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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결하고 잔혹한 무기와 딱 맞는 존재가 등장한다. 영화 '범죄도시'의 네 번째 빌런으로 등장한 김무열은 대사부터 행동까지 모두 '단검' 같은 인물 '백창기'를 완성해 냈다.
김무열이 영화 '범죄도시4' 속 백창기 역을 제안받은 것은 약 1년 전쯤이다. 사실 그는 '범죄도시'의 가제였던 '가리봉 잔혹사' 때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시리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시간이 흘러, 시리즈 4편에서 제안을 받았고, 마동석에 대한 믿음으로 이미 '하겠다'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보고, 어려워졌다. 시나리오 속에서도 백창기는 간결함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김무열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해석하기 어려웠다. 어떤 캐릭터를 받았을 때, 명확한 게 보이는게 있는 반면, 백창기는 행동도 컨셉도 분명한데 속을 알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게 쉽지 않은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며 캐릭터에 다가간 고민을 전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빌런에 서사를 주지 않는다. 백창기 역시 그랬고, 김무열의 고민이 더해졌다. -
"백창기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용병 출신이고, 문제를 일으켜 퇴출된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장동철(이동휘)와의 관계 역시 그를 만드는 힌트가 되었다. 거기에서 무한 확장됐다. 장동철과의 우정에 대해 고민했다. 장동철의 금고 비밀번호가 사실 이 둘의 생일을 조합한 번호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면서 아이디어를 다 같이 냈다. 감독님, (마)동석이 형, (박)지환이 형 등 다같이 모여서 서로 침 뱉는 수준으로 아이디어를 뱉어냈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만들어졌다. 용병의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성격,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 계속 확장되며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용병이라는 직업 특성상, 약속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현장에서도 시간 약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작전에 성공하는데 중요한 요인이고. 보수도 선금을 받지 않으면 안 움직인다더라. 그런데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장동철을 백창기가 어떻게 생각할까. 백창기가 한국으로 와서 '약속 지키라'라고까지 했는데 지키지 않은 장동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백창기가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떠올리니 확고해졌다. 어려운 점은 대사가 많지 않아서 눈빛, 분위기로 표현해야 했다. 저는 대사가 없으면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 -
그의 말대로 백창기는 대사보다 눈빛, 행동 등으로 표현된다. 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조직에서 도망친 인물을 경찰까지 있는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응징한다. 그 간결한 움직임이 그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은 살짝 돌아가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는 처음 '용병'이라는 지점에서 백창기를 확장해 갔다. 그렇게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근육질의 강렬한 인상, 헤어스타일도 세고 마초적인 이미지 등이 주를 이루고 있더라. 의상 같은 것도 밀리터리 느낌을 생각했다. 그런데 허명행 감독님이 생각한 지점은 저와 정반대였다. 처음 의상을 맞춰 입어보러 갔는데, 그냥 헐렁한 남방, 평범한 구두 등이 있더라. 그 부분에서 많이 이야기했다. 제 고정관념을 감독님께서 완전히 날려주셨다. 저도 외형적 강렬함을 내려두고, 내면적 강렬함에 더 다가갔다. 백창기가 살인이나 폭력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했다. 그래서 더 눈빛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
무술 액션도 강렬했다. 앞서 말했듯이 김무열이 '단검 그 자체' 같은 느낌이었다. 간결했고, 빠르고, 정확했다. 상대를 제거하는데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 오랜 준비가 있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김무열은 "'범죄도시4'를 위해서 단검 연습을 따로 한 적은 없었다"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예전에 훈련받았던 것을 토대로 현장에서 만들어갔다. 과거 필리핀의 전통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를 배운 적이 있다. '본' 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이 해서 화제가 됐던 무술이다. 4~50cm 정도 되는 두 개의 칼을 들고 하는 무술이다. 당시 제 스승이 한국 무술클럽 총재이시고, 한국에 칼리 아르니스를 도입한 분이셨다. 저는 교범 정도까지 할 정도로 익혔다. 그렇게 제 몸에 익힌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감독님께서 이틀 전쯤 이런 식으로 촬영할 거라는 영상을 주신다. 그럼, 그 영상으로 대략적인 지점을 파악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공간의 사이즈를 체크하며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최대한 급소를 노리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수정 요청을 많이 드렸던 기억이 난다." -
과거 '위협적'으로만 느껴졌던 '범죄도시' 시리즈의 빌런과 달리, 백창기는 적은 말수에 간결한 움직임의 액션으로 '섹시하다'는 호평도 받았다. 이에 김무열은 "오히려 놀랐다"라며 만족하는 웃음을 지었다.
"대부분 배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안에서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걷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백창기가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지, 말없이 장동철을 불러낼 때 무슨 생각을 할지, 그런 지점이 힘들었다. 그런 제 모습을 보시고 어떤 분은 '무섭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분은 '섹시하다'고 이야기해 주신 분도 계셨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인데도 내 것이 아니구나, 관객의 것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
빌런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3편과 4편이 비슷한 시기에 촬영됐기에, 3편의 빌런 이준혁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편의 빌런 중 겨뤄보고 싶은 이를 묻는 말에 "그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교도소) 안에 들어간 빌런들이 힘을 합쳐서 마석도(마동석)을 치러 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빌런은 마석도와 손을 잡고, 다른 빌런은 연합을 하고.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들 침 뱉듯 아이디어를 낸다. 저도 빌런 연기를 했지만, 다들 너무 무섭다. 누구 하나 쉬울 것 같은 사람이 없다. 장첸(윤계상)도 싫고, 강해상(손석구)도 싫고, 주성철(이준혁)도 싫다. 저는 대결은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
'범죄도시4'는 개봉 이틀 만에 백만 관객을 넘었다. 여전히 '범죄도시4'를 향한 관객들의 관심은 뜨겁다. 그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선 김무열은 올해 뜨겁게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3', 티빙 시리즈 '우시 왕후', '노 웨이 아웃'까지 세 편으로 만나뵙지 않을까 싶다. 촬영 기간은 다 다른데 올해 순차적으로 나오게 됐다. 다행인 건 세 작품 속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스위트홈3'에서는 특수부대에서 자신의 부대원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는 인물, '우씨왕후'에서는 냉철한 지략가, '노 웨이 아웃'에서는 속물 같은 변호사로 등장할 예정이다. 특히 '노 웨이 아웃'에서는 유재명 선배님과 많이 연기를 했는데, 현장에서 호흡이 너무 재미있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