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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조각,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론 뮤익展’

기사입력 2025.05.13 16:14
  • 요즘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론 뮤익(Ron Mueck)’ 개인전이 아닐까.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엔 한국인은 물론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조용한 전시장 안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작품 앞에 오래 멈춰 서 있었다. 눈앞의 조각이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아서가 아니다. 그것들이 마치 실제 사람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배에 탄 남자(2012)’ 팔을 모아 벗은 몸을 가린 한 남자가 긴 보트의 뱃머리에 앉아. 무언가를 살피는 듯한 눈길을 이채롭다. 론 뮤익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권연수
    ▲ ‘배에 탄 남자(2012)’ 팔을 모아 벗은 몸을 가린 한 남자가 긴 보트의 뱃머리에 앉아. 무언가를 살피는 듯한 눈길을 이채롭다. 론 뮤익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권연수

    호주 출신의 론 뮤익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사실주의 조각가다. 그는 인간 신체와 감정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조각 작업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아왔다. 전통적 조각 방식에 현대적 재료를 더한 그의 조각품은 머리카락, 옷차림, 표정까지 정밀하게 구현하며, 크기를 비현실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표현 기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사람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것을 넘어, 감정까지 섬세하게 담아낸다. 여기에 너무 크거나 작은 비일상적인 크기가 더해지면서 관람객은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삶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는 주로 일상의 한순간, 내면의 감정, 가족이나 죽음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30년에 달하는 조각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은 48점에 불과하다. 한 작품에 수년씩 공을 들이는 만큼, 그 밀도와 정교함은 단연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모성’, ‘자화상’, ‘고독한 노년’ 등을 주제로 한 대표작 3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회고전이다. 

  • ‘매스(Mass, 2016–2017)’ 국립현대미술관 5전시실 천장 끝까지 쌓인 100여 개의 두개골 조각이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 ‘매스(Mass, 2016–2017)’ 국립현대미술관 5전시실 천장 끝까지 쌓인 100여 개의 두개골 조각이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작품은 ‘매스(Mass, 2016–2017)’다. 1m가 넘는 두개골 100여 개를 탑처럼 쌓아 올린 이 대형 설치작품은, 파리 지하 묘지(카타콤)의 뼈 무더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전시 장소에 따라 설치 방식이 달라지는 이 작품은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와 해석을 끌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5전시실에는 14m에 달하는 천장 끝까지 두개골이 쌓여 있어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각각의 두개골 조각은 미세한 균열과 얼룩까지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지만, 개별적 정체성은 지워지고 오직 집단의 존재감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무겁게 느껴지기보다는 죽음에 대해 차분히 바라보게 한다.

  •  ‘침대에서’는 정교한 묘사와 거대한 스케일이 맞물려 고요하지만 깊은 감정의 울림을 전한다.
    ▲ ‘침대에서’는 정교한 묘사와 거대한 스케일이 맞물려 고요하지만 깊은 감정의 울림을 전한다.

    또 다른 대표작 ‘침대에서(In Bed, 2005)’는 6m가 넘는 거대한 여성이 침대에 반쯤 누워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처음 마주했을 땐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에 놀라지만, 사람 같은 생생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몰입하게 된다. 이 여성은 관람객을 보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보이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고요히 생각에 잠겨 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더 외롭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6전시실에서는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영상 2편이 상영된다.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티에 드블롱드(Gautier Deblonde)가 지난 25년간 기록한 자료로, 뮤익의 조각 제작과 설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 창작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특별한 기회다.

    론 뮤익의 조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허구를 통해 익숙한 감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눈앞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그 앞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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