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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인터뷰에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상준이가 의미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걸 온 힘을 다해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 작품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가 없었거든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잘 되어서 앞으로도 더 시도적인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바람이 커요."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서 '상준' 역을 맡은 윤계상이 말했다. '상준'은 무너지는 인물이다. 등장은 말끔하다. 함께 레이크 뷰 호텔을 운영하는 아내(류현경)가 있고, 믿음직한 아들 기호가 있다. 상준은 매일 객실을 청소하고, 침구를 정리한다. 밤에도 프런트를 지켜야 하는 일이 힘들지만, 손님에겐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 일상 속 불행은 갑자기 닥친다. 그의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연쇄살인마 지향철(홍기준)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배경에는 그의 호텔이 등장한다. 호텔은 '살인 호텔'로 불리게 되고, 상준의 일상은 느리지 않게 무너져 내렸다. 윤계상은 그런 상준의 젊은 날부터 노년의 시간까지를 꾹 눌러 담아낸다. -
Q.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장르를 하나로만 규정짓기 어려운 묘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대단히 판타지적이건, 드라마적인 멜로가 있거나, 우리나라에서 대중성이 있다고 말하는 기존 드라마같지 않았어요. 굉장히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 두 개가 공존하며 가는 것도 신기했고요. 그 두 이야기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내레이션부터 특이했어요. 거기에 모완일 감독님께서 연출하시고, 너무 궁금했어요. 이렇게 새로운 대본을 만나기는 어렵거든요. 즐기고 생각이 안 나는 작품도 많은데, 향이 짙은 드라마 같았어요.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Q. 말씀처럼 이 시리즈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영국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을 인용한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석했고, 사람 윤계상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하자면.
"혼자 생각했던 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그냥 외면하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리고 '쿵 하고 쓰러진 나무'는 사건이죠.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는 사람들의 반응 같았어요. 그 사건을 마주한 사람들이 모르는 척하는 거죠.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 글이라고 들었는데, 전혀 몰랐습니다. (쿵 소리가) 났죠. 시리즈를 통해 보이잖아요. 원래 모르는 척하려다가, 다시 앞장서게 되는 거죠." -
Q. 상준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속 유일하게 젋은 시절부터 노년이 된 후까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젊은 날의 상준을 먼저 촬영했어요. 쭉 장면을 찍어나가서 무너져가는 모습이 순차적으로 친절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편이었어요. 그리고 상준이가 무너지는 순간마다 분명한 계기가 있었고, 그 일을 겪은 상준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감정선을 모두 계획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젊은 날을 다 찍고, 상준의 20년 후 모습을 찍기까지 약 3주 정도의 기간이 있었어요. 그런 일을 겪은 상준의 피폐함을 담기 위해,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준이 통통한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3주 동안 약 13~14kg 정도를 뺏었죠. 온 힘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아무도 시킨 적은 없어요. 심지어 감독님께서는 살을 빼고 가니, 너무 젊어 보인다고 싫어하셨어요. 제 생각에는 살이 빠지면 쭈글쭈글해질 것 같았는데, 제가 골격이 좀 작거든요. 그래서 어려 보였나 봐요. 분장을 오히려 두 시간 정도 더했고요. 나중에는 CG(컴퓨터 그래픽)의 도움도 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Q.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영문 제목 'The Frog'처럼 상준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 그 자체였다. 처음 마주한 캐릭터였고, 처음 본 윤계상의 얼굴이었다. 연기하면서 어땠나.
"사람들은 '범인이 앞에 있는데 왜 못 때려?'라고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저는 그런 것 같아요. 폭력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앞에 있는 사람이 잘못했다고, 때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지켜보고 떨 수밖에 없죠. 그런 모습이 상준이의 모습인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이 피해자라면, 상준은 제2의 피해자잖아요. 그 사람이 나서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되게 답답해하면서도 두려워해요. 지향철 면회 갔을 때, 정작 상준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해요. 간절함에 용기 낸 말이 '날 모르면 안 돼'였죠. 상준이는 그를 만나면 큰 사건의 답을 찾을 줄 알았는데, 지향철은 '내가 가는 길에 너네들이 있었을 뿐'이라고 하잖아요. 허망함이 찾아왔을 것 같아요. 그게 상준이 미쳐버릴 동기도 됐을 것 같고요. 그 모습을 본 아들은 복수를 꿈꾸겠죠. 이런 이음새가 잘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
Q. '개구리'가 된 긴 시간 속에서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다.
"저는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개구리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을 겪고, 큰 피해를 보고,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작은 아픔들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 이면에 다른 문제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르는 척, 그게 가장 무서운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관통하는 장면은 뭐라고 생각하나.
"수많은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걸 극복해 나가는 유별난 개구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상준과 영하(김윤석)의 만남이 깊게 자리하는 것 같아요. 사실 상준은 그냥 존재하고 있었고, 영하가 찾아낸 거죠. 자기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우연히 필연처럼 변하는 상황을 겪으며, 영하는 다시 움직일 계기를 찾게 되죠. 그런 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복합적으로 가진 좋은 장치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Q. '범죄도시'에서 함께했던 박지환과 절친 호흡을 펼쳤다. 이번에는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하지는 않았나. 박지환보다 외모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본 기분도 궁금하다. 애드리브였나.
"애드리브는 아닙니다. 대본에 있었고, 그걸 애드리브화 시키려고 했는데 참았죠. 되게 놀렸을 것 같아요. (박)지환이하고는 너무 좋았죠.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어요. 모완일 감독님께서 정확한 연기를 원하시기로 유명하신데, 저희 둘은 풀어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류현경, 홍기준 모두 너무 친한 배우들이라서요. 그냥 믿고 간 것 같아요. 캐스팅 당시부터 이야기를 많이 해서 따로 연습실을 빌리지는 않았습니다.
Q.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도전한 작품이고, 또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인가.
"저는 이 작품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도 큽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가진 작품성이 좋아서 선택했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가 없거든요. 초반이라 대중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매 작품이 너무나 절실해요. 그래서 같은 부침을 겪습니다. 다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잘 되어서 앞으로도 더 시도적인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요. 사극, 멜로 다 좋지만, 그래도 가끔 특별하고 다른 음식 맛도 봐야죠. (웃음)" -
Q. 배우로서도 계속 도전을 이어오고, 또 god(지오디)의 멤버로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기도 한다. 특히, 오는 27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되는 god 콘서트 'CHAPTER 0'도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god는 그냥 존재하는 것 같아요. 팬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활동을 안 하는데도, 콘서트가 이렇게 매진이 될 정도니까요. 저희 멤버들끼리도 엄청나게 놀라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잘되는지 감사하죠.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직접적인 팬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완전히 틀립니다. 폭발적인 에너지라서요.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저도 (티케팅을) 시도해 봤는데, 어렵더라고요. (웃음)"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