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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가속화와 함께 인간의 가상 세계 몰입이 점점 더 확장되는 시대다. 특히 올해 초 등장한 생성형 AI로 인해 인간의 ‘창작’과 ‘창조’ 능력은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 불안과 설렘이 동시에 존재하는 요즘이다.
이러한 때에 공예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여유'의 의미를 상기시키고 소중한 아날로그 경험, 실재감을 되찾을 수 있는 매개체로 재해석되고 있다.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객(客)으로서만이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 창조하는 과정에서 몰입의 시간을 경험하며 한동안 잊었던 창의력을 다시 발견하는 주체로서 공예를 마주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행복한 공예 교육’ 사업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공예 작품을 향유하고 여러 작가와 직접 소통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지역 문화시설이나 작고 큰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흙을 빚으며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가지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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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공예 예찬론자로, 우리 삶에서 공예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늘 생각한다.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은 얼마나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내느냐에 따라 그들을 추앙하는 이들의 경험과 성장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만드는 것’ 이외의 지속가능한 생존 역량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유리장 안에 갇혀 범접하지 못할 권위를 내세우는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공예 자체가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어 경험하는 이들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지속해서 관람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브랜드’로 키워내야 한다.
손의 힘을 느끼려고 시작한 개인의 작은 경험에서 업(業)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한 기술 전달을 넘어 참여자들에게 사회적, 경제적 독립으로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교육도 필요하겠다. 각자의 이야기와 감정을 작품에 담을 수 있도록 생각을 그리는 과정부터 도와야 하며,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개인의 서사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무엇’ 이전에 ‘누가 왜 만든 것인가’에 더 집중하는 시대라고 하지 않나. 개인 소장품으로서의 공예를 넘어 참여자와 관람객, 그리고 작품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예가 단순한 물체가 아닌 경험, 감정,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지시키고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걸쳐 ‘똑같지 않은 것의 가치’와 ‘공유‧소통’ 문화를 육성하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똑같은 모습의 수많은 물건과 매일 등장하는 새로운 것들이 감각 과부하를 일으키는 현대 사회에서 공예는 인간 삶에 깊이를 더하고 일상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며 우리 각자가 마주하는 소외와 단절을 치유하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며 일상 속으로 들여오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보며 공예를 만나는 섬세한 여정은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문화적으로 조금 더 성숙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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