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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뜰 때 노 젓자”… 돈에 눈먼 협단체 난립에 기업만 울상

기사입력 2024.07.09 12:11
임원사 조건으로 500만 원 요구, 거절하면 으름장
민간 AI 자격증만 130여 개… 기업은 “평가 대상 아냐”
  • AI 협회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회원사 가입을 강요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김동원 기자
    ▲ AI 협회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회원사 가입을 강요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김동원 기자

    인공지능(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양산되고 있다. AI를 내세운 협단체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기업에 돈을 강요하거나 전문성과 먼 자격증을 만들어 수익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협회 회원사 가입 요청을 거절하면 저주와 같은 폭언이 날아온다고 하소연 하는 스타트업이 있을 정도다.

    ◇ 새롭게 등장하는 협단체, 가입 거절했다간 폭언

    생성형 AI 사업을 하는 국내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K대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 생성형 AI 단체에서 온 회원 가입 요청을 거부했다가 저주와 같은 폭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경영과 개발이 바쁘고, 다른 협회에도 많이 소속돼 있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거절했다가 앞으로 기업이 잘되는지 보자는 으름장을 들은 것이다. 게다가 이 협회에 가입하려면 1년에 회장사는 1억 원 이상, 부회장사는 1000만 원 이상, 임원사는 500만 원 이상의 돈을 내야 했다. 일반 법인으로 가입한다 해도 100만 원 이상의 돈이 지출된다. 이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AI 협회가 많이 생기고 관련 단체들도 만들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고 하는 데 거절하기도 힘들 지경”이라면서 “기업을 경영하므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 협단체 회장이나 이사장 등을 보면 피해 다닌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협동조합과 같은 단체에 가입 요청을 거절했다가 역시 폭언을 들었다. 다른 AI 기업 대표가 AI 기업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겠다고 가입을 권했는데 거절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이 대표는 “초면에 자세한 설명도 없이 단체에 가입하라는데 승인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최근 AI 관련 단체가 많이 생기면서 가입 요청이 오는데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도 없고, 기업들의 이름을 걸고 자신들의 수익을 챙기려는 곳들뿐이라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AI 스타트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기도 바쁘다”면서 “협회의 이사장이나 회장들도 먹고살려고 그러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도껏 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AI 법인 수 증가, 무늬만 협회인 곳도 존재

    최근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앙전파관리소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은 총 526곳이었다. 이중 설립목적에 인공지능이란 키워드를 사용하는 곳은 22곳이었다. 4차산업, 데이터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 수는 배가 넘었다. 과기정통부 외 타 부처나 지자체 소관 비영리법인도 있고,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협회와 법인도 있는 만큼,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계산된다. 실제로 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인공지능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과기정통부에 등록된 단체 외에도 다양한 곳이 나왔다. 게다가 생성형 AI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 설립된 협회들도 많아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등록된 법인 중 올바르게 운영되는 곳도 있었지만, 일부는 무늬만 협회인 곳도 존재했다. 전화와 인터넷 검색 등의 방법으로 무작위로 인공지능 단체를 조사한 결과,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는 곳이 많았고, 임원진을 가족으로 구성한 곳도 존재했다. 또 조사한 단체 모두 회원사 가입은 유료로 진행하고 있었다. 일부 법인은 무료 회원사와 유료 회원사 제도를 두고 있었지만, 무료 회원사의 경우 단톡방 초대 외에 큰 혜택은 없었다. 결국 협회 활동을 하려면 최소 50만 원 이상의 돈을 내야 했다.

    협회를 사칭한 곳도 있고, 굳이 법인으로 등록하지 않고도 카카오톡 단체방 등을 이용해 커뮤니티 개념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물론 서로의 교류를 위한 좋은 의도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지만, 일부는 운영자나 운영진의 수익 창출이 최우선 목적인 곳도 있었다. 

    한 대학 교수는 “최근에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발달함에 따라 굳이 협회를 등록하지 않아도 단체방을 통한 모임이 생기고 있다”면서 “AI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정보를 교류하는 건전한 방도 있지만, 일부는 처음엔 좋은 의도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가 추후 방에 있는 사람들을 콘퍼런스, 세미나 강연자로 내세워 수익을 창출하거나 방에 있는 기업에 장소 등을 협찬하라고 한 뒤 모임을 통해 수익을 내는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 130여 개 AI 민간 자격증, AI 기업들은 “평가 대상 아냐”

    협회와 같은 법인의 무분별한 등장은 AI 사교육 시장을 양산하고 있다. 무분별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격증이 등장하면서 경제적 활동이 없는 취업준비생이나 학생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곳이 많아졌다.

    5일 기준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등록된 AI 관련 민간 자격증은 130개였다. AI 활용 지도사부터 콘텐츠 지도사, 전문 지도사, 활용 지도사, 활용 능력, 윤리교육지도사, 챗GPT 지도사, 실용인공지능전문가 등 종류도 다양했다. 대부분이 전년도와 올해 응시자가 없는 무늬만 자격증이 많았다. 자격증을 따려 하면 7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의 응시 비용이 들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강의를 듣거나 책을 구매하면 취업준비생과 학생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더 증가한다.

  • 5일 기준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등록된 AI 관련 민간 자격증은 130개였다. /홈페이지 캡처
    ▲ 5일 기준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등록된 AI 관련 민간 자격증은 130개였다.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면 이 자격증들은 실제 AI 기업에 취업할 때 효능이 있을까? 국내에서 AI 사업을 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 37곳에 전화, 문자 등의 방법으로 문의한 결과 채용에 민간 자격증이 합격에 영향을 준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류 전형 때 눈길이 갈 수 있다는 곳은 1곳 있었지만, 최종 채용 때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외 기업들은 모두 자격증 유무는 채용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대기업에서는 보통 자격증이 아닌 관련 학과와 논문, 자체 시험을 중시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신입을 채용할 때 관련 학과 출신을 중요하게 보고, 서류를 통과하면 자체 기술 시험을 치른다”면서 “기술 시험을 통해 역량을 평가하고 이후 면접을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무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격증이 그 사람의 실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 것”이라면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나 논문 등에 오히려 가산점을 주는 편”이라고 밝혔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지원자가 민간 자격증을 몇 개를 소유하고 있든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자격증은 지원자가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보여 줄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회사의 채용 기준은 그것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자격증이 무엇을 입증한다는 지도 잘 모르겠고, 현실적으로 AI는 지식 몇 개 안다고 해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우리 회사도 그렇고 주변 다른 회사에서도 민간 자격증에 가점을 준다는 곳은 한 곳도 못 봤다”고 말했고 “자격증이 뭘 증명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믿고 채용하냐”고 반문하는 대표도 있었다. 심지어 한 개발자 출신 대표는 “지금 내가 그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해도 떨어질 수 있고, 내로라하는 개발자가 시험 봐도 떨어질 수 있다”며 “현재까지 등장한 AI 민간 자격증은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기업들은 난립하는 자격증에 피로감을 토로했다. AI 산업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자기 뱃속만 챙기려는 이들로 인해 시장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회원사들과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AI 산업 발전을 이끄는 기존 협회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AI가 크게 관심을 받기 전부터 국내 AI 산업 발전을 독려해 온 한 협회 관계자는 “최근 우후죽순으로 협단체가 등장하고 있는데 일부 단체는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해 시장을 흐리고 있다”며 “협회의 설립 목적과 의도에 맞춰 잘 운영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에서는 협회와 같은 법인 설립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 그만큼 철저한 감시가 있어야 한다”며 “협회의 존재는 산업 성장인데 이를 역행하는 곳이 많으므로 정부에서는 주기적으로 이들을 점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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