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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 초기 비용 한계가 있는 녹색건물, 그린리모델링 등 정부 정책 기반 민간 금융 시장과 연계가 꼭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 19일 현대차정몽구재단 온드림소사이어티 ONSO 스퀘어에서 열린 ‘스타트업을 위한 기후정책 가이드’ 월간클라이밋 세미나에 패널토론자로 참여해 “기후테크 기업이 시장에 뿌리 내리려면 보조금에 의존한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나 민간 금융 시장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넥스트가 주최한 이번 행사 1부에서는 ‘기후정책 가이드북:기후테크의 기회와 장벽’ 총괄저자인 이제훈 넥스트 선임연구원이 전환·산업·건물·수송 4개 부문의 정책 방향성과 기후테크 현황을 소개했다. 이어 2부에서는 김승완 넥스트 대표를 좌장으로 전력부문에 이효섭 인코어드 부사장, 건물 부문에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수송부문에 강인철 플러그링크 대표, 산업부문에 황유식 그리너리 대표, 투자부문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이제훈 넥스트 선임연구원이 참여, 각 부문을 대표해 패널토크를 진행했다.
이날 정부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후테크 기업의 속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탄소배출량이 모빌리티보다 건물이 많다는 것에 주목해 녹색건물로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김경민 교수는 “모빌리티가 15%, 건물이 17%로 탄소배출량이 많은 건물이 녹색 건물로 전환되는 것이 시대적 방향”이라며 “초기자본이 많이 들어가 현실적으로 전환이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녹색건물, 그린리모델링에서 현실적인 비용을 배제할 수 없다. 건물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려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녹색건물과 그린리모델링은 지원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금융 상품이 나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에서 금융적인 상품들이 계속적으로 나와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김경민 교수는 “미국에선 국부펀드나 디벨로퍼(개발업체)가 기후의 관점에서 부동산을 바라보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런 시각이 없다”며 “이 분야로 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택스 크레디트(세액 공제) 등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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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부분에서 핵심적으로 나타나는 기후 정책은 히트펌프와 그린 리모델링이다. 히트펌프는 집을 따뜻하게 하면서 탄소배출량이 적은 난방 방식이다. 에어컨과 같은 원리지만 열에너지가 가정 내부로 들어와 실내를 따뜻하게 하는 식이다. 히트펌프는 미국, 유럽 등 탄소중립 정책에 의해 확산 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초기 설치 비용이 높고, 정책적 이유로 확산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제훈 넥스트 선임연구원은 “이 두 가지 정책의 공통점이 다 초기 비용이 많이 상당히 든다라는 부분”이라며 “해외에서는 구독료 모델로 지원하고 있고, 구독 서비스가 결국에는 금융이랑 많이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인철 플러그링크 대표도 “수송 부문은 아직은 보조금에 의존하지만 총 소유비용 측면에서 언젠가는 내연 기관차보다 저렴해질 거란 기대가 있다”며 “다른 분야는 보조금과 규제 없이는 안착하기 어려울 거란 인식이 있어 금융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인프라 사업을 예로 들며 “정부가 기후금융을 인프라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SOC급으로 인센티브를 확실히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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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들은 기후테크가 정책 변화에 민감하다는데 공감하면서 기후테크 기업이 이를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효섭 인코어드 부사장은 인코어드가 에너지 솔루션으로 사업을 전환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기후테크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정책 리스크”라며 “변하는 정책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나라든 통하는 기술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발적 탄소배출시장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민간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벌이고 탄소 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높은 성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없어 그린워싱(친환경)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황유식 그리너리 대표는 “유럽의회가 VCM의 탄소 상쇄 프로그램에 근거해 친환경을 주장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VCM은 베라나 골드스탠다드 같은 제일 앞서가는 인증기관 조차 똑같은 사업을 두고 탄소 감축량 산정에 차이가 날 정도로 신뢰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 6대 기업이 자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어 여기서 한국이 멀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유럽연합(EU)에선 그린워싱 등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에코 디자인 규정 개정안'(ESPR)을 본격 시행했다. 이는 과장된 '친환경‘ 표시 등 친환경이 아니면서 관련 표시를 광고에 남발하는 '그린 워싱'을 금지하는 지침이다. 18일(현지시각) 최종 승인됐다. 이 지침에 따르면 제품 라벨에 과학적 근거 없이 친환경, 자연주의적, 생분해성 등 홍보 문구를 사용하지 못한다.
- 구아현 기자 ai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