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고] 임팩트를 설계하는 사람들,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AVPN) 이야기

    기사입력 2025.05.26 15:19
    자본의 흐름을 재설계하다: AVPN 한국대표부와 실행력의 구조
    • 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 회장
      ▲ 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 회장

      21세기의 자본은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를 향한 흐름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투자냐 기부냐, 그 이분법을 벗어나 임팩트 투자라는 제3의 길을 실천하는 국제기구가 있다. 바로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 AVPN)이다. AVPN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600개 이상의 글로벌 조직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 겸 사회혁신기관 네트워크이다.

      한국에는 이 AVPN의 국내 조직이자 전략 실행 기지로 AVPN 한국대표부가 활동하고 있다. 단순한 중간지원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의 플랫폼이자 정책 실험기관, 그리고 지속가능성 생태계를 설계하는 전략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자본, 사회를 향해 흐르다”

      AVPN 한국대표부는 구글닷오알지(Google.org)의 지원으로 조성된 디지털혁신기금을 통해 소외된 구직자, 장애인, 전통 기능을 보유한 소상공인, 주거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 교육과 온라인 플랫폼 활용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샤넬재단과 빌 게이츠 재단 등이 후원하는 젠더 평등 기금을 통해 여성의 디지털 커리어 진입을 적극 지원하며,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 Co. L.P, KKR) 펀드를 통해서 커뮤니티 영역에서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쉼터 개선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구글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공동 조성한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성 기금을 통해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환경 프로젝트도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ESG의 주요 테마를 반영한 임팩트 펀드가 사회 각 영역에서 기획되고 집행되고 있다. 이러한 펀드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정책 실험과 생태계 개입을 유도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AVPN은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와 혼합 금융(Blended Finance) 전략을 활용해, 공공과 민간 자본을 결합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설계하고 있다.

      사회혁신의 연결 허브, 모든 섹터를 잇는 전략적 플랫폼

      AVPN 한국대표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중간’에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중간지원조직을 넘어, 공공과 민간, 학계와 현장, 국내와 국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적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사회적 자본의 배분 방향을 고민할 때, 기업들이 CSR의 본질적 가치를 모색할 때, 학계가 연구 성과를 실질적 현장으로 확장하고자 할 때 AVPN은 그 경계에서 실천 가능한 해답을 연결한다.

      유엔, 국제기구, 중앙정부 및 산하기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등 공공 부문은 물론, 민간 기업, 금융사, 사회적 경제 조직들과도 정기적으로 협력 관계를 이어가며 다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플랫폼적 역량은 단지 이해관계자 간 조율을 넘어, 각 주체가 보유한 자원과 관점을 통합해 사회문제 해결의 실행 체계로 전환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연결된 사람은 돈이 흐르고, 돈이 흐르면 기회가 생기며,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은 다시 움직인다. 이 순환이 ‘임팩트 생태계’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중간을 넘어선 전략 – 실행력의 구조”

      AVPN 한국대표부가 한국 사회에 갖는 진정한 의미는 ‘실행력’에 있다. 이 조직은 단순한 자금 집행 기구를 넘어, 정책–시장–시민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부, 기업, 학계,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AVPN 한국대표부는 대기업, 중앙정부 산하기관, 지자체, 공기업, 법정기관, 의회, NGO, 국제기구, 대학교, 사회혁신기업, 소셜벤처 등과 협력하여 정책 자문과 컨설팅, 멘토링을 제공하며, 국내에서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엠와이소셜컴퍼니(MYSC)를 비롯해서 SK행복나눔재단, 임팩트스퀘어,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함께일하는재단, 루트임팩트, 월드비전, 현대차 정몽구 재단, 디엘지(DLG), 서일이앤엠,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사회투자, 크레비스파트너스, 우리들의미래, 빅이슈코리아, 제주올레, 점프, 와이비에스에듀 사회적협동조합(YBSedu), 소프트웨어교육혁신센터 등과 다양한 소셜임팩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특히 급변하는 민간 영역과 전통적인 거버넌스 구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VPN은 민간의 혁신성과 공공의 제도적 기반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종합적인 전략 관점을 갖춘 사회적 투자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AVPN 한국대표부는 한국ESG학회, 사회적기업학회,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지속가능경영학회, 한국창업학회 등 주요 학술기관과 국내외 대학교들과도 긴밀히 연계하며, 연구–현장–정책을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치된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ISG) 세계대회에서는 인공지능, 헬스테크, 고령사회 대응 기술 등을 주제로 사회혁신과 과학기술의 접점을 국제적으로 조명했고, AVPN 한국대표부는 공동 주관 기관으로 참여하여 글로벌 담론의 중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울러 지역 특화형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고 임팩트 생태계를 지역 단위에서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 · 공공기관 · 비영리단체 · 지방의회 · 국제기관 등이 함께 모여 구성한 ‘임팩트플로우(Impact Flow)’라는 중간지원 조직 협의체를 공동 발족하여, 현재 전북과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운영을 함께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일의 힘, 사람의 회로”

      AVPN 한국대표부의 활동을 따라가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라벨링하고, ESG 트렌드를 정리해 정책을 제안하며, 학회나 언론/방송 등을 통해 새로운 개념과 콘텐츠를 설명한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처럼 경제·사회 전반의 이슈를 다루되, 그 방식은 다층적이다. 전략 컨설팅 조직처럼 실행 로드맵을 제시하고, 연구기관처럼 데이터를 축적하며, 정부 싱크탱크처럼 정책을 제안하는 NGO의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사회혁신 생태계 속 ‘몽석’ 같은 존재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임팩트 생태계의 균형을 조용히 받치고 있는 기반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AVPN 한국대표부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이들은 기업가, 교수, 관료, 변호사,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 팀을 이루며, 서로 다른 언어를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하는 데 집중한다. 단일 전공에 갇히지 않고 다영역을 넘나드는 폴리매스(polymath)적인 인물들과, 경계를 넘나들며 분야 간 융합을 일으키는 타화수분자(他花受粉者)들이 협업하는 구조다.

      임팩트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연결과 맥락 안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다.

      ‘임팩트를 측정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AVPN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임팩트 측정 시스템이다. 단순한 성과 보고를 넘어서 투자 대비 사회적 효과(ROI), SDGs 기여도, AI 기반 데이터 분석 도구(SIAA 대시보드) 등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로써 기금의 사회적 효과가 수치화되고, 다음 투자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전략이 가능해진다. 이는 추상적인 비전이 아닌, 실제 수치와 데이터를 통해 검증 가능한 ‘금속처럼 단단한 거버넌스’로 구축되고 있다.

      글로벌과 로컬을 잇는 실험, 그리고 다음 단계

      AVPN은 단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인재 양성, 지식 순환, 전략 실험의 허브로 작동한다. AVPN 아카데미와 인사이트 리포트를 통해 임팩트 투자와 ESG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 간 연결, 맞춤형 이벤트, 글로벌 컨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사례와 지혜를 집약해 공유하고 있다.

      AVPN 한국대표부에서는 AVPN 동북아 서밋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으며, 올해 9월 홍콩에서 열리는 AVPN 글로벌 컨퍼런스에서는 ‘포용적인 세계를 위한 아시아 리더십’을 주제로, 디지털 전환, AI와 사회혁신,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 전환 등을 다루는 아시아 최대의 임팩트 논의 장에도 함께 할 예정이다.

      자본의 목적을 묻는 실천적 설계자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자본은 효율보다 의미를 묻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금을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AVPN 한국대표부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자본의 구조’를 고민하며,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의 경계를 넘는 전략적 중재자이자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AVPN 한국대표부는 실제로 자본의 흐름이 사회적 목적을 향해 재설계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투자를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은 고도화되지만, 격차는 더 깊어진다.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만 돌아가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진다. 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자본은 ‘무관심한 배경’이 아니라, 때로는 가장 강력한 해결 도구가 된다.

      AVPN 한국대표부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자본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고, 그 흐름이 사람들에게 닿도록 연결하며, 그렇게 한 사회의 방향을 조정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기부인가요, 투자인가요?”라는 질문이 더는 필요 없는 세상. 자본과 사람, 사회문제가 함께 해결되는 미래. 그 출발점에는 오늘도 조용히 ‘사회적 자본의 회로’를 설계하는 이들이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미래는, 이런 연결 위에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가능성 위에서 더 많이 기대하고, 더 깊이 격려할 이유를 갖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회로가 모두를 위한 사회의 기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그 회로 위에 다음 세대의 희망이 놓이기를 기대한다.”


      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 회장,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이사장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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