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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거장 ‘넬슨 신’이 생각하는 AI 그림

기사입력 2024.02.05 17:50
한국 애니메이션 전설·트랜스포머의 아버지, 넬슨 신 회장 인터뷰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본 AI, “위험성과 한계 많지만 변화는 확실”
  • 스타워즈 광선검을 처음으로 표현하고, 트랜스포머 등 유명 작품 제작에 참여한 넬슨 신 애이콤프로덕션 회장. /김동원 기자
    ▲ 스타워즈 광선검을 처음으로 표현하고, 트랜스포머 등 유명 작품 제작에 참여한 넬슨 신 애이콤프로덕션 회장. /김동원 기자

    스타워즈, 심슨네 가족들, 트랜스포머, 핑크팬더, 스파이더맨.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과 인연이 크다. 이들 작품에 모두 한국인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심슨네 가족들과 트랜스포머의 아버지라 불리는 넬슨 신(신능균) 애이콤프로덕션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넬슨 신 회장은 스타워즈 애니메이션에서 광선검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TV에 방영되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트랜스포머의 최초 극장판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더 무비’의 공동제작과 총감독을 맡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심슨네 가족들 제작엔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핑크팬더,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도 그의 손을 거쳤고, 북한과 함께 제작한 왕후 심청도 그가 제작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역사가 바로 넬슨 신이다. 그렇다면 그는 인공지능(AI)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 필름 시대부터 함께한 애니메이션 전설, AI로의 변화에 주목

    최근 애니메이션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글로 입력하면 이에 맞춰 자동으로 그림을 생성하고, 원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생성형 AI 발전 때문이다. 스토리를 만들거나 한 장의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의 한 번의 클릭으로 바뀌고 있다.

  • 넬슨 신 회장은 필름 시대부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온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진은 ‘넬슨 신 애니메이션-아트박물관’에 전시된 필름 장비 모습. /김동원 기자
    ▲ 넬슨 신 회장은 필름 시대부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온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진은 ‘넬슨 신 애니메이션-아트박물관’에 전시된 필름 장비 모습. /김동원 기자

    물론 생성형 AI는 아직 초기 단계다. 애니메이션을 AI로 만드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는 오고 있다. AI로 만든 책과 영화가 나오고 있고, AI로 그린 그림을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경우도 생겼다. LG생활건강이 LG AI연구원이 개발한 멀티모달 AI ‘엑사원’으로 제품 포장 이미지를 제작한 것과 스튜디오프리윌이 AI로 제작한 영화 ‘One more pumpkin’이 대표 사례다. 이 변화는 애니메이션에도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넬슨 신 회장은 이 변화를 주목하고 있었다. 1939년생인 그는 애니메이션 발전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이다. 필름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초창기부터 작업을 했고,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애니메이션 제작 장비가 바뀌고 업무가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겪었다. 감독이 애니메이션 필름을 일일이 자르고 음성 테이프를 들으며 편집하는 과정, 1초의 애니메이션 동작을 위해 100장 가까운 그림을 그리던 과정, 디지털 기술 등장으로 필사처럼 그림을 따라 그리던 많은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과정 등을 함께 했다. 그런 그는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 그리고 AI 시대로의 변화를 주목했다.

  • 넬슨 신 회장이 과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원 기자
    ▲ 넬슨 신 회장이 과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원 기자

    넬슨 신 회장은 “인간이 눈을 통해 뇌에서 물체를 감지하는 시간은 약 0.03초”라며 “이 시간보다 짧게 그림을 바꿔주면 망망에 시각의 잔상이 남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라며 “이 업계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다양한 장치가 발전하며 영화도 만들 수 있게 되고 작업 환경도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 환경이 이젠 AI라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생각보다 빠르게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은 AI로 인해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면서 “디지털 기술 등장으로 많은 필름 장비가 사라지고 작업 환경이 변화했듯 앞으로 20년 혹은 10년 안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AI를 애니메이션에 도입하는 경우 유의할 점도 크다고 했다. “AI로 그린 그림을 보면 우선 정말 잘 그린다고 본다”며 “작업 과정 역시 빠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AI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엔 한계가 많고, 주의해야 할 점 역시 많다”고 지적했다.

    ◇ “AI는 사람의 감정선과 현실감을 따라갈 수 없다”

    넬슨 신 회장은 현재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심슨네 가족들을 지속 만들고 있고, 지난해 1월 경기도 과천에 ‘넬슨 신 애니메이션-아트박물관’을 개관해 애니메이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활동도 하고 있다. 여전히 현역인 만큼, 그는 AI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AI로 그린 그림을 공유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변화를 준비했다.

    AI가 등장하면서 작업이 편해졌고, 뛰어난 작품을 빠르게 완성한다. 넬슨 신 회장이 평가한 AI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는 AI로 그린 그림은 감동을 주는 부분에서 당분간 사람이 그린 그림을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기쁨과 슬픔, 사랑 등의 감정을 갖고 그리지만 AI는 아니어서다. 일례로 부모의 사랑이라는 스토리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할 때 사람은 스토리에 몰입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 그리지만, AI는 사람이 이러한 그림을 그리라고 입력한 텍스트(프롬프트)에 따라 감정 없이 그림을 그린다.

  • 넬슨 신 회장이 자신의 작품인 트랜스포머 앞에서 AI로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넬슨 신 회장이 자신의 작품인 트랜스포머 앞에서 AI로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넬슨 신 회장은 “AI가 사랑을 느낄 수 있나, 기쁨을 느낄 수 있나, 그저 사람이 주입한 명령에 따라 그려내는 도구”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흐름이 있는데 아무리 프롬프트를 잘 입력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러한 미묘한 흐름까지 AI에 사람만큼 그리라고 주입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것 중 하나가 ‘고품격으로 그려줘’라는 것인데, 그림에서의 품격을 AI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면서 “고품격이라는 프롬프트라는 것에 관한 명령어 등이 있겠지만, 작가마다 생각하는 고품격의 기준이 다른데 이를 다 담아내지 못하니 AI로 그린 그림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AI가 그린 그림이 디테일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지적했다. 그는 후배가 선물한 AI 그림을 보여주며 “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며 “애니메이션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현실감이 중요한 작품에선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넬슨 신 회장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이유 중 하나는 현실감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내 캐릭터가 동작할 때 이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공을 던진다고 가정했을 때 그 준비동작 등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에서 현실적인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그는 AI가 그린 그림에는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넬슨 신 회장이 평가한 AI 그림. /김동원 기자
    ▲ 넬슨 신 회장이 평가한 AI 그림. /김동원 기자

    일례로 후배에게 선물 받은 AI 그림을 보여줬다. 여자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는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래사장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금방 무너진다”면서 “배경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애니메이션 작품은 워낙 다양하지만 현실감 있는 작품에선 시청자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문제점은 곧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현실성이 부족한 부분 등은 기술 발전과 함께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AI 개발자와 사용자, 각 도메인 전문가가 서로 부족한 점과 필요한 점을 얘기한다면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금세 해결될 수 있다”며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는 사람도 이러한 트렌드를 빠르게 쫓아야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 그리고 AI 시대로 이어지는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AI가 만들어 내는 악역에 피해 입어선 안 돼”

    넬슨 신 회장은 AI로 만드는 스토리에 대해선 걱정이 큰 부분이 있다고 했다. 보통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 스토리에선 악역이 등장한다. 선과 악의 대립이 대부분 스토리의 기본 구조다. AI가 이 스토리를 만든다면, 선에 대해서도 악에 대해서도 써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악에 대한 데이터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해 이를 토대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이 악에 대한 데이터를 어디까지 학습시켜야 할지 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딥러닝 등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지금보다 더 악랄한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고 염려했다.

  • 넬슨 신 회장은  “이세돌 바둑기사와 대결했던 알파고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만들어 낸 것처럼 앞으로 AI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악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김동원 기자
    ▲ 넬슨 신 회장은 “이세돌 바둑기사와 대결했던 알파고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만들어 낸 것처럼 앞으로 AI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악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김동원 기자

    그는 “AI는 학습한 만큼 결과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토대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결과도 창출한다”면서 “이세돌 바둑기사와 대결했던 알파고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만들어 낸 것처럼 앞으로 AI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악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또 “애니메이션은 공감대가 중요하므로 스토리를 짤 때 좋은 사람을 좋게만 표현하지 않고 반대로 나쁜 사람을 악랄하게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악랄한 사람은 더 나빠져야 하므로 도덕적인 기준이 없는 AI가 얼마나 나쁜 캐릭터를 만들어 낼지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넬슨 신 회장은 이처럼 AI가 만든 스토리와 캐릭터에 사람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개념이 없는 AI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온전한 피해자가 돼 선 안 된다”면서 “AI가 만들어 내는 스토리를 당연히 검토·점검해야 하지만, 이를 점검하는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이 사람들도 보호할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검토, 그리고 이를 AI에 학습시키는 방안 등의 고민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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