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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 질환 예방에 사용되는 고지혈증 치료제 ‘스타틴’이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타틴은 간에서 대사되는 약물로, 일부 환자에게서 간 효소 수치 상승 등 간 독성과 관련된 이상 반응이 보고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임상 현장에서는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 스타틴 투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러한 우려와 달리, 스타틴이 간 기능을 악화시키는 대신 오히려 보호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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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과 하버드의대 공동연구팀은 스타틴을 장기 복용한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서 간암 발생률과 간부전 진행률이 현저히 낮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최종기 교수와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소속 레이먼드 정(Raymond Chung) 교수가 공동으로 주도했다. 연구팀은 메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소속 병원의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2000년부터 2023년 사이 만성 간질환 진단을 받은 40세 이상 환자 16,501명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했다. 간암이나 간부전 병력이 없는 이들 가운데 스타틴 복용 여부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눠 비교했다.
그 결과, 스타틴을 복용한 3,610명의 10년 내 간암 발생률은 3.8%로, 복용하지 않은 12,891명 그룹의 8.0%보다 절반 이상 낮았다. 간 기능 악화를 의미하는 간부전 발생률 역시 스타틴 복용군은 10.6%였으며, 비복용군은 19.5%에 달해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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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틴 복용량이 많을수록 예방 효과는 더 뚜렷했다. 누적 600 cDDD(cumulative Defined Daily Dose, WHO가 정의한 표준 일일 복용량 기준 누적 투여량) 이상 복용한 환자는 간암과 간부전 발생 위험이 각각 4.5%, 10.4% 낮아지는 경향을 나타냈다. cDDD는 실제 복용한 스타틴의 종류와 용량에 따라 일수로 환산되는 값이 달라질 수 있다.
간 섬유화 진행률도 복용군에서는 상대적으로 억제됐으며, 고위험군에서 중등도로 호전된 사례도 더 많았다. 초기 중등도 간 섬유화 환자의 고위험군 이행률은 스타틴 복용군에서 14.7%, 비복용군에서 20.0%였으며, 고위험군 환자가 중등도로 개선된 비율은 각각 31.8%와 18.8%로 나타났다.
최종기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스타틴이 단순한 콜레스테롤 조절을 넘어 만성 간질환자의 간암 및 간부전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임상적 근거”라며 “간 질환 환자에게 스타틴을 꺼려온 기존 임상 관행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관찰연구(observational study)라는 점에서 인과관계보다는 연관성에 대한 해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타틴의 복용 여부와 질환 진행 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향후 무작위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 등의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이번 연구 논문은 미국의학협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 내과학저널(JAMA Internal Medicine, IF 22.3)’ 최신호에 게재됐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