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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친구에게 그랬어요. '소자 왈'이라고. 그러니 친구가 맹자, 공자, 순자 다 아는데 소자는 누구냐고 하더라고. '소자는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가 한 말이 다 명언이야'라고 했지."
배우 윤여정이 말했다. 윤여정은 "제가 우리 엄마를 많이 닮았대요"라고 이야기했고, 그의 말 역시 다 명언이었다. 그렇기에 영화 '도그 데이즈' 속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넌 안 늙어봤지만, 난 젊어 봤잖니"라는 대사를 비롯한 민서의 말들도 다 명언으로 가슴에 남는다.
민서는 성공한 건축가다. 장성한 자식들은 외국에서 살고, 그는 넓은 집에서 반려견 완다와 단둘이 지낸다. 사람을 만나는 화려한 삶도 어느덧 원치 않게 됐다. 음식을 배달해 준 라이더에게 팁을 주려다가도 "개가 못생겼는데 귀엽네요"라는 말에 팁을 거두는 깐깐한 성격이기도 하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민서' 역의 이름이 '윤여정'으로 되어있었다. 윤여정은 "싫죠, 그런 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현장을 폭소케 하며 '도그 데이즈'에 합류한 이야기를 전했다. -
"너무 오래 한 배우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좋고, 감독도 명망 있고, 돈도 많이 주는 작품은 저에게 안 들어와요. 언제부터인가 제가 혼자 결심했어요. 이번에는 감독을 본다면, 시나리오랑 돈은 안 봐야 해요. 시나리오를 본다면, 돈이랑 감독은 안 보고요. 이번에는 감독님만 보고 한 거예요. 우리는 오래전에 만났어요. 김덕민 감독이 조감독 때 만났으니, 그도 무관이었고, 저도 취급을 못 받았고, 둘이 전우애가 생겼어요. 19년 동안 조감독을 하며 입봉을 못 하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내가 김덕민이 입봉하면 꼭 하리라' 했어요. 저의 결심과 감독과의 전우애로 (합류) 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안 봅니다."
하지만 반려견 완다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은 '오래 한 배우'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윤여정은 "호흡이라고 할 수 없죠. 투쟁이죠"라고 웃으며 현장을 회상했다. 스팅은 훈련받은 개였지만, 완다는 7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였다. 그래서 현장에서 장면에 맞는 완다의 움직임을 기다려야 했다. 윤여정은 김덕민 감독도 깜짝 놀란 현장 에피소드를 전했다. 극 중 쓰러진 민서를 연기할 때였다. -
"김덕민 감독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민서가 기절한 장면이니, 저는 누워있는데 완다가 제 얼굴을 밟고 지나갔어요. 저는 기절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행히 할퀴어지지도 않았는데 김덕민 감독이 괜찮으시냐고 뛰어왔어요."
"이동하던 조명에 손을 부딪쳐 좀 다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했어요. 젊은 배우들이 그랬으면, 온 현장이 난리 났을 거예요. 나중에 감독님에게 생색은 좀 냈어요. 저는 오래된 배우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일로 현장을 지연시키는 그런 건 싫어요. 죽고 사는 게 아니니까. 우리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촬영했으니까. 요즘에는 배우들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다니며 촬영하는데, 저는 구식 사람이라 이상해요. 일하러 왔으면 작업 현장에서 참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시선을 집중시켜서 촬영을 스톱시키는 건 민폐라고 생각해요." -
민서의 말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도 "저는 충고의 말, 조언, 이런 걸 너무 싫어해요"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워낙 다정다감한 형이 못 되나 봐요. 제가 무슨 시를 보고 이 시인도 나 같은가보다 싶었어요"라며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의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
"변명도 후회도 낙담도 아양도 없이.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었을 뿐.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라는 시를 보며, '이분도 나 같은 생을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
배우 윤여정의 연기 인생은 아르바이트로 시작됐다. 당시 엄마에게 대학교 등록금을 달라고 하기 죄송해서 아르바이트로 연기를 시작했다. 지난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화녀'를 통해 데뷔했고, 이를 통해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동시에 품에 안게 된다. 한국 영화계의 새 역사였다.
"우리 때는 목표가 시집 잘 가는 거였어요. 여자가 적령기가 되면 시집을 가야 했어요. 시집을 안 가면 손가락질 했어요. 그래서 시집을 갔고, (일을) 그만뒀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어쩌다 돌아오게 됐죠. 그때 배우가 된 것 같아요. 굉장히 감사했고요.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오른 여성이 있더라도, 10년 공백이 있으면 일을 줄리 없잖아요. 일을 하라고 해서 고마웠어요. '내가 (연기를) 못한다' 생각하며 열심히 했어요. 허명(실속 없는 헛된 명성)에 대해 잘 알아요. 저도 제가 연기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첫 작품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고 그러니까요. 돌아온 후부터는 '배우'라는 직업을 매 순간 업으로 느꼈어요."
"제가 처음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저를 못 쓰게 했어요. 이혼한 여자는 출연시키지 말라는 조건이 존재하는 건 아닌데, 암묵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김수현 작가와 저는 약속이 있었어요. 김수현 작가가 제일 잘나가는 작가일 때 저에게 '너는 재능이 있으니, 내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작품을 하는 순간 네 빛이 내 덕이 되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않을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돌아오고 2년이 될 때까지 아무도 저를 안 써주는 거예요. 그래서 김수현 작가가 그 약속을 깨고 '촌스러운 놈들'이라고 하면서 저를 써줬죠. 그 사람이 제일 고맙죠." -
지난 2021년 6월 방송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는 윤여정의 동생인 윤여순 씨가 출연했다. 그는 40대에 대기업에 입사했고, 임원으로까지 성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당시 윤여순 씨는 엄마에게 단단한 마음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윤여정에게도 지난 2020년 10월 세상을 떠난 엄마, 故 신소자 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우리에게는 전부였죠. 하나 엄마에게 미안한 건, 제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조금 일찍 탔더라면 우리 엄마도 '신사임당상'을 탔을 텐데. 엄마가 34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공무원 시험을 봐서 저희 셋을 먹여 살리셨어요. 우리에겐 대단한 존재죠. 굉장히 실질적인 사람이고, 제가 우리 엄마를 많이 닮았대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엄마의 말씀을 '소자 왈'이라고 해요. 저희 엄마 성함이에요.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 거지. 너랑 나는 큰 부자는 못 된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지. 일해서 버는 돈이 네 돈이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건물도 없고, 빌딩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상관없어요. 지금도 일을 해서 제 수입이 있잖아요. 77세에 그런 사람이 몇 이나 되겠어요. 우리 엄마 딸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잖아요."
윤여정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문장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배우로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지만, 결국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은 '엄마의 딸'이었다. 그런 진심이 영화 '도그 데이즈'에도 담겼다. 그런 그가 김덕민 감독만을 바라보고 찍은 영화다. 2월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0분.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