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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간 유전적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에 제기돼온 두 질환 간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정밀 의료 기반의 맞춤형 치료 가능성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명우재 교수(정밀의료센터) 연구팀은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삼성서울병원 원홍희 교수, 안예은 연구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재현 임상강사와 공동으로,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간 유전적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번 연구는 다인종 43만 명의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 데이터를 활용해, 음주 문제(알코올 의존, 폭음 등)와 정신장애(조현병, 우울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등)의 공통 유전 구조를 정밀 분석했다. GWAS는 사람의 유전체 전반에 걸쳐 유전변이를 조사하고, 특정 행동 특성이나 질환과의 연관성을 찾는 통계적 분석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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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 음주 문제는 조현병(73%), 신경성 식욕부진증(65%), 자폐스펙트럼장애(60%) 등 대표적인 정신질환과 높은 수준의 공통 유전변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두 질환이 단순히 환경적 요인에 의한 동반 질환이 아닌, 유전적으로 연관된 복합 질환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또 TTC12와 ANKK1이라는 두 유전자가 공통 원인 유전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유전자들은 도파민 시스템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며, 충동 조절이나 보상 시스템 등 뇌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모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결과는 알코올 사용 장애와 정신장애를 개별 질환이 아닌 유전적 연관성을 지닌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연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분당서울대병원 명우재 교수는 “많은 정신장애 환자가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음주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연구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를 함께 겪는 환자에게 더욱 정밀한 치료기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원홍희 교수는 “대규모 유전체 분석 데이터와 최신 통계 기법을 활용해 복합 질환 간 유전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며 “질환 간 상호 연관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료 전략 개발에도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SCI(E) 등재 국제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IF 15.1)’에 최근 게재됐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