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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떤 연유로 故 김용균 군 묘지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그 앞에서 그분의 영정을 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요."
대중에게는 배우로 알려진 감독 조현철이 말했다. 그가 언급한 故 김용균 군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 기계에 사망한 청년 노동자다. 조현철은 영화 '너와 나'로 처음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지난 2014년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에 가던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세상을 떠난 304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재돼 있다. 조현철이 연출한 첫 작품은 그가 연출했지만, 사실상 이야기가 그를 잡아끌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현장을 내리쬐는 눈부시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조현철 감독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
Q. '너와 나'는 자신의 첫 연출작이다. 표면적으로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담은 이유가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해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저조차도 그냥 지나치거나 잊으려고 했던 사건에 다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어떤 상실이나, 잊힐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이 작업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Q. 지난 2016년부터 약 7년의 세월 동안 만든 작품이다. 처음부터 '세월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나. 애도의 마음을 담으면서도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한 지점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죽음을 하루 앞둔 어떤 여학생들의 하루에 대한 생각이 났고, 그 이후에 그 사건과 엮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시작할 때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하는 걸 피하고 싶었고요. 배의 모습이 담거나, 아이들의 죽음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도 있었고요.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지칭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것도 싫었거든요. 당사자가 앞에 있고, 위로를 건네고 싶은데 그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그게 저에게 이 영화의 윤리이자 예의인 것 같았어요.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말을 전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Q. 지금 차고 있는 노란 팔찌 역시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는 의미인가. 단원고 주변의 거울을 보며 의미를 떠올릴 정도로 그 주변도 많이 서성였을 것 같다.
"2016년부터 계속 차고 다닌 것 같아요. 한 번 정도 끊어진 것 같긴 한데, 여러 개가 있어서요. 단원고 주변은 꽤 많이, 자주 다녔어요. 산책하거나, 카페를 가거나. 워낙 안산이라는 곳이 제가 자란 곳이라서 그 주변을 많이 다녔거든요. 공간이 주는 정서가 저에게는 되게 이상해요. 걸어 다니는 사람들, 나뭇잎만 봐도 이상하고요. 더 많이 가서 관찰하려고 했고, 실제 촬영도 거의 안산에서 진행된 것 같아요." -
Q. '너와 나'에는 반복적인 이미지들을 통한 은유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이유가 있을까.
"이 소재를 영화적인 스펙터클이나 소재 자체로 이용하기에는 윤리적으로 거부감이 많이 들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은유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2016년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을 앞둔 두 아이의 이야기라는 말만 해도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연상했는데요. 시간이 지날 수록 쉽게 알아채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얼마나 드러내야 할지에 대해 실시간으로 수정을 해나갔어요."
Q. '너와 나'를 보면 실제보다 더 환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화면 구성이 있다. 그러면서 점차 선명해지는 지점이 있는데, 의도한 건가.
"처음부터 누군가의 꿈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리고 그 꿈은 누군가의 마음으로 대변되기도 하고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하고 전체적으로 꿈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극 중 세미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더 선명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
Q. 거울, 한 입 베어 문 사과, 그리고 발뒤꿈치 등 '너와 나'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구체적인 의미도 궁금하다.
"사과는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의미라기보다, 그 자체에 얽힌 이야기였어요. 미술 감독님께도 특별히 사과는 갈변이 되지 않은 사과를 부탁했거든요. 그건 이걸 베어 문 사람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건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한 사람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거울은 단원고 주변에 있는 작은 공원에 정자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거울에서 가져온 거예요. 영화 속에서 그 거울에는 '세미'가 맺혀있다 사라지잖아요. 그것처럼 단원고 주변, 그곳을 지나던 학생들의 모습 또한 그 거울에 맺혀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뒤꿈치를 되게 선명하게 카메라에 잡거든요. 각질의 모습에도 효과를 주어서 최대한 두드러져 보이게 했어요. 복잡하고 세세한 주름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이 있었어요. 이렇게 생생하고, 복잡하고, 미로같이 얽혀있는 표면이, 물질이,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304명의 죽음이 아닌, 그 한 명 한 명의 생생함, 그 생생함이 사라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
Q. 여자아이들의 하루였다. 세미는 다른 친구가 자신은 모르는 하은이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크게 서운해하고, 같이 먹는 빙수의 떡을 몇 개 먹었는지 헤아리며 싸우는 그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어떻게 담았나.
"취재를 많이 하려고 했어요. 관찰을 많이 하려고 했고요. 유튜브와 브이로그를 많이 봤어요. 그리고 영화과 입시학원에 가서 특강을 하기도 했고요. 제가 '모르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니, 두려움이 앞서서 그 부분에 더 신경을 썼고요. 영화 준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덕분에 생생함을 살려낸 것 같아요."
Q.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D.P.' 속 조석봉 역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너와 나'를 언급하며 죽음과 세월호의 아이들, 故 변희수 하사, 故 김용윤 군, 故 박길래 선생님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언급하신 그 이름들에도 이유가 있을까.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들, 사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를 잡아끌었어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연히 주변 죽음들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잖아요. 무게감도 남다르고. 마음이 쓰이는 이야기였고. '너와 나'는 쓰면서 저에게도 위로가 되어주고, 동력이 되어주고, 무언가를 만드는 힘이 되어준 것 같아요. 제가 대단한 활동가도 아니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칠 수는 없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계속 생각하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Q. 그렇다면, 감독으로 현재 관심이 기울여지는 이야기가 있을까.
"최근 제주도에 한 달 정도 다녀왔는데요. 인간뿐만 아닌, 인간과 연결된 다른 종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주도 숲에 관한 이야기와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증언집을 보며 머릿속으로 계속 돌려보고 있기는 해요. 4.3 사건과 제주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다녀온 것도 있고요. 이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Q. 'D.P.' 조석봉, 최근에는 SBS 드라마 '악귀' 속 무당 특별출연에 이어, 최근 넷플릭스 새 시리즈 '애마 부인'에도 합류했다. 배우로서 활발한 활약을 이어오고 있는데, 감독과 배우 중 어느 쪽에 중심 추를 두고 있나.
"지금 머리를 기르고 있는 이유가 드라마 촬영 때문이에요. 하나를 끝내고 나니, 바로 다음 작품을 해나갈 에너지는 아닌 것 같고요. 연기를 하며 다른 인물에게 몰입해 편안함을 찾고 싶습니다. 밸런스를 제가 맞추기보다는 상황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 제가 애쓰는 노동의 총량보다 보상이 좀 더 큰 것 같아요. 덕분에 압축해서 일한 만큼 나머지 시간에 글을 쓸 시간이 확보되기도 하고요. 이 두 가지 균형을 잘 맞추며 해나가고 싶습니다." -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