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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변화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한결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계속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화할 사람인데요.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의 제가 그걸 느낀 것 같아요. '연기를 좋아하는구나'라고요. 예전만큼 나 자신에게 위선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남들도 좋아해 준다면, 그러면 가는 거죠."
배우 류승범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에서 철희 역을 맡았다. '가족계획'은 독특한 작품이다. 특수교육대에서 탈출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다섯 명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브레인 해킹이라는 기술을 통해 빌런의 머릿속에 그의 죄만큼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심어주는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게 해주는 힘은 배우들에게 나온다. 그중에서도 류승범은 아내 영수만을 바라보며, 그를 위해 기꺼이 가족에서 굽은 등으로 묵묵히 아빠의 자리를 지키는 철희 역을 맡았다. 사실, 특수교육대에서 철희(류승범)의 이름은 철수, 영수(배두나)의 이름은 영희였다.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서 지금의 철희와 영수가 됐다. 그들의 애정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아내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로 살아가는 류승범은 '가족계획'을 촬영하며 '가족'을 떠올렸고, '가족'으로 몰입했다. 그렇기에 더 굳건히 작품 속에 철희가 뿌리를 내렸다. -
Q. 철희는 영수(배두나)만을 바라보는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빠다. 본인 역시 남편과 아빠로 살아가며 자기 모습을 투영한 지점이 있을까.
"제가 실제로 아빠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아빠들은 아실 거예요. 집에서 싹 찌그러져 있어야 하거든요. (웃음) 저는 딸도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고, 똑같이 사랑하죠. 철희는 특수하게도 혈연이 아니잖아요. 저와 비교는 어렵고요. 다만, 철희에게 영수는 절대적이죠. 연기하면서 쉽게 풀렸던 지점도 같아요. 철희에게 영수는 세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원동력이 생겨요. 영수가 원하는 것이면, 철희도 가야 하거든요."
Q. 아직 2화까지만 공개된 상황이다. 영수(배두나)가 철희(류승범)의 세상이라면, 두 사람의 전사도 공개될 예정일까.
"회를 거듭하며 영수와 철희의 전사도 계속 드러나요.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이야기도 풀리는데요. 아마 3, 4화부터 부성도, 모성도 더 많이 나올 것 같아요. 1, 2화는 상황 소개 정도 설명되는 것 같고요. 사건들을 통해서 가족들이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사건을 해결해 가죠. 그 과정에서 가족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가는 이야기입니다." -
Q. '가족계획'에 합류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이라는 이 사람들이 특수교육대라는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거든요. 그래서 이들에게 탈출구는 '가족'인 거예요. 사실 이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없는데, 이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결국 가족 구성원을 만들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하루인 거죠.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당연하게 갖는 거로 생각하는데요. 그 당연할 수 있는 가족이 '가족계획' 속 이들에게는 지옥의 반대 지점인 '천국'인 거죠. 이들이 처한 삶과 가족에 대한 생각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감사함도 느끼고 '이렇게 축복을 받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도 됩니다. 팔과 다리가 멀쩡한 이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절대적인 소망일 수도 있잖아요.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소망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철희의 세상인 영수 역의 배두나와의 호흡은 어땠나.
"배두나 씨는 제가 원래 정말로 존중하는 배우였어요. 워낙 배우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 있잖아요. 멋있고. '가족계획'에 배두나 씨와 백윤식 선생님께서 합류하신다는 말을 듣고 '꼭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큰 이유였어요. 작품을 하면서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람 자체도 멋있고요. 배우로서도 작품을 통찰하는 능력이 엄청나더라고요.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제가 영수 캐릭터를 맡았으면, 끙끙댔을 것 같아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그 감정을 받아줄 수 있도록 연기해야 하니까요. 배두나 씨는 그것을 자기만의 리듬으로 찾아가거든요. 많이 의지하며 함께 했죠. 호흡이야 너무 좋았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의심 없이 신뢰하고 임했습니다. 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웃음)" -
Q. '가족계획' 제작발표회에서 철희의 엄청난 액션이 예고되기도 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도 있었을까.
"아마 3부쯤부터 시작돼요. 액션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매우 강렬합니다. 철희가 싸우러 갈 때 한쪽 손에만 빨간 장갑을 끼는 설정이 있거든요. 한 손으로만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철희'를 정말 좋아해요. 이런 남자가 되고 싶다고 느꼈어요. 정말 힘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에요. 진짜 남자, 진짜 남편, 진짜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 면을 느끼며 철희를 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가족이 이 사람들에게는 정의이자, 삶의 뜻이니, 그런 가족을 건드리면 그 누구도 철희를 못 이기죠. 제가 배우라서 그런지, 평상시에도 육체적으로 준비를 해놓는 것 같아요. 한 번에 하려면 힘드니까요. 평상시에도 육체는 항상 훈련하는 것 같아요. 배우 일에서 멀어졌을 때도 그랬어요.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아요. 육체적으로 하는 것들을 배우고 싶어요. 예를 들어, 카포에라(브라질 전통적인 무술) 워크숍이 있다고 하면, 두 번 생각 안 하고 갑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도 엄청나게 좋아하죠. 난리 납니다. 잘 맞죠, 우리는."
Q.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난 2000년 형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데뷔한 이후, '부당거래', '베를린' 등의 작품에서 꾸준히 작품 속에서 캐릭터 그 자체로 호평을 얻어오지 않았나. 과거의 자신과 달라진 점이 있을까.
"지금은 저의 태도가 바뀐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어요. 그러니까 저의 책임 의식도 생기고, 직업의식도 생기고요. 그런 의식의 변화가 생기니,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프로세스가 달라지더라고요.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예전에도 대본을 안 본 건 아니지만, 지금은 훨씬 더 숙지하며 보고요. 연습량도 훨씬 많아졌고요. 직업적인 배우로 활동하는 것은 조금 다른 방식인 거죠. 준비하는 과정이나, 현장에 임하는 태도 등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최근 그렇게 선택했거든요.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위선을 떨지 않고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됐어요. 과거에 제가 배척했던 마음도 위선이었다고요.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고, 남들도 좋아해 준다면, 그러면 하는 거죠." -
Q. 과거 공백기 때 느낀 지점일까, 아니면 가족의 영향이 있었을까.
"가족의 영향도 있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배우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요. 지금은 감사하게도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예전에는 호기심이 많고, 일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다른 생각할 것도 없고 집중할 수 있어요. 저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요. 세상에서 '나에게 운명이 있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 답을 찾아가려고 여러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배우를 선택한 것에 다른 사람의 영향은 없었어요. 스스로 올라오더라고요. '하고 싶다, 그립다'라는 마음이요."
Q. 과거와 정말 달라진 모습이다. 가족의 힘인가.
"제가 그렇게 달라졌나요? (설)경구 형이랑 작업할 때 '진짜 많이 달라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의 네가 너무 좋다'고요. 예전에는 제가 말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었대요. (웃음) 제가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이 될 줄 몰랐거든요? 놀라워요. 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우리 베로(류승범 아내의 이름)에게도 물어봐야지. 가족은 저를 심플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잡다한 고민을 사서 하기도 했는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길이 심플하게 열려요. 거기에 딱 가기만 하면 돼요. 그럼 편안해져요. 정신적인 방황이 없어졌어요. 저는 '가족계획'의 과정에서도 내내 우리 가족을 떠올렸어요. 이 작품을 찍을 때, 가족들이 한국에 있었거든요. 제 가족을 보면서 '가족계획' 속 가족을 떠올리고, 현장에서는 우리 가족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달라진, 스스로 직업을 '배우'로 선택한 류승범은 어떤 '배우'의 꿈을 꾸고 있을까.
"오늘 오랜만에 인터뷰를 앞두고 스스로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 떠올려봤어요. 그런데 한 가지, 제가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게 있더라고요. 뜬금없을 수 있지만, 질문과 다른 답이 나왔어요. 어떤 대답을 들었냐면, 전 예전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았어요. 사람으로 잘 다듬어지고, 훈련하고, 예전부터 가졌던 생각이었어요. 선배들도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배우가 된다'고요. 그런 건 변하지 않는 마음 같아요. 배우와 사람이 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같아요."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