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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치매를 포함한 인지 건강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치매는 고령과 직결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치매 유병률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크게 늘고 있다. 현재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의 치매 유병률은 10.38%로 추정되며, 2030년에는 130만 명 이상, 2050년에는 300만 명 이상으로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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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치매 유병률이 급증하며, 치매 예방과 인지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2023년 9월 ‘알츠하이머병 및 치매(Alzheimer's & Dementia)’에 발표된 실버 멀티 비타민과 노인의 인지 건강 관련 연구 결과는 더욱 눈길을 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실버 멀티 비타민은 노인의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화가 모든 인지 능력을 떨어뜨릴까?
흔히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모든 인지 능력이 동일하게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민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프로그램 NHANES(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과 같은 유동성 지능은 감소하지만, 언어 능력 같은 결정성 지능은 유지되거나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는 고령자도 지속적인 학습과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적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노화와 함께 저하되는 ‘기억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뇌의 변화가 기억을 담당하는 뇌 조직인 해마의 부피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전체 치매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역시 해마의 부피 감소가 주요 원인이며, 기억력 감소가 대표 증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버 멀티 비타민이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은 이가 품고 있던 고령화로 인한 인지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준다.
비타민·미네랄이 노인의 인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다양한 영양소를 충분하게 섭취하는 것은 높은 인지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비타민과 미네랄이 다양한 생물학적 경로와 상호작용을 통해 정상적인 신체 및 뇌 기능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한 '코스모스 연구(COSMOS Study)'에서도 잘 나타난다.
해당 연구는 하버드 의대와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팀이 주도했으며, 65세 이상 노인 2,262명을 대상으로 3년간 진행됐다. 연구팀은 인지 능력 개선에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식품으로 알려진 '코코아 추출물'과 20가지 이상의 영양소를 함유한 '센트룸 실버'를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최대 3년간 복용하게 하고, 인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코코아 추출물은 섭취 기간과 상관없이 인지 기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3년간 실버 멀티 비타민을 복용한 그룹은 위약군 대비 인지 저하 속도가 최대 60% 늦춰졌으며, 특히 즉각적인 기억력과 일화 기억력이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혈관 질환 병력이 있는 그룹에서는 더욱 뚜렷한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실버 멀티 비타민에 포함된 주요 성분은 일반 멀티 비타민과 차별화되어 노인 맞춤형 특성을 가진다. 비타민 B6, B12, 엽산은 노년층에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합성과 호모시스테인 수치 조절에 관여하며, 비타민 D와 칼슘은 뼈 건강뿐 아니라 신경 보호 기능을 한다. 또한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 C, E와 셀레늄, 루테인은 노화에 따른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뇌세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하다고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비타민 보충제가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가장 대규모 무작위 대조군 연구 중 하나”라며, “특히 기억력에 관여하는 해마 기능과 관련된 인지 도메인에서 효과가 두드러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국내 실정에 맞는 추가 연구 필요
이번 연구에 사용된 미국 센트룸 실버는 노인의 생리적 특성과 영양 요구를 고려하여 제조한 제품이다. 해당 제품은 비타민 A, C, D, E와 B군 비타민(B1, B2, B6, B12, 엽산 등), 그리고 칼슘, 마그네슘, 아연, 셀레늄 등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다.
해당 연구에서는 특정 영양소가 효과를 냈는지, 아니면 전체 균형 잡힌 영양소 조합이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또한, 한국인의 식습관과 생활 환경을 고려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으며 일반 멀티 비타민과의 직접 비교 연구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실버 멀티 비타민이 인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과 식습관을 가진 집단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노인은 서구와 다른 식이 패턴을 보이므로, 국내 실정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은 비타민 D(약 80%가 결핍), B군 비타민(B12, 엽산 등 30% 이상 부족) 등 특정 영양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고령층에게 실버 멀티 비타민이 인지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멀티 비타민은 고령화와 함께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 예방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치매 예방, 고른 영양과 생활 습관이 핵심
인지 기능 저하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평균 돌봄 비용은 2천만 원을 넘어선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에 따라 치매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실버 멀티 비타민이 도움이 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치매 예방과 인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활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사회적 활동 참여, 지속적인 학습,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단 유지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인지 건강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치매 예방에는 '한 가지 해결책'이 없으며, 여러 접근법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지중해식 식단과 같은 균형 잡힌 식이, 유산소 운동, 인지 훈련,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가 모두 중요하며, 멀티 비타민은 이러한 종합적 접근의 한 부분으로 고려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노인의 인지 건강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향후 국내 연구와 정책 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