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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스터에그까지…이요섭 감독에게 가감없이 물어본 ‘설계자’의 설계 (스포有)

기사입력 2024.06.06.00:03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해당 인터뷰는 영화 ‘설계자’ 속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설계자’를 보신 분들은 더 재미있게 인터뷰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고민해 볼 만한 지점을 선사해 주는 작품이 등장했다. 영화 ‘설계자’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 동안 ‘느낌표’보다 ‘물음표’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원작인 영화 ‘엑시던트’ 역시 그랬다. 원작에서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의심하며 무너져가는 개인에게 집중했다면, 영화 ‘설계자’는 그를 둘러싼 사회상까지 더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며 이요섭 감독은 의문을 품었다. “진실은 분명히 있어. 그런데 진실을 알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체가 장르적이라고 느꼈다. 자주 방문하는 용산전자상가에 가면서도 이요섭 감독은 “이들 안에 킬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사건은 이면을 가지고 있고, 영화 ‘설계자’는 그 지점에 주목했다. 사고사로 위장해 의뢰받은 사람을 살해하는 ‘삼광보안’의 리더 영일(강동원)이 자신이 그 타깃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서다.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Q. 왜 ‘엑시던트’를 다시 한국 영화화 하기로 결정했나.

    “케이퍼 무비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불신하는 지점이 마이너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 되게 좋아했다. 어떤 지점에서는 영화 ‘리플리’(2000년, 안소니 밍겔라 연출)와 닮아있기도 하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컨버세이션’(1974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연출)을 떠올리게도 했다. ‘엑시던트’에서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깊이 들어간 지점이 좋았다. 그리고 사고사로 위장해 사람을 죽이는 틀을 가지고 왔을 때,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엑시던트’는 개인의 이야기라면, ‘설계자’는 개인을 통해 사회를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 ‘곧 진실이 밝혀질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늘 그 진실은 찾기 어렵고, 도달하는 과정도 영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회색지대에 놓여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설계자’ 속 영일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상태가 아닐지 생각했다.”

    Q. ‘설계자’ 속에는 다양한 사고를 설계하는 ‘삼광보안’ 팀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를 설계하기 위해 시나리오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을 것 같다.

    “기간으로 생각하면, 3년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자료조사를 하려면 사고사를 알아야 했다. 가볍게는 다윈 상(Darwin Award,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을 살펴봤다. 극 중 삼광보안의 타깃이 되는 인물 주성직(김홍파)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정치인, 재벌 등의 사망과 관련된 실질적인 통계를 보고 싶어서 ‘외인사(외부 원인으로 사망) 통계’를 열람했다. 그 통계를 보니, 죽음은 생각보다 계급적이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실내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빠져있으니, 대부분 외부에서 산업 재해 등의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다. 지붕 아래,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망 위험이 낮아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미디어의 환경이나 사회적 타살을 다루는 지점을 떠올리며 시나리오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Q. 장편으로 ‘범죄의 여왕’(2016)을 선보인 후에 8년 만에 대중 영화 ‘설계자’를 선보이게 됐다. 배우 강동원의 캐스팅 과정과 현장에서의 모습이 궁금하다.

    “강동원이 운이 좋게 시나리오를 보고 ‘하고 싶다’라고 하셔서 미팅을 잡게 됐다. 처음에는 미팅이 그런 자리인지 몰랐다. ‘고민 중이신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하고 싶다’라는 의지가 이미 표현된 자리였던 거다. 처음 만난 곳이 식당이었는데, 유리창으로 누가 나를 보고 있더라. 깜짝 놀랐다. 사실 식사를 하면서 ‘설계자’에 캐스팅하고 싶은 마음에 엄청나게 떨었다. 현장에서 섣부른 부탁을 드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니다’라고 하기보다, 감독이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들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나는 되게 운이 좋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삼광보안’에는 리더 영일(강동원)을 필두로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결핍이 있고, 사회적으로 음지에 있을 것 같다.

    “먼저 사회에 숨어들려면, 다양한 연령대가 필요했다. 점만이는 미성년과 성년의 사이에 있다. 실제로도 그 경계에 있는 탕준상이 인상 깊은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천(이현욱)도 그랬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과거를 가진 인물로, 사실 사회에서는 음지에 있는 느낌이 강하지만, ‘삼광보안’ 안에서는 어떤 성별로도 변할 수 있다는 지점이 자유로움을 줄 거로 생각했다. 또 그것이 아이러니했다. 사회적으로는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그가 ‘삼광보안’안에서 하는 행동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고, 그 역시 자신이 쓰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것이 월천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였다. 삼광보안이라는 곳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간인데, 그 속에서 가장 해방감을 느낀다는 지점이 묘했다. 그렇기에 그가 가진 것들이 탁 풀어졌을 때, 더 처연해 보일 거로 생각했다. 재키(이미숙)는 노련한 여성 전문가를 두고 싶었다. 영일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다양한 경험으로 사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재키의 과거가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힘든 과거사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나.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인물을 두고 싶었다.”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Q. 삼광보안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월천의 죽음은 가장 명확하게 보여진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월천의 죽음이 영일이 변화하는 기점인 것 같다. 영일은 본질적으로 슬픔, 기쁨, 분노 등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감정이 작동하는 원리를 스스로 철저하게 감춰놨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월천은 어찌 보면 영일에게 관심이 있는 인물이고, 그만큼 그를 가장 상처입힐 수 있는 말도 잘 알고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월천이 영일에게 한 말이 아마 그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일이 월천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치현(이무생)을 죽여야겠다’는 확고한 판단까지 온 것 같다. 월천의 죽음은 영일에게 최초의 감정적인 폭발 버튼이었다.”

    Q. 영일(강동원)과 짝눈(이종석)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도 많다. 두 사람의 감정선을 명확하게 두고 촬영에 임했나.

    “여러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배우에게 직접 ‘브로맨스를 심어달라’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두 캐릭터 모두 너무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중 한 명은 양지로 나가려고 하고, 한 명은 안전한 음지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짝눈(이종석)이 훨씬 더 사회화가 많이 되어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지만, 영일이는 그렇지 않다. 짝눈이는 삼광보안 사람들을 다독여줄 수 있는 존재였기에, 그 사람이 떠났을 때 더 큰 위기감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둘을 한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음과 양, 한 사람이 가진 양면을 두 사람이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완성체가 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일의 인간다운 모습의 일면이 짝눈이었을 거로 생각했다.”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Q. 짝눈이(이종석)의 죽음도 그렇고, 청소부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죽음은 교차로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촬영 감독님께서 주신 아이디어였다. 교차로에서 벌어지는 죽음이 표적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표로 삼은 인물이 중앙에 올 때 사건이 벌어지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찌 보면 영일(강동원)이 양경진(김신록)과 이야기할 때, 짝눈(이종석)의 죽음을 언급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청소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같은 식으로 설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Q. 유튜버인 하우저(이동휘)가 영일(강동원)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던 이유도 궁금하다.

    “하우저는 원래 음모론을 주장하는 유튜버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괴생명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하우저도 사고사를 분석해 오다가 주성직의 죽음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서 확 명성을 얻었고, 무수한 정보를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게 됐다. 음모론자야말로 사실 핵심을 피해 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하우저는 포커싱을 맞추고 접근한다. 주성직의 죽음과 그 인근 버스 사고를 연결하며, 소 뒷걸음질 치다가 잡는 것처럼 영일을 발견한 거다. 자연현상보다, 사람의 마음이 일으키는 변화나 행동에 의한 우연이 가장 당위성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일이 이치현(이무생)의 죽음을 설계한 장소에서 하우저가 영일의 얼굴을 공개하는 영상이 함께 나오게 되는데, 그것 자체가 영일 존재의 본질적인 위기라고 생각했다. 그 본질적인 위기 속에서 영일이 양경진을 만나는 경찰서까지 이르게 된다고 표현해 주고 싶었다.”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Q. 주영선(정은채)의 죽음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주영선은 과거 아버지 주성직(김홍파)이 문제가 벌어졌을 때, 검찰에 자신의 아내이자 주영선의 어머니를 고발했고, 결국 어머니는 사고사로 돌아가시게 된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나. 주영선은 이제 자신의 차례라는 생각에 삼광보안에 주성직을 의뢰하게 된다. 미디어가 자신까지 노출하는 것에 굉장한 압박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마지막에 사퇴하며 자신을 내려놓는 선택을 하지 않나. 그 후 사고가 벌어지고, 아버지의 사망 후에도 보험금 등 주영선은 계속 화두에 오른다. 돈으로 월천과의 계산을 끝낸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악명을 지우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결국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주영선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에 가깝지 않냐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영화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깊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배우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

    Q. 용산전자상가에 ‘삼광보안’이 위치한 것처럼, ‘설계자’ 속 숨겨진 의도가 있을까.

    “관객들이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고, 그런 지점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가 더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지점을 해소해 주기 위해 엔딩 크레딧에 이스터에그(Easter Egg, 숨겨진 메시지)를 심어놨다. 사람 인형과 체스 말로 나뉘어 감독의 입장에서 설계한 사고사임을 심어놨다.”

    Q. 전작 ‘범죄의 여왕’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독특한 장르물의 영화였다. 이번 ‘설계자’도 범죄물이라는 특성은 가져오지만, 액션을 통해 절대 악인을 응징하는 서사와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었다.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장르물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약간 비틀어진 장르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나 ‘설계자’ 같은 경우는 비틀어진 장르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긴 하다. 좀비 영화인데, 치료제가 나온 이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좀 비틀어져 있다. 그런 작품을 만들어갈 때, 작업적인 희열이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 중이다.”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 영화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 / 사진 : 영화사 집,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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