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 시작해 지금은 AI 아티스트 활동
“AI 활용 아티스트에 도움, 개발자 친화적인 환경은 아쉬워”
-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술계에 새로운 장르가 펼쳐지고 있다. AI가 사용자가 입력한 텍스트(프롬프트)를 이해해 관련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함에 따라 ‘AI 그림’이란 장르가 확산하고 있다. AI로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전시회가 국내외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림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AI가 천국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AI 전시를 펼친 김은진 아티스트는 AI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이젠 당연한 문화가 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협업체로써의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단, 이미지 생성 AI 도구를 본격화하려면 디자이너를 비롯한 사용자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시회 기간 생각보다 많은 국내외 아티스트가 현장을 방문했다”면서 “AI 그림에 관한 현직 아티스트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예술을 펼치는 것은 100% 맞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AI 인터페이스가 아직 개발자 친화적인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진 아티스트는 미국 뉴욕대 티시예술학교(Tisch School of the Arts)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석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 아트엔테크 박사를 수료한 디지털 예술가다. 순수미술(파인아트)로 시작해 디지털아트, 미디어아트, 지금은 생성형 AI 이미지 툴을 활용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부터 코딩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모두 섭렵한 AI 기반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다. AI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실시간 데이터 기반 작업을 다수 진행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한 ‘비빔(BIBIM)’이 대표 사례다. 이 작품은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관객들의 시각 데이터와 미리 제작한 시각 요소를 혼합해 예술가와 청중의 반응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각 매체로써 관심을 받았다.
-
◇ 작가의 창작 활동에 도움, 도구 넘어 콜라보레이터 역할 수행
김은진 아티스트는 4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간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AI 전시를 펼쳤다. 최근 세상을 떠난 모친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들을 전시했다. 이번 전시회에선 미드저니, 달리, 스테이블디퓨전 등과 같은 AI 생성 도구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김 아티스트는 생성형 AI 도구는 기존 도구 활용과는 차별점이 크다고 밝혔다. 미술 활동에 AI를 활용하면서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영감을 AI가 제시하고 이를 활용하는 단계에서 도구적 가치는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모친이 좋아하는 과일을 천국에 올려보내는 콘셉트의 그림을 제작했다. 관련 프롬프트를 AI에 입력하자, AI는 이와 관련된 이미지를 수많이 보여줬다. 여기에는 김 아티스트가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일례로 과일을 줄로 연결해 하늘로 올려보내거나 내려주는 이미지를 AI가 제시했고, 이를 김 아티스트가 선택해 활용했다. 그는 “작가가 떠올리지 못한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AI가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 과정을 보았을 때 AI는 도구의 역할을 넘어 콜라보레이터(협업체)의 역할까지 한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
이 점에 대해선 현장에 방문한 관객들도 공감했다. 김 아티스트는 이번 전시 기간 AI 도구를 통해 생성한 작품을 관객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관객들은 AI로 만든 작품도 하나의 예술로 평가했다. 또 AI가 창의적인 작품 제작에 기여하는 도구이자 기술이 발전하면 AI 에이전트와 같은 협업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 AI 작품에서의 사람 역할도 중요
김 아티스트는 저작권이나 예술적 가치에 관한 문제는 AI 그림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는 문화가 확산하면 자연스레 정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아티스트는 AI를 활용할 때 100% AI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개입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AI로 만든 그림은 아티스트 입장에선 완벽하지 않아서다.
순수미술부터 미디어아트 등을 공부한 그는 예술가 입장에서 봤을 때 AI로 만들어낸 그림은 창작의 아이디어를 주는 점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완성도는 높지 않다고 밝혔다. 손을 완벽하게 그리지 못하는 단순한 문제부터 현실과 동떨어지는 작품을 그리는 문제, 개수는 많아도 유사한 그림이 많은 문제 등이 있다고 했다. 이 점은 한국 애니메이션 거장인 넬슨 신(신능균) 애이콤프로덕션 회장도 공통으로 제기한 문제점이다.
-
넬슨 신 회장은 지난 1월 기자와 인터뷰에서 AI로 그린 그림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모래사장 위에 집이 세워져 있는 등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관객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고 했다. 프롬프트의 주관적인 해석도 문제라고 했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것 중 하나가 ‘고품격으로 그려줘’라는 것인데, 그림에서의 품격을 AI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면서 “고품격이라는 프롬프트라는 것에 관한 명령어 등이 있겠지만, 작가마다 생각하는 고품격의 기준이 다른데 이를 다 담아내지 못하니 AI로 그린 그림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넬슨 신 회장은 스타워즈, 심슨네 가족들, 트랜스포머, 핑크팬더, 스파이더맨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거장이다. 이 때문에 심슨네 가족들과 트랜스포머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김 아티스트는 이 문제는 작가의 개입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했다. 원하는 이미지를 코딩으로 입력하고, 점진적인 수정 과정을 거쳐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만들어진 작품에 사람이 붓으로 보완하거나 부속품 등을 붙여 보완하는 활동도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AI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80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밝혔다. 프롬프트를 입력해 나온 작품 중 원하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고 했다. 또 모친의 사진을 코딩으로 입력해 AI가 모친의 얼굴을 그릴 수 있도록 사전 작업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아티스트는 “AI로 만든 그림을 단순하고 빠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전시한 작품도 그 위에 쇠사슬이나 쇠고리 등의 부속품을 붙여 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AI 도구는 아직 친 개발자 환경, “사용자 중심으로 진화해야”
AI 아티스트로서 그는 앞으로 생성형 AI가 사용자인 디자이너 친화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소프트웨어 분야도 능통한 그는 달리나 미드저니, 스테이블디퓨전 등의 생성형 AI는 아직 개발자 친화적인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원하는 이미지를 코딩하는 경우, 관련 지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고 일반 사용자는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노미 고스맨(Nomy Gossmann) 아티스트는 생성형 AI의 활용 가치는 높지만, 아직 예술에 적용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일본에서 디지털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생성형 AI의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부분 중 하나는 점진적인 수정이 어렵다는 점”이라면서 “실제로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작품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워 작품을 만들다 중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
김 아티스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다양한 해외 생성형 AI를 활용해 봤는데 미드저니 유료 버전의 경우를 제외하곤 점진적인 수정이 어려웠다”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서는 AI가 협업체로서 역할도 충분히 해내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벽하게 제작하고 싶은 실제 아티스트 입장에선 아직까진 활용 가치가 높진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기업에서 아티스트의 활용성을 높인다면 큰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국내 대기업들도 이 분야에 많은 연구개발(R&D)과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AI가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AI를 활용한 미술 창작을 하는 이들도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김 아티스트는 “미술과 같은 예술 활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세계”라면서 “실제로 이번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로 인한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예술은 결과만이 아닌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고 치유 받을 수 있는 활동이므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