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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잇(I LOVE IT)."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나오미 애키가 전한 소감이다. 오늘(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미키 17' 기자간담회에서다. 이날 현장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그리고 최두호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이날 현장에 등장한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는 '미키 17'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고국인 한국에 방문한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처음 내한한 나오미 애키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한국에 온 게 처음이다. 감독님과 함께 오게 돼 기쁘다"라고 전했다. 이어 마크 러팔로는 "지난 내한 당시에도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저를 질투할 정도였다. 그분이 누구를 질투하는 건 처음 봤다"라고 지난 2015년 '어벤져스: 에이즈 오브 울트론'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을 꺼냈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감독 중 가장 훌륭한 분이지 않냐. 이분들과 함께 봉준호 감독님 고국에 오게 돼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
나오미 애키는 모든 ‘미키’를 지켜주고 함께 하는 여자 친구 ‘나샤’ 역을 맡았다. 그는 "저를 자유롭게 한 캐릭터"라며 나샤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특히 그는 미키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의 러브라인으로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로맨스 연출을 선보이게 됐다. 나오미 애키는 "다른 캐릭터는 비밀이 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나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내비친다. 이 캐릭터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신이 났다"라며 "나샤와 미키는 무엇을 이루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이 눈사태를 만들고 큰 결과를 이룬다. 평범함이 가진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라고 '나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덧붙였다.
스티븐 연은 지구부터 얼음 행성까지 ‘미키’의 유일한 친구 ‘티모’ 역을 맡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촬영을 마친 후 '미키 17'에 합류하게 된 스티븐 연은 "그때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개념을 두고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미움받는 캐릭터다. 저도 타인의 시각이 아닌, 개인적인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티모를 이해하려고 했다. 티모도 약점이 있다. 그런 지점을 탐구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였다"라고 자기 생각을 전했다. -
마크 러팔로는 얼음 행성 개척단의 독재자 ‘케네스 마셜’ 역을 맡아 생애 첫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놀랐다"라고 이야기하며 "'이 배역이 저에게 주어진 것이 맞나?'라고 생각했다. 저 자신도 저를 의심하고 있을 때, 감독님께서 믿어주셨다. 당연히 제 연기를 보고 만족할 수는 없지만, 결과물로 나온 영화 '미키 17'에 만족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특히 그는 정치인의 모습을 선보이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특정 정치인을 연상케 했다. 마크 러팔로는 "어떤 특정인을 연상하지 않길 바란다.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의 모습이다. 쩨쩨하고, 그릇이 작은 독재자를 오랜 세월 봐오지 않았냐?"라며 "마셜이 말할 때 악센트나 말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화한다. 조금 더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은 해석을 하고, 여러 인물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전 세계 여러 지도자를 연상하기를 바랐다. 이 영화는 2년 전에 찍은 작품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는데, 예언자처럼 2년 후 나타난 현실과 소름 끼치게 닮은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 영화가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통해 배우들의 다른 면을 꺼냈다. 그는 "제가 성격이 이상해서 사람을 볼 때도 이상한 면만 보게 되나보다"라고 이야기하며 웃음 지었다. 또한 "어느 한구석에 무언가가 다른 그 사람의 흔히 알려진 모습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집착이 생긴다. 마크 러팔로님이 한 번도 악역을 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첫 번째 기회가 저에게 왔다는 것이 영광스러웠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 독재자에게 엄청난 에너지로 소리 지르며, 목소리 하나로 제압하는 나오미 애키는 과거 '휘트니 휴스턴' 전기 영화에서 직접 노래하며 연기한 배우다. 총과 칼이 아닌 목소리 하나로 독재자를 제압하는 장면은 영국에서 시사할 때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라고 나오미 애키의 캐스팅에 대한 만족감을 전했다. 또한, '옥자'에 이어 '미키 17'에서도 함께한 스티븐 연의 캐스팅에 대해 "'미키 17'는 땀 냄새 나는 SF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스티븐 연 없이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거다. 배바지를 입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SF에서 진귀한 캐릭터를 스티븐 연이 실감 나게 연기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라고 애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SF 장르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간을 '복사'해서 기존 데이터를 심는다는 개념의 '휴먼 프린팅'에 대해 "사무실 프린터기에서 서류를 출력하듯 여러 유기물 재료로 사람을 출력한다. 그 자체에 많은 희비극이 담겨있다. 사실 조합되면 안 되는 단어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데, 프린트되면 안 되지 않나. 그 속에서 웃기기도 한 드라마가 내포돼 있다. 로버트 패틴슨이 보여준 미키는 매일 손해 보고, 얼빵하고,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착하지만 '찐따' 같은 청년이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착하고 가여운 청년이 계속 죽고, 복제되며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거기에서부터 기존 SF영화와 다르게 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미키 17'만이 가진 차별성에 대해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작품 속 남다른 디테일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애칭을 얻은 바 있다. 그런 그와의 작업에 대해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는 "아이 러브 잇(I LOVE IT)"이라고 입을 모아 극찬했다. 나오미 애키는 "배우로 감독님을 보면, 아이처럼 경계선을 설정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감독님을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봉테일이라면, 제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저를 자유롭게 해주셨다"라고 감탄했으며, 마크 러팔로는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를 보며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셨다. 이렇게 꼼꼼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연기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라며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시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분인데, 항상 겸손하다. 그래서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라고 그를 극찬했다. '옥자'에 이어 '미키 17'까지 함께한 스티븐 연은 "그는 항상 제 경험을 변화시켰다"라며 "눈빛이 정말 아름답다. 봉준호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시선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애정을 전했다. -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이후, 한국의 정치 상황과 연결된 '미키 17' 해석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비상 계엄령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마크 러팔로는 이메일을 통해 '괜찮냐, 안전하냐'라고 물었다. 저도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했다. 로제의 노래가 이번 주는 해외 차트 몇 위까지 올라갔나 뉴스를 보던 와중에 계엄령을 마주하게 됐다. 음악도, 영화도, 우리의 일상은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은 분이 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계엄을 극복한 우리 시민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극복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법적, 형사적인 내용일 뿐이다"라고 자기 생각을 전했다. 이어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은 사회과학 분야 전문 서적에 잘 설명돼 있다. 영화는 그런 틈바구니에 숨 쉬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많은 관객이 '미키 17'을 보면서 공감과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미키가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결국 그가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라고 작품 속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봉준호 감독이 SF라는 장르적인 외피를 통해 더욱더 진해진 사람 냄새가 담겨있는 영화 '미키 17'은 오는 2월 28일(금) 한국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난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