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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하얼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 현빈이 '안중근 장군' 역할을 맡았다는 보도가 이어진 후 계속 '물음표'가 있었다. 당시 현빈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안중근 장군'이라는 시대의 무게감이 더해진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했다.
첫 번째 궁금증은 인터뷰에서 직접 질문하며, 풀렸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하얼빈'을 본 직후, 해소됐다. 현빈의 '안중근 장군'은 두려움이었고, 죄책감이었다.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이 홀로 멋지게 길 위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는 모습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다. 세상에 있는 독립 투사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수많은 독립 투사가 그와 함께 걸어가는 작품이다. 현빈은 1m가 넘게 얼어 공포감을 주는 희한한 소리가 나는 호수 위를 홀로 걸으며, 때로는 눈을 기다리며, 때로는 두려움에 빛을 등진 채 몸을 웅크리고 '안중근 의사'의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 해소됨과 동시에 더욱 궁금해졌다. 전과 다른 얼굴로 커다란 스크린에서 압도하는 존재감을 발산한 그의 고민이 말이다. -
Q. 안중근 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추앙받는 인물 중 한 분이다. 그런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하얼빈'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하다.
"우민호 감독님께서 '하얼빈'을 하고자 했던 목적 중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장군의 거사와 그 이후 상황보다,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을 이야기해 보자'였어요. 독립 투사인 '안중근 장군'의 모습도 있지만, 그 이면에 '사람 안중근'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이 된 거죠. 저 또한 그 지점이 흥미로웠고요. 시원하고 통쾌한 결말이 아닌, 계속 나아가게 하는 밑거름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독립군의 여정을 보여주며 '앞으로 남은 당신들도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라서요. 기존에 영화화된 작품과 목적도, 방향성도 완전히 달랐기에 선택한 이유도 있습니다."
Q. 사실 '하얼빈'을 선택했던 당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일본을 비롯해 글로벌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때였다. 한류스타라는 지점에서 오는 부담감은 없었을까.
"주변에서는 많았어요. (웃음) '이게 맞는 선택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죠. 그런데 '하얼빈' 뿐만아니라,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보이면, 그로 인해서 그때의 일을 잠시 떠올리고, 감사함도 또다시 느끼게 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라는 영상이 훨씬 접근성이 쉬운 것 같아요. 물론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분의 고뇌를 다시 한번 알게 되고, 떠올리게 되며 여러 좋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Q. '하얼빈' 속 인상 깊은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의 첫 시작이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호수를 홀로 걸어가고 있는 안중근 장군의 모습이었다. 홉스굴 호수에서 촬영했다고 알려졌는데, 그 당시 한 발 내딛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정을 잡고 임했는지 궁금하다.
"사전답사를 다녀온 팀들에게 홉스굴 호수에 대해 들었는데, 도착해서 풍광을 봤을 때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얼음 위에 서 있으면 되게 희한한 소리가 나요. 제가 알기로 1m 넘게 얼어있는 상태라서, 현지 분들은 루트를 개척해 차로 이동도 가능하거든요. 촬영 현장까지 차로 이동해서 베이스캠프에 촬영 장비들을 내려놓고, 저는 홀로 촬영해야 하는 강 한복판까지 걸어갔어요. 그런데 강에서 들려오는 희한한 소리에서 오는 공포감이 조금 있더라고요. 저희 음악 안에 그 음향이 같이 혼합되어 녹음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공간에 혼자 촬영하려고 올라서서 걸어가면, 정말 끝없이 얼어있는 얼음판과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산들만 보여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독립군들도 정말 끝도 모르는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추웠을까. 저는 홉스굴 현장의 모든 것들의 도움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Q. 신아산 전투도 굉장히 강렬하다. 보통 전쟁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웅장하게 담지 않나. 그런데 '하얼빈' 속 장면은 전투 속으로 쑥 들어가 가까웠고, 그만큼 더 처절했다.
"광주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그때 몇십 년 만에 온 폭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지역에 원래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대요. 그런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장비를 실은 차가 이동할 수 있도록 제설 작업부터 해야 했어요. 며칠에 걸친 노력으로 길을 만들어서 올라갈 수 있게 됐는데, 현장에 가보니 온통 눈이었어요. '하얼빈'에 나오는 눈, 바람 등 모든 자연현상은 CG(컴퓨터 그래픽)가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실제예요. 예전 작업과 연결되는 장면이라 눈이 와야 하는데 안 오면, 눈을 기다렸어요. 우민호 감독님이랑 촬영 감독님이랑 저랑 또 고사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신기하게 다 이뤄졌어요. 그래서 눈밭에 뒹굴며 촬영을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온통 진흙탕이 되어, 그렇게 스크린에 담겼죠.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길 바랐었고, 전투 장면의 액션이 현장에서 많이 수정됐어요. 리허설도 다시 하고. 약 열흘 정도? 오래 찍었어요." -
Q. 제작보고회 때 우민호 감독이 "허리 부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카메라가 가까웠던 만큼 더 위험했던 건 아닌가.
"카메라가 더 가까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됐어요. 홍경표 촬영 감독님께서 또 생동감 있게 이 상황을 다 전달하고자, 화면을 그렇게 잡아주셨고요. 허리 부상은 제 부주의죠. 액션 수정을 하다가, 힘과 힘으로 부딪히고 버텨내는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을 들어서 뒤로 넘기는 장면이 한 장면 있었는데요. 그때 허리를 좀 뒤집으면서 무리가 왔던 것 같습니다."
Q. '하얼빈' 속 안중근에게 가장 깊이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고,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진하게 느껴진 장면이 최재형(유재명)과 독방에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그때의 고민도 궁금하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장면 중 하나예요. 그 장면이 안중근 장군님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안중근 장군은 포용력이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초라한 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그 공간에 혼자 먼저 가서 되게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이 공간의 공기나 에너지를 느끼려고요. 특히, 그 촬영을 앞두고는 정말 그 공간에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 아이디어도 조금 낸 부분이 있어요. 원래 그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었어요. 그 의자에 안중근 장군님이 앉아계시고, 최재형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런데 '의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창가 빛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요. 신아산 전투 때도 그렇고, 결과적으로는 실패의 연속을 계속 보여주고 있거든요. 자신의 결정 때문에 동지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했고요. 어디 들어가서 숨고 싶고, 좌절하고, 자책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빛이 없는 저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있으면 어떨까요?'라고 여쭤봤더니, 우민호 감독님께서도, 홍경표 촬영 감독님께서도 '너무 좋을 것 같다'라고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그렇게 시작이 됐죠." -
Q. 그렇기에 안중근 장군을 중심으로 수많은 동지가 함께하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거사는 안중근 장군이 했지만, 주변에 수많은 동지가 함께 희생하며 같이 해낸 일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이게 결말이 아니라, 우리는 밑거름이고, 이 하나의 밑거름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고요. 저희가 몽골 로케이션부터 촬영이 시작됐거든요. 저는 저대로 '안중근 장군' 역에 대한 압박과 무게감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곳에 함께 있던 모든 배우가 같은 생각이었어요. 우덕순(박정민)은 우덕순대로, 김상현(조우진)은 김상현대로, 공부인(전여빈)은 공부인대로. 각자의 캐릭터를 위해 때로 스스로 고립돼 있었고, 그만큼 외로워하고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의지하게 되었고요. 현장에서도 실제로 함께했습니다."
Q. 거사를 치르고 '까레아우라'를 외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뭐였을까.
"거사를 앞두고 기차역에서 안중근 장군이 공부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죠. 그리고 한 번 이야기하며 '이렇게 하면 알아듣겠냐?'라고 확인도 하고요. 거기에서부터 감정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 소리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에게 잡힌 후에도, 목이 갈라질 때까지 계속 소리를 질렀던 거죠. 암전이 된 후에도 그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잖아요. 그때는 안중근 장군의 얼굴보다, '까레아우라'라는 소리가 더 멀리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알려지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
Q. 영화 말미 등장하는 내레이션이 큰 울림을 준다. 현재 혼란스러운 시국과 맞물려 더 뜨거운 온도를 유지하는 느낌이다.
"그 내레이션도 그렇고,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도 그렇고, 우민호 감독님게서 실제로 역사 속에 있던 글들을 차용해서 각색을 보태 정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 시국과 맞물려 받아들여지고 있고요. 저는 시국을 떠나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앞으로도 분명히 어떤 어려움을 대면해야 할 순간이 올 거로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때마다 우리는 이겨 내왔고, 이겨나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Q. 무게감을 가지고 임한 안중근 장군과 자신의 접점을 발견한 바는 없나. 곧은 심지나 해내는 강인함이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없을 겁니다. 제가 몇 달 동안이나 준비하고,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카메라 앞에서 벗어나는 순간까지 매일 상상하고, 생각했는데요. '그분의 발톱도 따라갈 수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인 과정인 것 같아요. 그 나이대에 생각할 수 있는 범주도 아니고요. 불과 30~31세셨거든요. 그래서 그냥 흉내라도 내려고 애썼다는 정도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그럼 그 나이(30~31세)대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을 것 같다. 그때의 '현빈'은 어땠나.
"전 군대를 갔습니다. 같은 군인이었네요. 저도 나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딱 그때가 '시크릿가든' 마치고, 해병대 입대할 무렵이었네요. 그런 부분에서 접점이 있을 수 있겠네요. (웃음)" -
Q. 지난 18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이 17년 만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뭔가 예능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입이 마르네요(웃음) 일단 첫번째 목표는 '하얼빈' 홍보죠. 제가 방송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오히려 듣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장시간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자제해 온 거죠. 그런데 또 오랜 기간 하지 않았으니, 궁금하셨던 분들은 색다르게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연하게 됐습니다. 또 다행히 옆에서 저를 리드해주신 두 분(유재석, 조세호)께서 마침 같이 운동하며 오고가고 뵈었던 친분이 있던 분들이셔서 그분들의 덕을 크게 본 것 같습니다. (웃음)"
Q. 결혼을 해서 배우 손예진의 남편으로, 또 출산 후 한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며, 현빈 배우의 세상이 달라졌을 것 같고,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을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생각도 달라졌고, 역할도 달라졌고요. 제가 제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제 중심이 아닌 다른 존재가 중심이 되어 사는 거니까, 너무 다르죠. 첫 번째가 바뀌었으니까요. 이렇게 아이를 위해 생각하고 하는 것들이 저를 위해 하는 것보다 더 많아지는 시점 같아요. 아이와 아내가 제 첫 번째이고, 저는 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난 거죠. (웃음)" -
Q. '하얼빈' 속 메시지처럼 스스로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는 바가 있을까.
"제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표현하려고 한 발 한 발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어제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일례가 될 수 있죠. 20대에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게 가시가 놓여있었다면, 그런 것들을 조금씩 없애려고 한 발 한 발 가는 것도 같고요. 뭔가를 표현해야 알 수 있다는 것도 조금씩 느끼고 있는 요즘이라, 또 그런 것들도 해내려고 한 발 한 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차기작도 우민호 감독과 함께한다. 디즈니+ '메이드인 코리아'를 통해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을 좇는 남자와 그를 막는 강직한 검사의 이야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메이드 인 코리아'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12월과 오는 1월에는 '하얼빈' 홍보 일정과 함께할 것 같고요. 일정이 없을 때는 현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촬영을 하고 있을 것 같고요. 우민호 감독님과 두 작품을 하면서 너무 좋아요. 이 두 작품이 너무 다른 이야기라서요. 지금도 재미있게 찍고 있고요. 오는 2025년 하반기쯤에는 시청자분들께 선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