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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민 감독은 어떻게 윤여정에게 "나보다 인품이 훌륭해"라는 말을 들었을까 [인터뷰]

기사입력 2024.02.10.00:01
  • 영화 '도그 데이즈'를 연출한 김덕민 감독 / 사진 : CJ ENM
    ▲ 영화 '도그 데이즈'를 연출한 김덕민 감독 / 사진 : CJ ENM

    윤여정은 웹 예능 '나불나불'에서 김덕민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걔가 인품이 나보다 훨씬 훌륭했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들을까. 궁금한 마음에 영화 '도그 데이즈'를 봤고, 또 궁금한 마음에 김덕민 감독과 인터뷰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아들이 태어난 해에 영화계에 발을 디디고, 아들이 21살이 된 해에 첫 작품을 내놓은 감독이다.

    영화 '도그 데이즈'는 동물병원을 중심으로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배달 라이더 진우(탕준상)의 도움으로 반려견 완다를 찾아다니는 건축가 민서(윤여정), 민상(유해진)의 건물에 있는 동물병원 원장 진영(김서형), 지유(윤채나)를 입양한 선용(정성화)과 정아(김윤진) 부부, 그리고 여자친구(김고은)의 반려견 스팅을 돌보게 된 현(이현우)과 전남친 다니엘(다니엘 헤니)의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반려견에 대한 진심이다. 앞선 한국 영화에서 반려견은 가족의 삶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전개상 장치적인 측면으로 그려졌다면, '도그 데이즈'에서는 가족 그 자체로 담긴다.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Q. 사실 반려견이라는 주제가 조심스럽다. 아직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지 않나. 분명, 기획 단계부터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저에게 '개'라는 존재는 그래요. 마음속에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 감정 그대로가 나와서 형상화된 게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다가서고 싶었어요.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아이들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 담긴 영화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장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요. 그리고 촬영 현장에 훈련사분들이 항상 상주했는데요. 그분들이 정말 강아지를 아끼시는 분들이시거든요. 그분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반려견들은 영화가 뭔지도 모르잖아요. 인간의 필요에 의해 현장에 있는 건데, 다그치면 심리적으로 상처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 스태프, 그리고 강아지들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개체라고 생각하고 작업에 임했습니다. 아마 필름 시대라면 '도그 데이즈'처럼 촬영할 수 없었을 거예요. 현장에 카메라가 두 대있었는데, 한 대로는 배우들을 찍고, 다른 한 대는 카메라를 계속 켜놓고 강아지가 그렇게 잠들기를 기다린 장면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기다림 속에 완성된 작품이에요."

    Q. '도그 데이즈' 첫 장면이 인상깊었다. 도로에서 '도그 데이즈' 속 모든 인물을 다 마주치지 않나. 이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하지만 롱테이크(컷을 끊지 않고 이어지는 촬영 기법)로 진행된 장면이라 고충도 있었을 것 같다.

    "그 장면의 콘티 작업부터 촬영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하고, 테스트도 많이 했었어요. 도로 위 짧은 순간에 다 같이 모여있다가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장면이 하나 오프닝 족에 배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걸 롱테이크로 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세트장에서 차를 세워놓고 도로라고 생각하며 카메라 워크를 반 회차 정도 예행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때, 배우분들을 모셔서 촬영한 기억이 있어요."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Q. 윤여정이 출연한 웹 예능 '나영석의 나불나불'은 봤나? 거기에서 "나보다 인품이 훌륭하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런 말을 듣게 된 비결이 있나.

    "절대 아닙니다. 인품이라기보다, 조감독 하는 동안에 아쉬웠던 것을 '도그 데이즈' 현장에서 해본 것 같아요. 제가 조감독을 19년 정도 한 이후에 입봉을 하게 됐거든요. 그 시기에 '조금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상황들이 많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구름이 해를 가리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잠깐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시간에 치여서 모두를 다그치며 괴롭히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게 되거든요. 제가 감독이 된다면 '그냥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감독이 되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선생님은 어마어마한 통찰력을 갖고 계세요. 평소에 농담하듯 말씀하시는데, 다 보시고, 다 아세요. 그런데도 조용히 모르는 척하고 계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딱 하나는 정확하게 합니다.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그게 1번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 요청을 드릴 때도 이상한 철학적인 언어들을 쓰지 않아요. 그냥 '선생님, 오른쪽으로 가시는데 보폭을 조금만 빨리해 주세요'라고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원하는 장면을 정확히 해주세요. 그런 지점이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할까요? 선생님과 작업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혹시 다음 작품에 또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저는 무조건 하고 싶어요."

    Q. 마냥 따뜻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사실 '도그 데이즈'에는 입양, 반려견 안락사 문제 등 화두를 던지는 지점도 있다. 조심스러웠던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늘 조심스러웠죠.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귀를 열어두자'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개발팀에서 이슈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으면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훈련사분들도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반려동물 복지에도 관심이 많으시고요. 그분들의 조언이 중심을 많이 잡아줬어요. 예를 들어, 코코의 안락사 장면은 더미(코코 모양으로 제작된 모형)를 제작해서 촬영했어요. 클로즈업 장면은 코코가 찍었지만, 누워있는 건 모두 더미였어요. 숨을 쉬는 것 같은 특수한 장치까지 설치가 된 더미라서, 코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초점을 두고 찍을 수 있었습니다."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 영화 '도그 데이즈' 스틸컷 / 사진 : CJ ENM, JK필름

    Q. '도그 데이즈'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현의 여자 친구 수정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고은과 차장님으로 등장하는 박은석의 캐스팅이 궁금했다.

    "박은석 배우는 저와 10년 전 단편영화를 찍었어요. 그때 택시 운전사였거든요. '도그 데이즈'를 준비하며, 프로필을 보는데 (박)은석이가 있는 거예요. 반가운 마음에 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떠올렸는데, 김 차장 역이 공석이었어요. 그래서 전화했더니, 이 친구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작은 역인데 고맙게 해줬어요. 그리고 김고은 배우와는 영화 '영웅'으로 인연이 있었어요. 제가 조감독을 한 작품이거든요. '영웅' 팀이 진짜 친해요. 그래서 무조건 해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수정 분량을 한 회차에 찍었거든요. (이) 현우와 핸드폰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촬영하는데, '직접 들고 해주면 좋을 거 같은데'라고 하니 '당연하다'라면서 한 번에 끝냈어요. 감독 욕심으로 두 번 촬영하기는 했는데, 첫 번째 촬영 컷이 영화 완성본에 담겼습니다. (김)고은 배우는 진짜 잘해요. 곡의 사전 녹음이 필요해서 노래 녹음도 해줬고요.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Q. '도그 데이즈' 속 등장하는 곡이 인상 깊었다. 김고은, 이현우, 정성화 배우의 목소리로 담긴 것도 독특했다. 혹시 공개 예정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저는 '사랑의 대화'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내부적으로 올드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황상준 음악감독님께서 제 입봉 선물로 '잘 만들어볼게'라고 하셨거든요. 덕분에 너무 근사한 곡이 탄생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 영화 '도그 데이즈'를 연출한 김덕민 감독 / 사진 : CJ ENM
    ▲ 영화 '도그 데이즈'를 연출한 김덕민 감독 / 사진 : CJ ENM

    Q. '도그 데이즈'로 입봉하기까지 무려 19년 동안이나 조감독 생활을 이어왔다. 영화계에 발을 디딘 후, 21년이 지난 지금에야 대중에게 감독으로 첫 작품을 공개하게 됐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 기다림의 원동력도 궁금하다.

    "원동력이라기보다, 아들에게 꿈을 포기한 아빠로 남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제 아들이 21살이거든요. 제가 아들이 태어난 2003년에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어요. 아들과 제 영화 경력이 같아요. 중간에 제가 포기하면, 저를 아기 때부터 봐 온 아들에게 꿈을 포기한 아빠가 될 것 같았어요. '도그 데이즈'의 VIP 시사회 때 아들이 왔어요. 복도에서 (아들과) 잠깐 마주쳤는데 저에게 '엄지척'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그날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없었으면 망나니 같은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수많은 도전이 있어야 하고, 고비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매 고비고비, 순간순간마다 은인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 같습니다."

    Q. '도그 데이즈'에서 민서(윤여정)는 '리조트의 근본은 쉼'이라는 말을 한다. 감독님 영화의 근본은 뭐라고 생각하나.

    "영화의 근본까지는 모르겠고요. '도그 데이즈'만 두고 말씀드리면요. 사람들에게 그냥 따뜻한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영화 보고 나가실 때, 기분 좋게 나가시면 좋겠다는 것. 그 바람으로 영화가 끝나고 모두의 웃는 모습을 넣어두었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찾기 위해 촬영본 전체를 두 번이나 뒤졌어요. 기분 좋게 나가시는 것 하나, 그리고 그 기분 좋음에 가슴 속에 따뜻한 모닥불 지피고 나가면 좋겠다는 것 둘. 그 두 가지로 근본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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