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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이는 제 인생 캐릭터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작품에 함께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나. 당연히 기훈이는 인생 캐릭터고, '오징어게임'은 인생작이다. 배우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오징어게임' 다음으로도 이런 한국 콘텐츠가 계속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 K콘텐츠를 세계에 알린 주역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을 터다. 극을 이끈 이정재 역시 이 같은 행운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시즌1 때도 그랬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느낌이 있다.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라고 시즌2로 돌아온 소감을 전했다. -
지난해 연말, '오징어게임'이 3년여 만에 새 시즌을 선보인 후 반응이 엇갈렸다. 전편 비주얼에 익숙해진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선사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시즌3를 염두한 탓인지, 시즌2 전개가 다소 지루하다는 평도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여러 반응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물론 혹평이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혹평도 봐야 하는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었다면 아쉽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저도 아쉬움이 남았을 텐데, 시즌3가 있으니까 중간 채점을 받는 듯한 느낌이라 훨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반응들을 보고, 시즌3에서 더 보여드릴 게 많겠다고 생각했다. 시즌3를 계속 준비하고 있었지만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
이정재는 전편에 이어 '성기훈' 역으로 작품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 게임의 최종 우승자로서 456억 원을 받은 기훈은 잔혹한 게임을 만든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다시 게임에 참여한다. 시즌2 속 기훈은 무능하지만 발랄했던 지난 모습과 달리, 진중하고 목적의식이 강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시즌1과 2 사이 꽤 공백기가 있던 만큼, 이정재는 성기훈을 꼼꼼히 쌓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연기톤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기훈이 게임을 끝마치고 나왔지만 상금을 쓸 수 없는 심적 변화가 있지 않나. 3년 동안 기훈은 이전에 밝은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는 기훈으로 변해 있었다. 새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양심에 따르는 기훈을 차근차근 빌드업했다."
"기훈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목적의식이 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되돌아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기훈이가 안쓰러웠다. 그가 목적을 이루면 과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제가 여러 캐릭터를 해왔지만 안쓰러운 마음만 생각한다면 기훈이가 가장 안타까운 것 같다." -
다시 찾은 '오징어게임' 세트장 앞에서, 이정재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꺼냈다. 수십 년 연기 생활 중 처음 겪는 마음이었다. '와 이걸 또 하네'라는 기대감과 함께 '지옥 같은 상황을 다시 연기해야한다'는 불안감이 미묘하게 섞였다.
"(세트장) 문 손잡이를 잡고 6~7초 정도 멈칫했던 것 같다. 현장 분위기는 물론 좋았지만, 세트장에 들어서면서 시즌1 연기할 때의 감정이 확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침대가 456개가 있는데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저를 포함해 딸랑 3개가 남았었다. 그 아래 사람들이 죽었던 흔적, 피 얼룩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시즌2 촬영 때 세트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또 그 바닥을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저를 힘들게 했다." -
잠시간의 주춤함을 이겨낸 이정재는 다시 기훈이 됐다. 외적으로는 잔혹한 게임이지만,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는 전혀 잔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기훈을 통해 '선한 양심'을 다시금 새겼다.
"시즌1에서 성기훈이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함 때문인 것 같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저는 기훈을 연기하면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떠올랐다. 왜 기훈이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까. 왜 상금을 못 썼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바로 기훈의 양심이 그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살면서 양심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쉽게 들키는 게 양심이다. 하지만 양심을 회피하지 않고, 행동으로서 이뤄지게 만드는 기훈 같은 인물이 이 시대, 이 사회에 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
시즌2에서는 전편과 다른 게임도 등장했다. 딱지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석치기, 팽이 등 한국의 민속놀이로 이뤄진 5인 6각 근대 5종 게임이다. 이정재는 제기차기를 담당했다. 드라마 속에서는 제기차기 다섯 번을 쉽게 해냈지만, 실제로는 난관이 많았다며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대역 없이 제기차기를 했는데 두 개도 못 차겠더라. 어릴 때 제기 못 차는 친구들을 '개발'이라고 놀리지 않았나. 제가 다섯 개를 차야 했는데 몇십 년 만에 하니까 안되더라. 제가 개발이었다. 두달을 꼬박 연습해서 겨우 다섯 개를 찼다. 촬영 날에는 골반이 아플 정도였다. 게다가 다섯 명이 줄줄이 묶여 있으니까 더 힘들었다. 눈치도 보였다.(웃음)" -
이정재는 이날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을 기획하고 연출한 황동혁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믿음이 있었다"고 운을 뗀 그는 "황동혁 감독님의 큰 장기 중 하나가 신 안에서 변주를 주는 거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촘촘히 잘 해낼까'하는 점에서 굉장히 놀라웠다"라며 영화 '헌트'로 직접 연출을 경험한 후 황 감독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도 배우 생활을 오래 했지만, 감독님과 현장에 함께 있다고 해도 그 고충을 100% 알 수는 없었다. 제가 '헌트' 시나리오, 기획, 제작, 연출을 다 하고 나니 감독님들의 고충을 좀 알겠더라. 전에는 황 감독님이 이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고 안됐네요' 했는데, ('헌트' 이후로) 이 6개가 빠진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도 건강이 안 좋아질 만큼 일을 했으니까.(웃음)"
그러면서 시즌3에 대한 귀띔도 잊지 않았다. "시즌3는 심리 게임에 더 강하다. 게임 안에서 보여질 심리가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돌아간다. 시즌3가 공개되면 시청자분들의 의구심이 많이 해소가 될 거다"라며 "일단 시즌2를 봐주십사 하는 간곡한 마음"이라며 당부한 이정재였다.
K콘텐츠의 주역으로서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는 이정재. 그의 인생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오징어게임' 시즌1과 2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시즌3는 올해 중 공개될 예정이다.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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