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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한 방울로 암 재발을 미리 감지하고 맞춤형 치료를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존 영상 검사보다 몇 달 앞서 암세포 변화를 포착하는 ctDNA(순환 종양 DNA) 기술이 새로운 암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는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ASCO 2025(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국내 연구진의 주요 성과와 암 치료 최신 트렌드를 공유했다. 국내 연구진은 ASCO에서 총 225건의 임상 연구 성과를 발표했으며, 이 중 ctDNA 기반 정밀의학과 정밀 타격형 면역·항체 항암 치료 전략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ctDNA는 암세포가 사멸하면서 혈액으로 방출되는 DNA 조각이다. 암유전자 변이를 포함한 유전체 정보를 담고 있어 기존에는 암 존재 여부나 치료 반응을 확인하는 보조 지표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치료 강도 결정, 재발 위험군 선별, 치료 반응의 실시간 모니터링까지 가능한 정밀 의료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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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영상의학적 진행이 나타나기 전에 ctDNA에서 특정 돌연변이를 찾아내 내성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치료 방향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CLAUDIA Colon 연구는 ctDNA 기반 전략의 대표 사례다.
국립암센터와 11개 병원은 대장암 2~3기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후 ctDNA를 분석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잔존 암세포(MRD) 상태를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조 항암치료 강도를 조절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잔존 암세포가 검출된 환자는 항암 치료를 강화하고, 검출되지 않은 환자는 불필요한 치료를 줄여 독성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현재 약 630명의 환자가 스크리닝에 등록돼 있으며, 2027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ctDNA 기반 액체생검(혈액으로 암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검사)은 기존 영상검사나 조직생검보다 침습성이 낮고 반복 검사가 용이하며, 치료 반응 조기 평가, 내성 탐지, 예후 예측에 활용된다.
ASCO에서는 유방암, 방광암, 자궁경부암 등에 ctDNA를 적용해 영상 검사보다 내성을 빨리 탐지하고 치료 변경 결정을 이끈 사례도 발표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모든 암종에 ctDNA 기반 전략이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초기 암 단계에서의 유효성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ASCO에서는 ctDNA 외에도 정밀 타격형 면역·항체 항암 치료 전략의 최신 연구 성과가 공유됐다.
항체-약물 접합체(ADC)는 암세포 표면 특정 항원과 결합해 약물을 직접 전달하는 기술이다. 이중특이항체(BiTE)는 암세포와 면역세포를 동시에 결합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기술이며, CAR-T 세포 치료는 환자 면역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이들 전략은 방광암, 유방암, 위암 등에서 기존 항암제보다 높은 표적 선택성을 보였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1차 치료 전환 가능성도 논의됐다. 다만 고형암에서는 적용 확대를 위한 안전성 데이터와 장기 효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현재 국내에서는 ctDNA 기반 검사가 일부 연구나 제한적 임상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검사 비용은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대 이상이며, 아직 건강보험 적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보험 적용, 검사 표준화, 암종·병기별 데이터 축적이 국내 적용을 위한 주요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환자·보호자·의료진이 임상 연구 정보를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암 임상 연구 검색 포털 앱을 제공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 기반 강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앱은 암종, 지역, 성별, 연구 단계별 조건 검색과 새 연구 알림 기능을 제공하며,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임상 연구 참여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