둘러싼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마이데이터 제도의 본격 시행으로 소비자는 자신의 보험 정보를 통합 조회하고, 기술 기반 분석 도구를 통해 스스로 보장을 점검하고 설계하는 흐름에 진입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마이데이터 기반 ‘인슈어테크’가 있다.
‘인슈어테크(Insurtech)’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모바일 플랫폼 등의 기술을 활용해 보험 상품과 서비스 전반을 혁신하는 산업을 말한다. 단순히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고, 보장 설계, 위험 평가, 보험금 청구, 맞춤형 상품 추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자 경험을 개선하고 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마이데이터와 결합되며 초개인화된 보험 서비스로 진화 중이다.
마이데이터는 금융 정보의 소유권과 활용 권한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제도이며, 인슈어테크는 보험 산업에 기술을 접목해 상품 구조와 서비스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축이 맞물리며 보험은 전문가 중심의 복잡한 금융 상품에서, 소비자가 직접 관리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보험, 기술을 만나다보험 산업은 디지털 전환이 더디기로 유명하다. 상품은 복잡하고 약관은 길며, 미래 위험을 다루는 특성상 소비자의 신뢰 확보도 쉽지 않다. 그간 금융권에서 핀테크가 빠르게 자리 잡은 것과 달리, 보험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 산업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금융 마이데이터 제도가 본격화되면서 보험에도 전환점이 찾아왔다. 여러 보험사에 흩어져 있던 고객 정보가 통합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장 분석과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UX 기술 등이 결합되면서 보험 산업 전반에 인슈어테크(Insurtech)의 흐름이 퍼지고 있다.
데이터를 읽는 기업 : 시장을 바꾸는 플레이어마이데이터 기반 인슈어테크 산업은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한 단계다. 대표적으로는해빗팩토리,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이 각기 다른 전략으로 보험의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해빗팩토리는 보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고객 맞춤형 리포트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특히 보험설계사 및 GA(보험대리점)를 위한 B2B 인프라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다. ‘보험 리모델링’ 기능을 통해 과보장을 줄이고, 필요한 보장은 추가하도록 유도해 데이터 기반 보험 분석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해빗팩토리의 신규 회원은 지난해 1분기 대비 43.3%, 보험계약은 82.3% 늘어났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마이데이터 사업자이자 직접 보험을 설계·판매하는 보험사이기도 하다.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초개인화된 소액 보험, 온디맨드 보험(소비자주문형 보험)을 설계하고, 플랫폼 내에서 가입부터 청구까지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간편함’이라는 장점 덕에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해외여행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10월 200만명을 돌파한 바 있다. 보험 재가입률은 4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시장은 아직마이데이터 기반 인슈어테크의 가능성은 크지만, 현실은 아직 넘어야 할 과제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낮은 인식이 큰 걸림돌이다. 마이데이터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높지 않은 데다, 보험은 여전히 ‘어렵고 복잡한 금융’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또 하나의 장벽은 데이터 표준화 문제다. 보험사마다 상품 구조와 특약명이 달라, 통일된 분석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 데이터 정제와 해석 알고리즘의 정교화 없이는 신뢰할 수 있는 분석이 어렵다.
디지털 전환이 GA 및 설계사의 역할을 보완하고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이를 ‘대체 기술’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보험의 미래, ‘사람 중심 기술’에 달렸다기술은 준비됐다. 그러나 마이데이터 기반 인슈어테크가 성공하기 위해선, 기술을 얼마나 사람 중심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UX),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 로직,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보장 설계가 핵심이다.
정부는 올해 마이데이터 2.0 정책을 통해 의료·건강정보까지 통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보험 데이터의 확장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보험설계사와 GA를 위한 디지털 보조 툴도 점차 고도화되며 현장의 전문성과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슈어테크의 핵심은 기술을 통해 소비자가 보험을 더 쉽게 이해하고, 직접 선택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보험 산업은 현재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며 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마이데이터 기반 인슈어테크가 서 있다.
- 송정현 기자 hyun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