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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로큰' 속에는 반가운 하정우의 모습이 담겨있다. 주저 없이 냉동 생선을 들고 내려치는 액션 연기는 말 그대로 날 것이고, 압권이다. '브로큰'은 하정우가 팬데믹 시기를 지난 후, 선택한 작품이었고, 준비 과정부터 현장의 공기를 충분히 스크린에 옮겨보자는 마음가짐이 담겨있었던 작품이다. 그렇기에 '황해', '용서받지 못한 자' 등에서 봤던 날 것의 하정우가 반가움을 더한다.
영화 '브로큰'은 시체로 돌아온 동생 석태의 흔적을 쫓는 형 민태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누아르 장르의 영화다. 하정우가 맡은 민태는 과거 창모(정만식)가 이끄는 조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이를 떠나 일용직을 전전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는 인물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피붙이 석태가 시체로 발견되며, 그 전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걸리는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처단하면서 말이다. 그 여정이 비릿한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로 담겼다. -
Q. 하드보일드 장르 속 '배우 하정우'가 굉장히 반가웠다. 스스로 느끼기엔 어떤가.
"제가 SNS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게시물을 꾸면서 멋스러운 걸 올리면 별로 반응이 시원찮다. 그런데 감자에 싹이 나고, 이상한 사진을 올리면 반응이 폭발적이다. 제가 한 번 프로필 사진을 감자에서 멀쩡한 사진으로 했는데, '왜 바꿨냐?'라고 DM(다이렉트 메세지)이 엄청 왔다.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런 걸 좋아하시는구나!' 싶었다. 그 편차가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웃음)"
Q. 영화 '브로큰'을 선택할 때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연기하기 참 재미있는 작품이겠다' 싶었다. 대형 상업영화 같은 경우, 때로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한계점이 있다. 반드시 그 캐릭터가 표현해야 하고, 정확하게 기능적으로 해줘야 하는 지점이 지켜져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자유로웠다. 흥미로운 건 '브로큰'을 연출한 김진황 감독이 한국 아카데미 출신이다. 그런데 그 출신 같지 않고, 길거리에서 영화를 배운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해남에서 영화를 독학한 느낌? 야생성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지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Q. 동생 석태를 향한 마음이 영화 '브로큰'을 끌고 가는 민태 여정의 중심이었다. 그 중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임했나.
"민태에게 석태는 자식 같은 동생이었다. 그래서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석태를 조직으로 데리고 간 것이 민태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그 길로 들어서게 했는데,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을 마주하게 됐을 때, 당연히 그런 동력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은 상대적인 거지만, 민태 입장에서 자식 같은 동생을 조직에 데리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켰는데, 최종적으로 시체가 되어 만났기에 많은 감정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싶다."
Q. 민태를 연기하면서 중점에 둔 것이 있었을까. 외모도 달라진 것 같다.
"의식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컷을 쪼개서 부분적으로 찍는 게 아니라, 굉장히 길게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커다란 마스터 샷(기준이 되는 장면)을 넓게 잡아놓고, 처음에는 자유롭게 연기했다. 민태는 이야기 속에서 주체적이다. 이야기가 앞서고 민태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민태가 앞서가면 이야기가 따라가는 구조다. 이런 작품을 만나면 배우들은 연기하기가 재밌다. 과거 '황해' 촬영 당시에도 비슷했다. 리허설하며 현장에서 콘티가 다 변경됐다. 움직이며 연기하면,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께서 그 움직임대로 찍는다. 움직여보며 연기하면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께서 그 움직임대로 찍는다. 그러면 그 움직임에 설득력이 더 강해진다. 그런 부분들이 민태를 연기하는데 더 주효했던 것 같다. 작품 할 때마다 낯설고 새롭다. '브로큰' 때 지금과 몸무게는 8kg 차이 난다. 찌웠다기보다는 쪘다. 제가 붉은 계통의 옷을 잘 안 입는데, 그 계통의 옷을 처음 입어봤다. 제가 팔 체질 중 토(土) 체질이라 평상시 검은색 옷과 검정 안경을 주로 착용한다." -
Q. 현장감의 영향이었는지, 민태가 냉동 생선을 든 액션이 굉장히 짧았지만 강렬했다. 어떻게 탄생한 장면이었을까.
"현장에서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나온 거라 안전 소품이 아닌 실제 냉동 생선이다. 사실 파이프도 고무로 된 여러 형태의 안전 소품들이 있었다. 액션할 때는 고무 형태로 된 파이프를 들었다. 해당 장면 촬영지가 강릉에 있는 한 부둣가였다. 리허설하는데 배가 들어와서 거기에서 경매하고 그러더라. 냉동고에 냉동 생선이 있었는데 '이걸 써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너무 좋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 위험하다. 지느러미가 날카롭다. 진짜 리허설을 많이 하고 그 장면을 촬영했다. 저희는 세트가 1초도 안 나온다. 전부 야외 로케이션 촬영을 했고, 현장에서 유독 아이디어를 많이 얻은 작품이다. 골목길 액션 촬영지를 갔는데, 원래 다 치워주기로 했는데, 쓰레기 더미가 그대로 있었다. '그냥 이걸 이용해서 찍자'라는 분위기였다. 어디 가면 '여기서 뭘 이용할 게 없나' 두리번거렸다. 실제 주택, 실제 아파트, 실제 상가. 그렇기에 이를 고스란히 담으려고 감독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다. 그래서 더 날 것 같은, 생생한, 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Q.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치밀한 계획 속에서 임해야 하는 작품도 있고, '브로큰' 처럼 현장의 날 것을 살리는 작품도 있다. 어느 쪽에 더 매력을 느끼나.
"저 같은 경우는 자유롭게 제약되지 않고, 약속되지 않은 연기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작품과 캐릭터에서 제가 가진 장점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스토리가 강한 작품일수록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걸 뚫고 나오려면, 무리수가 되는 지점이 있다. 자기 개성을 살짝 묻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면, 개인적인 표현에 패턴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저는 '브로큰' 같은 캐릭터가 편하다. 그렇게 저와 함께 작업한 감독님이 나홍진 감독님, 윤종빈 감독님, 김진황 감독님이셨던 것 같다." -
Q. 배우이지만 감독으로도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직접 연출한 영화 '로비'와 '윗집 사람들'이라는 두 편의 작품으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 속 영화를 계속해 나가는 힘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연출자로서, 제가 만든 영화를 보고 싶은 것. 그 작업의 과정이 너무나 좋다는 것. 그 고민을 하고 앉아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 '롤러코스터'를 찍을 때와 '허삼관', '로비', '윗집 사람들'을 찍을 때 현장을 각각 바라보는 지점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달리 영화를 바라보고, 삶을 해석하고, 스태프, 배우들과 어떤 소통을 한다. 점차 '달라진다'라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 같다. 웹 예능 '빠더너스'에서 '허삼관' 이야기를 많이 해서, '윗집 사람들'을 마치고 오랜만에 그 작품을 봤다.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런데 당시 소설 속 표현을 그대로 대사로 옮기는 걸 선호했다. 예를 들어 '내가 종달새의 왕입니까'라는 대사가 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영화 속에서 킥을 줘야 하는데 웃음 포인트가 없더라. 소설 속 글을 가져와 대사로 배치할 때 '나 혼자 넓게 생각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거지만, 그런 것들이 보인다. 다른 식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재밌더라. 그래서 '로비'와 '윗집 사람들'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조금 더 재미있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혼자 한다. 이런 과정이 재미있다. 계속 도전을 하는 것도 좋다."
Q. 연출작의 개봉 시기는 정해졌을까. 더불어 임필성 감독의 작품 '건물주'에 합류했는데, 차기작 계획도 궁금하다.
"'로비'는 4월, '윗집 사람들'은 8월 개봉 예정이다. 또 임필성 감독님과 하는 작품은 89% 확정이다. 11% 여지가 있다. (웃음)"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