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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모 파베르의 딜레마

기사입력 2024.07.11 10:16
  • 이청호 상명대학교 교수
    ▲ 이청호 상명대학교 교수

    오래 전 군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전화 온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막 도입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군대 동기의 전화에 답하던 중,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가 화면에 표시되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핸드폰을 사용하면 별도의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소위 ‘라떼’ 이야기이지만 이 작은 기술의 변화가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 깨닫게 된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특이점(Singularity)을 언급하며 “컴퓨터는 점점 인간과 가까워지고 인간은 점점 기계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기계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기계는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전화번호 표시 서비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비게이션 길찾기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지도를 찾아볼 필요가 없어졌고, 많은 경우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 이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 중 일부일 뿐이다.

    자동차의 자동화가 점점 발전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예측 불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우리의 이동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가 긴박한 순간에 연령이나 성별 등을 구별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오작동이다. 전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 시청역 사고에서 급발진이 원인 중 하나로 언급된 사례처럼,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상화되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오작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상적으로 사용될 경우, 기계가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기계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를 만드는 인간으로서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러한 도구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도구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의 위험에 노출될 위험성이 더 증가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준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에 길들여지고 기계에 의존하게 된다. 호모 파베르의 딜레마는 이러한 기계와의 공존의 과정에서 윤리적, 사회적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문제상황을 의미한다. 호모 파베르로서의 인간은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찾아가며, 기술과 인간의 바람직한 상호관계 정립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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