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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최적화한 맞춤형 제작 시스템으로 국내 프리미엄 보청기 시장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지난 7일, 시그니아(Signia) 보청기를 제작하는 가산 오퍼레이션센터에서 만난 WS오디올로지코리아 조유리 대표는 국내 출시 예정인 보청기 신제품을 소개하며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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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오디올로지코리아는 오는 6월 17일 최첨단 청각 솔루션 ‘IX 플랫폼’을 탑재한 시그니아 보청기 4종을 국내 출시한다. 이 중 한국인의 선호도가 높은 귓속형 모델인 ‘인시오 IIC IX’, ‘인시오 CIC IX’는 비보조기기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국내 주문 제품 100%를 가산 오퍼레이션센터에서 제작한다.
조 대표는 “글로벌 본사의 전략에 따라 보청기 제작은 여러 나라를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귓속형 보청기 판매 비중이 높은 한국은 프리미엄 제품을 위한 별도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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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형 보청기의 핵심은 보청기의 외형 틀인 ‘쉘(shell)’이다. 쉘이 사용자의 귀 모양에 얼마나 잘 맞고, 쉘 속에 앰프, 마이크, 리시버, 배터리 등의 주요 부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보청기의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만약 쉘이 사용자의 귀 모양과 잘 맞지 않거나 쉘 속의 부품이 적절하게 배치되지 않으면, 보청기 사용 시 울림 현상이나 잡음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에 석고로 뜬 사용자의 귀 본을 보고 사람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쉘을 만들었던 과거에는 작업자의 숙련도가 보청기 품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금은 3D 모델링을 통해 사용자의 귀 모양과 정확히 일치하는 쉘을 만들고, 작은 크기의 쉘 속에 넣을 부품 위치를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어 그 편차가 많이 사라졌다. 보청기 완성까지의 소요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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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모델링으로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손톱 정도 크기의 작은 쉘 속에 다양한 부품을 넣어 조립하는 일은 여전히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조 대표는 시그니아의 모든 공장이 글로벌 공정을 준수해 보청기를 제작하지만, 한국이 여느 지역보다 생산량이나 정확도에 있어 월등한 성적을 발휘하는 것은 모두 한국 직원의 특별한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산 오퍼레이션센터의 모델러(쉘의 모양을 만들고, 부품을 배치하는 사람)는 대부분 3D 모델링이 등장하기 전부터 보청기를 제작해 온 이들로, 모델러 경력만 약 10년 이상인 전문가다. 이들은 하루에 1인당 40개 이상의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한국 외에 유일한 자체 보청기 제조 시설을 운영하는 일본과 비교하면 엄청난 생산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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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보청기 제작의 자동화 추세에도 숙련 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고급화를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합 운영되는 제조소가 대량 생산에 최적화된 컨셉이라면, 가산 오퍼레이션센터는 공방이나 아틀리에 같은 컨셉”이라며, 앞으로 가산 오퍼레이션센터가 보유한 우수한 인적 역량을 기반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차별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출시되는 시그니아의 신제품에는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은 ‘실크 C&G IX’도 포함됐다. 시그니아 귓속형 보청기 최초의 충전형 모델이다.
조유리 대표는 “최근 보청기는 충전형이 대세로, 국내 전체 보청기 판매량의 40%가량을 차지한다”며, “자사의 제품도 보조기기 모델을 제외하면, 약 70%가 충전형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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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C&G IX는 4시간 완충으로 최대 28시간까지 이용 가능하며, 이동 중에도 충전할 수 있는 보조배터리를 기본 제공해 작은 건전지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이어폰과 같은 이어팁을 채택한 기성형 제품으로 귀 본을 뜰 필요없이 즉시 착용할 수 있으며, 맞춤형 제품보다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조 대표는 “기술이 발전하며 보청기 제품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귓속형 보청기에 대한 선호가 높지만,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한계도 존재한다. 무조건 한 가지 유형의 보청기를 고집하기보다는 오픈형 등 다양한 유형의 보청기를 직접 확인하고 선택하길 추천한다”고 전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