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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득하세요, 그러면 내가 관객을 설득할게요"…이병헌, 근거는 나의 힘 [인터뷰]

기사입력 2025.01.15.00:01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해당 인터뷰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배우들은 근거가 필요해요. 내가 이렇게 연기를 해야 하면, 이렇게 행동하거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뭐냐고 (감독님과 작가님께) 물어보는 거죠. '나를 먼저 설득하세요'라는 거죠. 그러면 내가 관객 혹은 시청자를 설득할게요. 정말 샅샅이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하는 것은 되게 불안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애초에 글 쓴 사람의 의도를 제가 온전히 다 가져오고 싶은 거죠. 글을 쓴 작가님이 있고, 글을 표현하는 감독님이 있고,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배우가 있어요. 그 단계마다 왜곡되면, 글에서부터 배우까지의 괴리감은 더 커질 수 있단 말이에요. 애초에 쓴 사람의 의도를 고스란히 가져오고 싶은 것이 표현하는 사람의 마음인 거죠."

    배우 이병헌이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 준호(위하준)의 형 인호, 게임 집행자 프론트맨, 그리고 게임 참가자 오영일까지 세 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선보였다. 시즌 1에서 우승을 한 기훈(이정재)이 게임을 막기 위해 '오징어 게임'으로 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병헌은 그를 견제하기 위해 게임에 참여한 오영일이었고,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과거 게임에 참여해 우승했던 인호였고, 그리고 게임을 이어가려는 냉혹한 프론트맨이었다. 그리고 이병헌은 0.1초를 오가며 세 명의 캐릭터를 한 장면에 동시에 담아냈다. 그 복잡한 감정선은 '오징어 게임' 시즌2를 타고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시즌1에서 과거 영화 '남한산성'에서 함께한 황동혁 감독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한 그 고리는 시즌2와 3을 이끌어가는 한 축으로 그를 서게 했다.

  •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오징어 게임' 시즌1에서 특별출연으로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낸 이후, 시즌 2와 아마도 시즌 3까지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됐다.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었을까.

    "제가 특별출연을 여러 차례 했었다. '밀정'에서도 해봤고. 특별출연을 할 때, 저는 오히려 질문이 많아진다. 특별출연은 서사가 없다. 그래서 전에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신념을 가진 친구인지 아무 설명도 없다. 그래서 감독에게 많은 질문을 해서 그 인물의 형태를 만들고 싶어진다. 그래야 그 안에 젖어 들 수 있다. 막연하게 어떤 걸 연기해 보라고 하면, 기댈 곳이 없어 연기하기 힘들다. 그런 이유로 시즌1 때 더 질문이 많았을 수 있다. 물론 시즌 2에서도 질문이 많긴 했다. 황동혁 감독님께서 '질문을 하도 많이 하셔서 그의 서사가 완성된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많은 캐릭터를 관장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고, 즉각적으로 답하고, 함께 생각해 나가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황동혁 감독이 굉장히 달변가이지 않나. 그런 질문에 순발력으로 익숙하게 대처하며 달변가가 되신 게 아닌가 싶다. (웃음)"

    Q. 해외 시청자들은 001번 참가자 오영일과 456번 참가자 성기훈(이정재)의 브로맨스 서사를 완성하기도 했다. 성기훈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임했나.

    "동질감 같다. 자기와 같은 희망하나 없는 세상을 등지고 게임에 참여했고, 모든 과정을 통과한 우승자로서의 동질감. 그러면서도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신념을 갖게 된 한 사람. 끝까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게임에 다시 참여한다고 했을 때, '오케이, 그러면 네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는지 깨닫게 해줄게'라며 시작됐는데, 그저 게임에 참가한 것이 아닌 모든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없애버리겠다는 기훈의 생각을 느끼게 되며, 프론트맨은 계획에 없이 게임에 참가자로 잠입하게 된 거로 생각했다. 브로맨스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다. 모든 배우가 다 각자 노력했고, 각자 매력을 보여줬다. 성기훈은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이제는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사람의 입장이 된 것 같다."

  •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오징어 게임' 시즌2를 보면서 가장 감탄하게 했던 지점은 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오영일, 프론트맨, 그리고 인호의 모습까지 모두 교차해 보였던 점이었다. 어떤 계산을 하고 디테일을 만들었을까.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오일남(오영수)의 정체가 가장 마지막 화에 '짠'하며 밝혀지는 것이 묘미였다면, 오영일의 등장은 3화쯤에서 밝혀진다. 아주 영리한 생각 같았다. 황동혁 감독님이 쓰셨지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영일의 존재가 밝혀진 후, 시청자 입장에서는 오영일과 자신만의 비밀을 함께 가져간다는 점에서 미묘한 지점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복잡하고, 힘들고, 큰 숙제이기도 했다. 프론트맨이고,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프론트맨이기 전 인호의 성격,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오영일. 이 세 가지 모습이 다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연기할 때, 세 사람의 퍼센트(%)를 변주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프론트맨 30%, 인호 30%, 오영일 40% 이런 식으로. 매 장면 황동혁 감독님과 회의했다. 예를 들면, 가장 힘들었고, 기대했던 장면이기도 한데, '둥글게 둥글게'를 부르며 짝을 이루는 게임을 할 당시, 오영일이 방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 장면에서는 인호, 프론트맨, 오영일의 모습이 0.1초 단위로 왔다 갔다 하며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순식간에 교차해야 하는 느낌? 그래서 그 장면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Q. 마지막에 오영일에서 프론트맨으로 돌아가지 않나. 게임에 참가한 이후, 프론트맨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다른 감정이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프론트맨의 의상과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게임에 참여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생각하고, 황동혁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정배를 죽일 때, 나도 마음이 아프겠죠?'라고 물었다."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된 이후, 해외 언론에서도 극찬이 이어졌다. 사실, '지.아이.조-전쟁의 서막'(2009)부터 일찍 할리우드 진출을 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으로 정점의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 남다른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사실 할리우드 작품을 몇 번 경험하면서, 딱히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거의 액션 위주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연기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었을 거다. 초창기 할리우드 작품에 합류했을 때, '난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라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았다. 그냥 호기심으로 갔다. 배우로 살면서 할리우드를 접하는 것이 어떤 마음일까. 그저 감사한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개봉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날 알아볼 텐데,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 그게 '레드: 더 레전드'(2013),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미스컨덕트'(2016), '매그니피센트7'(2016) 등에서 반복된 거다. 가끔 입국심사 때 '너 유명한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은 있다. (웃음) 그 많은 과정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오징어 게임' 프로모션으로 미국에 갔을 때,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너무 감개무량했다. 할리우드 작품이 아닌, 우리나라 동료들과 우리나라 작품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성원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고? 되게 아이러니하면서도 감개무량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K-콘텐츠'의 위상이 어느 정도라는 건, 나가보면 확실히 더 느끼는 것 같다. 이제 BTS, 블랙핑크 같은 분들 보면 '선배님' 이러려고 한다. (웃음)"

    Q. 현재 촬영 중인 작품이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이다. 배우 손예진과 함께하고 있는데, '오징어 게임' 시즌3과 이 작품까지 공개되면 전 세계적인 위상이 더 높아질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좋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배우를 시작하고 30여 년을 살았는데, 그건 자기 의지와 다르다. 주어지는 인연들이 있는 것 같다. 제가 못 하게 된 정말 훌륭한 작품도 있고, 제가 선택했지만, 아쉬웠던 작품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면 좋겠지만, 결과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결과는, 인연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딸을 보는 삶은 어떤지, 초등학생이 된 아들의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민정 씨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야기꾼 같다. 계속 항상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어떻게 저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계속 나오는지 궁금하다. 저는 딸에게 하는 말이 딱 두 가지 같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거나, '아빠해봐' 정도다. 아내가 지겹다고 한다. 아들은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질문이 엄청나다. 학교 형들에게 듣거나, 유튜브를 통해 짧은 장면만 보게 된 날, 저에게 그 질문만 한다. 아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도 있으니, 설명해 주기도 어렵다. 어떤 날은 그 이야기를 하더라. '아빠, 프론트맨 자리 뺏긴다며?'라고 하는 거다. 도대체 이건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싶다. 시원하게 이야기를 못 해주겠다."

    Q. '오징어 게임' 시즌3과 관련해서는 아들에게도 함구하고 있나.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순간, 전국 초등학생들에게 퍼질 수 있다. (웃음)"

    Q. '오징어 게임'은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작품의 의미도 있지만, 어느 정도 현상인 것 같다. 그 현상 안에 저도 있는 거다. 그래서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할리우드를 경험해 봤어도, 이런 신기한 경험은 처음이다. 작품 자체가 주는 화제성과 재미, 그리고 작품 속 주제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공감과 사랑을 받았겠지만, 전반적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올라와서 그 안에서 또다시 올라올 힘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저에게도 그런 의미로, 긴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시점으로 지나가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오영일-인호-프론트맨을 선보인 배우 이병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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