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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침묵의 힘을 느낀 '폭군' 김선호, 더 깊어진 배우로

기사입력 2024.08.28.15:16
  •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선한 얼굴이 시니컬하다 못해 초췌해질 때도, 그 눈빛에서는 단단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 속 김선호가 보여준 '최국장'의 모습이 그렇다.

    '폭군'은 영화 '마녀' 시리즈를 선보인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인 시리즈다. 본격적인 '마녀' 세계관 확장에 나서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마녀' 시리즈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폭군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병기, 초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자체 개발한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사라진다. 이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샘플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격돌한다.
  • 작품 공개 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김선호와 만났다. 김선호는 반응을 찾아봤느냐는 질문에 "사실 초반에는 무서워서 (반응을) 못 찾아봤다"라고 운을 뗐다.

    "아무리 우리끼리 재밌고 행복하게 찍었다고 하지만 관객이 봐주시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나. 지금 차기작 촬영 중인데 혹시나 ('폭군') 반응을 보고 멘탈이 나갈까 봐 참았었다. 홍보팀에서 먼저 반응들을 취합해서 보여주셨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면서 두 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반응을 검색했다. 보신 분들의 평을 보는 건 언제나 두근거린다."
  • 김선호가 연기한 '최국장'은 국정원 최연소 국장에 오른 실력파 요원이다. '폭군 프로그램'을 지켜온 설계자 '최국장'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한때 아군이었던 이를 죽이기도 하고, 한국의 병기 개발을 탐탁지 않아 하는 미국의 압력에도 맞선다. "왜 우리는 핵도 안되고 대륙 간 탄도도 안되고 이것도 안되냐." 오로지 애국. 김선호가 표현해야 하는 인물은 고귀하고도 무거운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배우는 각자 타고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외형이나 소리, 외형 같은 것들이 그렇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찾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어린 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뭘까를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최대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대쪽같이. 제가 의도한 게 다 담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눈길이나 손동작을 최대한 누르고 미니멀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야 '최국장'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축했다."
  • '최국장'은 '폭군 프로그램' 탓에 국정원 내외에서 공격받는다. 비밀이 드러날수록 점점 초췌해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김선호는 이를 위해 다이어트까지 감행, 피로 메이크업까지 소화했다.

    "대본에 '피곤해 보이는 모습. 초췌하다'라는 게 명시되어 있었다. 운동도 하고 식단을 줄이면서 다이어트를 했다. 어쨌든 최국장 입장에서는 프로젝트를 지키기 위해 팀원까지 정리를 해나가니 (심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 내면을 생각하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6~7kg 정도 감량한 것 같다. 감독님께서 다이어트하라고 말씀하신 건 아닌데, 워낙 그런 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 '준비를 해와라'라고만 하셔서 살을 뺐다."

    "취조실 신에서는 거의 메이크업을 안 했다. 오히려 (피곤해 보이려고) 잡티를 만들고 다크서클도 그리고, 수염도 찍었다."
  • 김선호는 영화 '귀공자'에 이어 두 번째로 박훈정 감독과 협업했다. 박훈정 유니버스를 본 이들이라면 '귀공자'와 '최국장', 두 인물을 연기한 김선호의 모습에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폭군' 제안을 받았을 당시 배우도 그런 우려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선호는 "저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단 '귀공자'를 하면서 감독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정말 즐거웠다. 다음 작품에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박훈정 감독님은 좋은 연출가이자 형이다."

    "'폭군'에 불러주시는 것에 대해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저는 ('귀공자'와) 다른 역할이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그제야 인지가 됐다.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웃음) 다행히도 감독님께서 비슷하지 않게 만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 '폭군' 속 김선호는 강렬한 캐릭터들 사이, 액션 하나 없는 인물임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유지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죄송했던 부분이다"라며 비교적 편했던 현장을 언급했다. 그는 "저는 거의 내부에서만 찍고 야외 신이 짧아서, 나중에는 다른 분들 촬영을 응원하러 갔다. 볼 때는 '어휴 진짜 힘드시겠다'하면서도 '우와 진짜 멋있다'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때는 몸이 편해서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기도 하다"라고 회상했다.

    '귀공자'에 이어 재회한 '폴' 역의 김강우, 전직 요원 출신 '임상' 역의 차승원 등 선배들과의 현장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강우 선배와는 전작을 같이 했다 보니까 편하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촬영했다. 워낙 디테일하고 섬세한 분이라 연기적으로 직접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승원 선배님은 저랑 연기적으로 만난 건 마지막 신밖에 없었다. 임상이 '후배님 타이밍이 기가 막히죠'하고 최국장이 '조금 늦으셨습니다'하는 대사는 현장에서 만든 거다. 선배님이 저를 자극해서 더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주신 것 같다. 대사가 확 들어오니까 저도 조금 더 풍부하게 인물을 표현할 수 있었다. 승원 선배님께 많이 배웠다."
  • 김선호는 신예 조윤수의 활약에도 감탄했다. 대선배 차승원과의 액션신에서도 기세 하나 밀리지 않고 연기한 조윤수를 보고 "정말 좋은 배우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칭찬을 이어갔다.

    "현장에서의 태도도 그렇고 엄청 집중력이 좋더라.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악착같이 해나가는 걸 봤다. 방해가 될까 봐 저도 쉽게 말을 못 걸겠더라. 이렇게 노력하는 배우라면 지금보다 더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윤수는 '자경'이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자신과 다른 부분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 잘 해냈다."
  • 김선호는 지난해 영화 '귀공자'로 대종상영화제와 부일영화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배우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됐는지 묻자, 그는 "달라진 마음가짐보다는 감사한데 제가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늘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라며 "'귀공자'로 시상식 갈 때 강태주 배우랑 갔던 것 말고는 다 혼자 갔었다. 그때는 다 같이 가는 다른 팀들이 부럽기도 했다. '다음 작품 하면 내가 상을 안 받아도 팀이 다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겸손해 했다. 그러면서 16년 차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을 전했다.

    "지금은 확실히 내가 잘하는 것보다 미흡한 게 더 많이 보이는 시점 같다. 누아르를 경험하면서 배우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것보다 침묵이 더 힘이 있다고 느꼈다.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침묵의 연기도 앞으로 내가 배우로서 더 공부하고 향상시켜서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장르적 욕심이 계속 생길 줄 알았는데 지금의 저에게는 '발전하는 것' 자체가 우선인 것 같다. 욕심은 있는데 (연기가) 빨리 늘지 않는 것 같다. 정돈된 배우가 돼서 손짓, 눈짓 하나로도 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과 고민이 생긴다."
  • 김선호는 과거 인터뷰에서도 배우로서의 목표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을 꼽았다. 그 목표는 여전히 유효했다. 김선호는 "저는 그 목표가 여전히 좋다. 지금도 촬영하면서 체력이 안 되거나 예민해질 때면 그 목표를 떠올리며 나를 다잡는다"라고 변함없는 소신을 언급했다.

    "앞으로도 그 목표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 연기뿐만 아니라 태도에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좋은 배우의 덕목이 아닌가 싶다."

    소신에 맞는 행동 덕분인지, 김선호는 연이어 차기작을 예고했다. 그는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 '망내인', '현혹'까지 다양한 장르로 대중을 찾을 예정이다. 이날도 밤샘 촬영 후 인터뷰 현장을 찾았다는 김선호는 애써 피곤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제가 현장에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배우로서의 매력이 없다면 안 불러주시지 않겠나. '배우로서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찾아주시는 것 같다. 제 배우로서의 목표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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