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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여있지 않으려는 송중기의 철학

기사입력 2025.01.01.08:30
  • 사진: 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
    ▲ 사진: 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십사 하냐면, 요즘엔 그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그저 '좋게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젠 각자 해석하시는 걸 다 받아들이게 되더라. 좋은 리뷰, 안 좋은 반응 다 본다. 고여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송중기는 영화 '보고타'에 대해 "제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팬데믹 시기 어렵게 진행된 작품이라 늘 마음 한구석에 아픈 손가락처럼 자리했을 터다. 송중기는 그런 마음을 숨기지도, 포장하지도 않고 고스란히 털어놨다. 아쉬움마저도 작품의 한 부분으로 인정했고, 스스로 질 수 있는 책임을 다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송중기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보고타'는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로 향한 국희가 보고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병장(권해효)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송중기는 IMF로 인생이 뒤바뀐 '국희' 역을 맡았다. 국희는 보고타 한인 사회의 큰 손 '박병장', 그리고 통관 브로커 '수영'(이희준) 사이에서 욕망을 키우는 인물이다.
  • 2024년 마지막 날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송중기는 "오랜만에 개봉하는 영화라 떨리고 기대된다. 어떻게 개봉일이 올해 마지막 영화가 돼서 이상한 책임감도 생긴다"라며 개봉 소감을 전했다. 이어 "요새 워낙 한국 영화가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런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당연히 제 영화니까 많은 분들께 예쁨받고 싶다"라고 애정을 당부했다.

    IMF로 모든 것을 잃고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새 시작을 하게 된 국희는 무능력한 아버지, 무기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 그렇게 10대에서 30대에 걸쳐 변화하는 입체적 캐릭터를 표현한 송중기는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만큼은 묵직했다"며 웃어 보였다.

    "캐릭터 때문에 느끼는 부담은 별로 없다. 평소에 '부담감'이라는 단어는, 어찌 됐든 제가 주연일 때는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 무릎 위에도 있다. 무조건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다."

    "다만 국희의 10대, 20대를 다 표현해야 해서 민망함은 있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도 이 부분 때문에 제작사 대표님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저는 서른다섯쯤 됐으니까 민망했다. 그런 제 마음을 바꾼 건, (작품 속에) 민망함을 채울 수 있는 지점들이었다. 그래서 '나이 들기 전에 하자. 더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시켜주지도 않는다' 하는 마음으로 민망함을 이겨냈다."
  • '보고타'는 팬데믹 시기를 거쳐 현지 로케이션을 소화하며 어렵게 만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 현지 촬영이 중지됐고, 그 사이 송중기는 드라마 '빈센조'를 찍었다. 차기작으로 '재벌집 막내아들'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보고타' 촬영을 먼저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중기는 당시의 답답했던 심정을 전했다.

    "코로나19라는 역사적 사건 탓에 모두가 올스톱되지 않았나. 한국에서는 조금씩 찍을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는 아예 전면 중단이었다. '보고타'도 중간에 촬영이 중지됐고, 콜롬비아에 다시 가서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빈센조'를 찍고,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하기로 했다. 저는 '재벌집 막내아들' 미뤄 놓고 이거('보고타') 먼저 찍어야 한다고 했다. 시작했는데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 영화가 엎어질까 봐 걱정됐다. 다른 작품을 찍고 있을 때도 '보고타'가 뒷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했다. 그래서 작품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

    추가 촬영을 진행했어도 애초 계획한 그림을 모두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송중기는 '보고타' 만족도에 대해 80점이라고 답했다. 남은 20점의 아쉬움은 무엇인지 묻자, 송중기는 "솔직히 89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자기 영화 되게 좋아하네' 하실까 봐 80점이라 말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고타'는 제가 처음에 대본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뜨겁게 나왔다. 사실 100점을 줄 수 있는 작품은 없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중간에 촬영이 중지됐던 거다. 한국 영화에서는 처음 보여드리는 로케이션 신도 많았는데 미처 담지 못했다. 그걸 관객분들께 다 소개해 드렸다면 90점은 넘는다고 말씀드렸을 거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 '로기완'에 이어 '보고타'까지, 송중기는 최근작에서 많은 해외 촬영을 소화했다. 그 이유에 대해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낯선 환경, 거기서 오는 신선함이 본인의 기질을 자극한다고 했다.

    "저는 안 해봤던 장르나, 함께 안 해본 사람들과 새로운 걸 하는 게 좋다. 제가 경험하지 않은 문화권에서 그 문화권의 크루들과 있다 보면 개인적으로도 배우는 게 많다. 해외 작품이라고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한국과) 다른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좋다."

    "데뷔 전부터 제 기질이 그렇다. 고여있는 걸 싫어한다.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게 스물여섯이었으니까, 좀 늦지 않나. 주연배우가 되기 전까지는 선택권이 없었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다음부터 그런 기질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 지난해 영화 '화란' 인터뷰에서 해외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며 "올해 본 건 다 떨어졌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던 그다. 여전히 해외 작품에 꾸준히 노크하고 있다고 말한 송중기는 아직 도전에 목마른 모습이었다.

    "아직 해외 쪽으로 보여드린 게 없긴 하지만, 제가 도전한 작품을 다른 배우가 하고 계신 것도 있고, 제 사정으로 못 한 것도 있다. 물밑에서는 되게 발을 막 젓고 있다. 저는 이런 게 재밌다. 와이프가 많은 도움을 준다. 은퇴하기는 했지만, 워낙 활발히 배우 생활을 했던 친구라 인맥이 많다. 아내의 조언도 받으면서 계속 ING 하고 있다."

    아내와 두 아이는 단연 송중기의 원동력이다. 작품 활동에 육아까지, 쉴 틈 없이 바쁜 그는 "모두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 아니겠나"라며 가장다운 듬직함을 드러냈다. 남편이자 아빠 송중기로서의 생활을 묻자 "아내와 너무 행복하니까 둘째가 태어났겠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도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워낙 세계 여기저기서 살았던 친구라 이렇게 안전한 나라는 처음 봤다고 한다. 제가 바쁠 때가 많은데 남자 입장에서 안심이 된다. 와이프 혼자 밤에 나가도 걱정이 안 되니까. 또 아내가 음식 배달이 잘 되는 것에 깜짝 놀란다. 사소한 것도 잘 적응하고 있다. 가끔은 저도 안 가본 서울 시내를 아내가 알려준다. 요즘 한국어 수업을 받아서 많이 늘었다. 우리 엄마한테 '어머니 밥 먹어' 한다. 아직 존대를 어려워한다. 참 귀엽다. (웃음)"

  • 송중기는 '보고타' 뿐만 아니라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경쟁작들을 언급하며 넌지시 바람을 덧붙였다. "요즘은 콘텐츠끼리의 경쟁 아닌가. '오징어게임 시즌2'도 빨리 보고 싶고, '하얼빈'은 시사회로 보고 왔는데 정말 좋은 영화더라. 아주 고생했겠다 싶었다. 우리도 고생 많이 했는데 알아달라는 건 아니고(웃음) 그저 재밌게 봐주십사 하는 마음이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라고 강조한 송중기의 연기 향연을 담은 영화 '보고타'는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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