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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영화 ’대치동스캔들‘을 한 문장으로 말해본다면, 작품 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한 공간에 적혀있는 ‘그 여름의 끝’이라는 시 속 저 글귀가 될지도 모르겠다. ‘대치동 스캔들’은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여온 마음을 비로소 마주 보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윤임(안소희)는 대치동 유명 학원 국어 강사다. 학원 선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학교 시험에 나올 문제를 쏙쏙 뽑아 학생들의 머리에 답을 심어주는 거다. 그와 함께 대학에 다녔던 기행(박상남)은 대치동에 위치한 학교 선생님이다. 두 사람은 만나면 좋을 일 없는 사이다. 시험 문제를 직접 출제하는 국어 선생님이 학원 강사에게 문제를 직접 유출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만나게 된 둘은 함께 대학에 다녔던 나은(조은유), 미치오(테라다 타쿠야)와의 관계 속에서 ‘영원한 하굣길’처럼 덮어두었던 과거를 펼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의 만남이 의도치 않게 한 학부모에게 목격되며 시험 문제 유출 스캔들로 도마 위에 오른다. -
‘대치동 스캔들’에서 귀를 사로잡는 것은 글이다. 어린 시절부터 윤임과 나은은 ‘어린 왕자’라는 책 이야기로 친해졌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나은의 성장 과정 속 윤임을 향한 ‘나는 가끔 궁금해졌다. 너에게도 간절한 바람 따위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균열이 난 상태에서 스스로 내려버린 답으로 파국에 치닫는다. 함께 대학에 다니며 연인이기도 했던 윤임과 기행은 시간이 흘러 마음도 직업도 상태도 만나면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 영화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답을 찾아 헤매는 욕망의 공간 ‘대치동’을 배경으로 어느 순간 삶의 답을 잃어버린 이들을 돌아본다. 원래 삶이라는 게, 관계라는 게 답이 없는 게 더 많지 않은가.
누구보다 나를 향하는 질문이 많은 영화다. 이 속에서 찾게 되는 답은’결국 내 삶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나‘라는 뻔하지만 깊은 울림이다. 배우 안소희, 박상남, 조은유, 테라다 타쿠야는 대학 시절 친했던 넷의 관계를 잘 옮겨낸다. 또한 안소희는 자신의 말간 얼굴로 윤임 그 자체가 된다. 어딘가 한쪽 마음을 구겨 넣은 채 많은 말을 입속에 머금고 뱉어내지 못하는 듯한 윤임의 그 모습을 완벽하게 스크린에 옮겨낸다. 다소 물음표가 남는 전개에도 학생에게만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윤임의 모습은 오히려 작품을 땅에 굳게 발 디디게 한다. 이제 한 작품을 어엿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배우 안소희의 반가운 발견이다. -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바꿔 말하면 솔직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대치동 스캔들’에는 두 친구의 균열에서 비롯된 네 친구의 하굣길 마침표가 담긴다. 결국 그 속에서 관계를 풀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솔직한 고백이다.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내려놓고, 다른 출발선에 서도 된다는 위로의 말로 전해진다. 상영시간 108분. 오는 6월 19일 개봉.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