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건강·응급까지 아우르는 AI 기반 통합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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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인구 구조 변화는 단순히 인구 고령화를 넘어, 돌봄 체계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돌봄은 단순한 복지 이슈를 넘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돌봐야 할 어르신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책임질 인력과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지내는 고령자의 외로움과 안전 문제는 더 이상 가족의 몫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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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이지테크(Age-Tech)’라는 기술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다섯 가지 핵심 기술에 총 3,000억 원을 투자해 새로운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그중에서도 AI 돌봄 로봇은 정서적 교감, 건강 관리, 응급 대응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돌봄 기술로 특히 주목받고 있다.
AI 돌봄 로봇, 정서와 안전까지 챙긴다
AI 돌봄 로봇이란,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대화, 생활 알림, 건강 모니터링 등을 수행하는 고령자 전용 돌봄 기기다. 초기 돌봄 로봇은 복약 알림이나 날씨 안내 등 단순한 기능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더해지면서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읽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사용자의 말투와 표정, 행동 변화를 분석해 우울감을 감지하고, 필요에 따라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우울증, 인지 저하, 심지어 사망 위험 증가와도 관련 있는 ‘외로움’을 줄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어르신의 생활 리듬과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AI 돌봄 로봇은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움직임 감소, 식사 시간 누락 등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낙상과 같은 응급 상황 발생 시 보호자나 응급센터에 자동으로 연락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로봇이 낙상 감지 후 보호자에게 실시간 알림을 보내 구조로 이어진 사례가 보고되는 등 AI 돌봄 로봇은 24시간 곁을 지키는 ‘디지털 보호자’로서의 역할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AI 돌봄 로봇, ‘말하는 인형’만은 아냐
흔히 AI 돌봄 로봇이라고 하면 반려형 인형 로봇을 떠올리지만, 돌봄 로봇의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정서 교감형, 건강 모니터링형, 이동 보조형, 일상생활 지원형 등으로 나뉘며, 최근에는 이들 기능이 하나로 결합한 통합형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통합 돌봄 서비스는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로봇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예컨대 일부 로봇은 사용자의 걸음걸이와 활동량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예측하고, 웨어러블 형태의 로봇은 보행이 불편한 노인의 이동을 보조하며 낙상을 예방한다. 또 다른 형태는 스마트 센서와 연결되어 집 안에서의 움직임과 환경을 분석하며, 맞춤형 알림이나 원격 모니터링 기능까지 지원한다. 이처럼 AI 돌봄 로봇은 점차 다기능화되며, 정서적 돌봄을 넘어 생활 전반의 안전망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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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국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는 ‘AI 돌봄 로봇’을 시범적으로 도입해 효과를 검토 중이다. 경기도 용인시는 2020년부터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돌봄 로봇을 제공해 왔으며, 2024년부터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 또한 2022년부터 스마트 돌봄 서비스에 돌봄 로봇을 활용하고 있으며, 사용자 만족도에 따라 점차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병원 접근성이 낮은 현실 속에서 돌봄 로봇이 응급 상황 감지, 복약 알림, 이상 행동 모니터링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AI 돌봄 로봇이 모든 상황에서 완전한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 교감 형성에는 한계가 있으며, 중증 치매 환자처럼 로봇과 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활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 노인 특유의 발음이나 억양, 주거 공간의 배경 소음 등은 음성 인식의 정확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는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초기 구입 비용(대당 약 80만~150만 원), 유지 관리 체계 미비,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의 격차 등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현실적 장벽으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돌봄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사람과 함께 돌보는 ‘보완 도구’로 기능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야간이나 돌봄 공백 시간대에는 로봇이 1차 대응을 맡고, 주간에는 사람이 직접 돌보는 방식이 대표적인 협력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제도적 지원이 돌봄 혁신의 열쇠
정부는 AI 돌봄 로봇이 고령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효과적인 보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이 돌봄 인력 부족과 복지 인프라의 비효율성을 보완하고, 사회적 돌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정부가 돌봄 로봇을 전략기술로 분류한 배경에도 이 기술이 향후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고, 사회 전체의 돌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현재 정부는 돌봄 로봇을 복지용구 예비급여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5년 초 발표한 ‘Age-Tech 기반 실버경제 육성전략’을 통해 돌봄 로봇을 국가 전략기술로 명시했으며, 장기요양보험과의 연계 강화 방침도 함께 밝혔다. 국립재활원을 중심으로 실증 연구 및 국가 표준 개발도 진행 중이며,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는 고령 친화 주거와 연계된 스마트 돌봄 정책 설계에 착수했다.
이러한 정책은 기술 개발, 현장 실증, 제도 연계를 통해 AI 돌봄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며, 돌봄 로봇의 보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을 함께 다지고 있다. 특히 향후 복지용구 본급여 항목에 AI 돌봄 로봇이 포함되면 수급자의 본인부담률이 낮아지고, 현장 도입 장벽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참여와 도입도 가속화될 수 있다.
현재 AI 돌봄 로봇은 단순한 생활 보조 도구를 넘어, 정서와 건강을 모두 아우르는 복지 솔루션으로 기능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외로움과 건강 이상을 감지하고, 위급 상황에 대응하며,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감을 제공하는 이 기술은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의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단계이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 의료계의 연구와 검증, 기업의 현장 경험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AI 돌봄 로봇은 곧 우리 사회의 필수 복지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향후에는 감정 분석, 건강 모니터링, 생활 지원 기능을 통합한 ‘지능형 돌봄 플랫폼’으로의 진화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실증과 검증 단계에 머물러 있어 본격적인 확산을 위해서는 기술 완성도 제고와 제도적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실제 노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느냐는 점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정서적 지원 수단으로 활용되는 실증 연구 사례를 중심으로, 그 가능성과 한계를 깊이 있게 살펴볼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