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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뭘까.
지키려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고, 가족을 지키려 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 한다. '더 그레이'팀은 기생생물을 죽여 사람의 생존을 지키려 하고, 기생생물는 사람의 몸에 기생한 채 종족의 생존을 지키려 한다. 같은 본질은 각기 다른 목적이 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과 이들의 전멸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준경(이정현)을 필두로 한 기생생물 전담반 ‘더 그레이’ 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속에서 스물아홉살의 마트 직원 수인(전소니)은 특별한 존재다. 기생생물이 수인의 뇌를 장악하지 못한 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한 몸에 더불어 기묘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 이를 알게 된 강우(구교환)는 그와 함께 기생수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 -
다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와사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삼되, 그대로가 아닌 연상호와 류용재 작가의 창작이 더해졌다. 원작의 주인공 소년 신이치는 손에 깃든 기생생물 '미기'와 직접 상호작용을 하지만,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다르다. 스물아홉 살의 여성 수인(전소니)의 몸에 깃든 기생생물 '하이디'는 하나의 몸을 공유한 채 일정 시간 의식을 나눠 갖는다. 소통하는 것은 수첩에 쓴 글을 통해서, 혹은 강우가 전해주는 말을 통해서 가능하다. 원작에서 인간과 기생생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전해진 메시지는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무언가 혹은 무언가를 통한 소통으로 전환된다.
무엇보다 연상호의 색이 진하게 물든 작품이다. 연상호는 '부산행'(2016)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작품 속에 심어왔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도 그 도전은 이어진다. 연상호 감독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강렬한 비주얼을 완성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각기 다른 반응 역시 연상호 감독의 전매특허 심리묘사다.
하지만, 기생생물이 깃든 사람의 모습을 보다 생생하고 빠른 전개로 막힘없이 담아내며, 앞서 말한 소통의 차별 지점을 통해 원작이 가진 '공존'에 대한 메시지가 더해지기보다 흐릿해진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총 6화의 반인 3화까지 사전 시사로 본 상황이고, 추가로 공개될 지점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더해진다. -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등 배우들의 연기는 각기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전소니는 마트 직원을 하며 생동감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기생생물 '하이디'를 만나 변화해 가는 모습을 인상깊게 담아냈다. 구교환은 가족은 기생생물에게 모두 잃고, 믿었던 조직에도 배신을 당하며 홀로 남게 되는 강우 역을 맡았다. 그런 강우가 수인과 하이디의 통역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물음표가 남겨진다. 또한 그레이팀의 팀장 역을 맡은 이정현의 과한 말투 역시 앙상블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권해효와 김인권은 같은 경찰서 소속으로 남다른 티키타카로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 맞을까. 훅과 백이라는 편협한 논리를 스스로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생생물을 전멸시키려는 팀의 이름이 '더 그레이'라는 지점에서도 그 질문은 이어진다.
원작 만화 '기생수'는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 역시 '기생수'의 팬이라고 전했다. 그는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공존, 혹은 변종들과의 공존,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와 공존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조직과 공존’, ‘조직 안에서의 개인’ 같은 주제 또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기생수: 더 그레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겨질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오늘(5일) 오후 4시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된다. 총 6화.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