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마음을 뛰게 하는 연하남이었다. 잠 못 이루는 '봄밤'의 설렘이었고, '엄마 친구 아들'이었다. 군대에서는 정의로운 'D.P.'조로 활동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정해인이 영화 '베테랑2'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로 등장했다.
눈동자에 초점을 지우고, 사람들과 다른 타이밍에 웃음 지었다. 그 미묘한 타이밍은 관객들의 섬뜩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선우가 인터넷상에서 'UFC 순경'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심이 가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 역시 완벽했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 속 승효와는 전혀 다른 선우의 얼굴이 교차하며, 궁금증이 더해졌다. 배우 정해인이라는 한계 없는 얼굴에 대해서다. -
Q. '베테랑2'는 서도철 형사(황정민)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선우라는 묘한 존재를 어떻게 이해했나.
"소시오패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공부도 많이 해야 했다. 발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박선우는 나르시시즘도 있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고, 소시오패스 기질도 다분하다. 자기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선이든 악이든, 도덕성을 떠나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도구로 쓸 수 있는 인물이다. 일련의 행동 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전사나 다른 서사가 없다 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가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선우의 뿌리나 유년 시절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공부했다. 그 결과물을 류승완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감독님께서 '전사보다 대본과 상황에 집중해서 표현하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게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된 것 같다."
Q. '베테랑2'에는 류승완 감독님부터 배우 황정민, 장윤주, 오달수 등 지난 2015년에 개봉한 '베테랑' 팀이 그대로 합류했다. 홀로 늦게 합류한 데에서 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베테랑' 1편에 나온 형사님들께서 그대로 나와주셔서, 제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너무 '땡큐'였다. 이미 다 맞춰진 호흡이 있었고, 저는 극 중 한 부분처럼 막내이자 관찰자로 현장에 임한 것 같다. 실제로 촬영할 때도 선배님들을 관찰하며 많은 부분 리액션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촬영 전에 1박 2일로 MT를 갔었다. 고기도 구워 먹고, 함께 술도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가 너무 좋은 기억이었다. 한없이 어렵고, 저에게 대선배님 같은 분들이셔서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MT를 다녀오면서 편해진 게 사실이었다. 그때 조인성 선배님께서도 잠깐 시간을 내서 오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저에게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고, '예쁜 후배'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 류승완 감독님 응원차 오신 것 같다." -
Q. 선우에게 가장 먼저 섬뜩함을 느낀 장면이 회식 장면 같다. 아무도 웃지 않을 때 '낄낄' 웃음 짓는 그 묘한 타이밍은 어떻게 찾아갔나.
"문득 웃은 건 류승완 감독님의 의견도 있었고, 제가 얼떨결에 했는데 좋아해 주신 부분도 있었다. 선우는 사이코패스보다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상대방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은 거다.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가 프로파일러와 상담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분들의 특징은 되게 차분하고, 침착하다. 시선이 지저분하지가 않더라.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계속 보고 이야기한다. 심리학적으로 상대방 눈을 몇 초 이상 바라보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선우를 표현할 때, 그런 지점을 염두에 두었다."
Q. 선우의 행동에 납득을 하려고 한 지점이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서도철 형사의 아들을 구해준 건 어떤 각도에서는 잘했던 지점일 수 있지 않나.
"처음 아들이 소동을 일으켜 서도철의 집에 가게 된다. 선우가 집에서 가장 늦게 나온다. 구성원이나 집의 구성 등 정보를 최대한 입수하려고 한 것 같다. 아들이 문제를 갖고 있고, 서도철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겠다고 파악했을 거다. 아마도 도움보다는 이용을 고민했을 것 같다. 나중에 약점으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모든 것이 계획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
Q. 남산 계단 장면에서 선보이는 격한 액션 장면이 굉장히 놀랍기도 했다. 실제로 한 장면인가.
"실제로 굴렀다. 제가 겁이 없는 편이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몸을 사리면 더 위험하다. 겁내면, 오히려 다친다. 안전 매트를 설치하고, 수많은 리허설을 거친 뒤에 촬영한다. 변수는 날씨였다. 폭설과 한파주의보가 왔다. 그래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스태프들이 눈을 깨고, 촬영에 맞는 환경을 만드느라 정말 고생했다. 영하 15도~20도까지 기온이 떨어질 때라, 액션할 때 몸이 굳어서 생각보다 동작이 느리게 나갔다. 상처나 타박상은 온몸에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의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한 것 같다."
Q. 눈동자를 텅 비운 듯한 동공 연기도 화제가 됐다. 안광을 자유자재로 켰다 껐다 하는 것이 가능한가.
"선우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연기한 부분이 많아서, 눈을 통해 표현해야 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페이스 액팅이라고 하는데, 얼굴에 근육이 많이 있지 않나. 눈으로만 표현하니 덜 표현될 때가 있더라.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매우 가까이 찍는 화면)이 많아서 테크니컬적인 부분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연기할 때, 각자 스타일이 다르다. 저는 보통 제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두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구했다. 제 얼굴 움직임도 많이 관찰했다. 텅 빈 눈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잠을 잘 못 자고 피로한 상태에서 그런 눈빛을 누구나 할 수 있다." -
Q. 스스로도 새롭게 느낀 자신의 얼굴이 있을 것 같다.
"첫 등장부터 그랬다. 제가 귀를 움직일 수 있다. 귀를 움직이면, 눈이 당겨지며 이상하게 변한다. 그런 순간을 가까이 촬영해서 많이 활용하셨다. 이건 류승완 감독님, 촬영 감독님, 그리고 저만 안다. 귀가 쫑긋하면서 눈이 묘하게 당겨진다."
Q. 황정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제가 어디 가서 열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 아닌데, 상대적으로 선배님과 함께하며 부족해 보이는 순간이 많았다. 함께 연기할 때 바스트(가슴까지 나오는 화면)를 찍지 않나. 상황에 따라 순서가 왔다 갔다 한다. 바스트라도 얼굴 가까이 찍으면, 상대방의 어깨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카메라 뒤에 서 있거나, 대역분이 서 계실 때도 있다. 그런데 황정민 선배님은 그런 상황에도 한 번도 물러서 계시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화면에 잡힐 때, 더 큰 에너지로 열심히 서도철로 계셔주셨다. 한참 후배인 저는 배울 점이었고, 정말 많이 감사한 지점이었다. 설명이 부족할 수 있는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
Q. 선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찾아보고 있다. 안 볼 수는 없다. 거기에서 질타도 받고, 위로도 받고, 힘도 얻는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대중들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약간 딜레마인데, 제가 하고 싶은 연기와 대중이 원하는 연기의 교집합을 잘 찾아가야 하는 것 같다."
Q.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에서는 오랜 소꿉친구를 짝사랑하는 승효를 '베테랑2'에서는 선우를 동시에 대중에게 보여주고 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긴 했다.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게 생각하고 있다. 다채로운 정해인의 연기를 같은 시기에 보실 수 있는 것 같다." -
- ▲ 영상 : 유튜브채널 '픽콘'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